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17

 

 예쁜 토박이말

 

  ‘예쁜 토박이말’이나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살리자고 하는 얘기를 신문이나 책이나 방송에서 곧잘 다룹니다. 이런 얘기를 더러 읽거나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네 이런 말이 있었네 하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얼마 뒤에 몽땅 잊기 일쑤입니다.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토박이말이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하는데 왜 머리에 안 들어오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예쁘기만 하거나 아름답기만 하기 때문은 아니랴 싶습니다. 삶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면서 여느 자리에 수수하게 쓸 만한 말이 아니라, 한국말사전 어느 구석에 숨은 말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예쁘거나 아름다운 토박이말이라고 해서 더 낫지 않으며, 딱히 나쁘지 않습니다.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쓰임새를 잃은 말이라면, 또 우리 스스로 쓰임새를 잊은 말이라면, 이러한 말에는 새로운 숨결이 흐르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늘 마시는 바람처럼 쓸 수 있는 말일 적에는 이 말을 굳이 외우지 않습니다. 늘 마주하는 해님처럼 마주할 만한 말일 적에는 이 말을 놓고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고 따로 느끼지 않습니다.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늘 쓰는 수수한 말이기에 안 예쁘지 않습니다. 늘 쓰는 수수한 말이기에 내 삶으로 뿌리를 내리고 내 살림을 가꾸는 바탕이 되어 줍니다.


  말 한 마디가 예쁜 까닭은 ‘사전에 묻힌 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토박이말이기 때문에 더 예쁘지 않습니다. 어느 말 한 마디를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쓰는 사람이 스스로 예쁘게 마음을 가꾸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즐겁게 삶을 짓고 기쁘게 살림을 가꾸며 곱게 사랑을 속삭일 줄 안다면, 우리 손과 입에서 흐르는 말은 늘 예쁠 만하리라 봅니다.


  말은 외워서 쓰지 못합니다. 말은 살면서 씁니다. 말은 예쁘거나 안 예쁘다는 틀로 가리지 못합니다. 말은 살림을 짓는 바탕이 되도록 슬기롭게 다스리면서 씁니다. 2016.7.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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