책 읽기 금지! 두근두근 어린이 성장 동화 5
디에고 아르볼레다 지음, 라울 사고스페 그림, 김정하 옮김 / 분홍고래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53



‘말하는 토끼’를 다룬 책은 읽지 마!

― 책 읽기 금지!

 디에고 아르볼레다 글

 라울 사고스페 그림

 김정하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6.2.6. 12000원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소꿉을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림을 즐겁게 그리는 아이한테서 붓하고 종이를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요?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목소리를 빼앗는다든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말을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책을 빼앗는다면?


  디에고 아르볼레다 님이 글을 쓰고, 라울 사고스페 님이 그림을 그린 《책 읽기 금지!》(분홍고래,2016)라는 어린이문학은 ‘아이한테서 책을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빼앗은 뒤, 그 책을 뺀 다른 책은 얼마든지 읽어도 된다고 할 적에 아이 마음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경고합니다. 이 집에서는 루이스 캐롤의 작품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뉴욕의 상류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어요. 우리 딸이 사람들에게 늦게 도착한 흰 토끼를 본 적이 있느냐 묻고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자기가 핑크빛 새들을 가지고 크로켓 경기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니…….” (76쪽)


공작이 죽은 해에 으젠느는 여러 귀족의 집에서 가정 교사 생활을 했다. 으젠느는 모든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모든 부모를 화나게 했다. (20∼21쪽)



  동화책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이 ‘상류 사회’에 있는데, 아이가 루이스 캐롤 책을 읽고는 사람들 앞에서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마치 참말 있다는 듯이 말하기’에 그들 얼굴이 깎였다고 여깁니다. ‘말하는 토끼’도 ‘말하는 나비’도 모두 터무니없는 ‘책에만 나오는 이야기’로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상류 사회 이웃들하고 사귄다고 하더라도 ‘루이스 캐롤이라는 사람이 쓴 재미난 책 이야기’를 그들하고 나눌 수 있을 텐데, 동화책에 나오는 두 어버이는 이 대목을 살피지 않아요. 그저 아이를 닦달하고픈 마음입니다. 그저 아이가 ‘사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 조그만 기사에는 후난 주의 통치자인 호치엔 장군이 책 한 권을 금서로 지정했다고 쓰여 있었다. 문제의 그 책은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장군이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한 이유였다. 말을 하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114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책 읽기 금지!》에 나오는 어버이하고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얘들아, 꽃을 꺾고 싶으면 꽃한테 먼저 물어봐. 그리고 너한테 꺾이는 꽃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꽃은 나중에 씨앗을 맺을 아이들이야. 네가 눈으로 보면 될 꽃을 꼭 꺾어서 손에 쥐어야 꽃이 예쁜지를 생각해야 해.”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가 나비나 잠자리를 손으로 잡고 싶으면 먼저 나비하고 잠자리한테 말을 걸어. 너희를 한 번 손으로 만져 보고 싶다고 말을 조용히 건 다음에 손을 뻗어.”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얘야, 나무를 타고 싶으면 먼저 나무한테 물어봐야지. 나무가 너희를 태워 주고 싶은지, 나무가 너희하고 놀고 싶은지를 묻고서 나무한테 올라타렴.” 하고도 이야기해요.


  ‘말하는 토끼’는 있을까요 없을까요? 말하는 토끼가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무척 많을 텐데, ‘말하는 토끼는 있다’를 밝힌 어른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하는 토끼는 없다’를 밝힌 어른도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산타클로스는 있다’를 밝힌 어른도 없지만 ‘산타클로스는 없다’를 밝힌 어른도 없어요.


  이리하여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아, 우리가 무엇이든 없다고 여기면 참말 없고, 우리가 무엇이든 있다고 여기면 참말 있어. 너희한테는 돈이 하나도 없어. 그렇지만 너희는 돈이 없다고 해서 걱정할 일이 없어. 너희는 늘 즐겁게 놀고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지.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돈이 많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즐거운 살림이 되지 않아. 아버지나 어머니 스스로 즐겁구나 하고 노래하는 살림을 가꿀 적에 비로소 즐거운 살림이 돼. 그러니까 너희한테 장난감이 많아야 잘 놀지 않고, 장난감이 없어도 맨손으로 맨몸으로 잘 뛰어놀지? 스스로 있다고 여길 때에 무엇이든 스스로 새로 지을 수 있어.”



거기에는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앨리스의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모두 앨리스가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방은 ‘이상한 나라’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종이와 마분지, 나무, 그리고 온갖 종류의 재료들을 사용해서 앨리스가 만든 것들이었다. (165쪽)


앨리스는 지난 일 년 동안 만든 장식품들을 으젠느에게 모두 보여주었다. 열 살 소녀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174쪽)



  동화책 《책 읽기 금지!》에 나오는 아이 이름은 ‘앨리스’입니다. 마침 루이스 캐롤 님이 빚은 문학에 나오는 이름하고 같습니다. 이 아이는 루이스 캐롤 책을 읽고 나서 더없이 사랑에 빠졌고, 이 사랑을 ‘루이스 캐롤 책에 나오는 대로 꾸미기’에 바쳤다고 합니다.


  얼마나 짠하면서 멋진 일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상류 사회 눈치’나 ‘사회 눈치’를 보지만, 아이는 스스로 ‘사랑할 살림’을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애틋하면서 고운 일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누군가는 ‘나무하고 어떻게 얘기를 나눠?’ 하고 여길 테지만, 누군가는 ‘나무하고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눕’니다. 누군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터무니없는 책으로 여겨서 아예 못 읽게 가로막을는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천사도 요정도 마녀도 만나면서 새로운 누리로 즐겁게 나들이를 다닐 수 있어요.


  지식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시험을 잘 치르려고 책을 손에 잡기도 합니다. 시사상식을 얻으려고 책을 손에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꿈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앞으로 일굴 사랑스러운 살림을 찾으려고 책을 손에 잡기도 합니다. 반가운 이웃이나 동무하고 기쁘게 어울리거나 사귀려고 책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어떤 책을 읽힐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어떤 책을 ‘못 읽게’ 해야 할까요?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하지 마!”나 “읽지 마!” 하고 가로막기 앞서 “우리 함께 해 볼까?” 하고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우리 함께 읽으면서 같이 생각해 볼까?” 하고 마음을 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상류 사회 눈치가 아무리 대수롭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랑으로 낳은 아이’처럼 대수로울 수 없을 테니까요. 2016.8.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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