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0일, 전북 삼례에 있는 작은도서관에서
조촐히 이야기마당을 나눕니다.
이 자리에 모일 분들하고 함께 나눌 이야기를
미리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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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숲에서 아이랑 누리는 새로운 말
― 어른으로 깨어나는 말을 배우기
얼마 앞서 어느 분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쓴 책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을 읽으시기는 했는데, 이 책에 나온 대로 말을 고쳐서 쓰기는 힘들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자리에서 어느 말을 고쳐서 쓰기 어려우셨느냐 하고 여쭈었어야 했는데, 다른 분이 함께 계셨기에 미처 묻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열두 살 눈높이에 맞추어 쓴 글이고, 청소년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말을 새롭게 배우기를 바라는 뜻으로 썼어요. 그러니 ‘청소년 아닌 어른’이 이 책에 나온 이야기가 어렵다고 들려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떤 말이든 새롭게 가르쳐 주면 그자리에서 곧장 새롭게 배우는데, 어른은 어떤 말이든 아무리 새롭게 가르치고 또 가르쳐 주어도 그자리뿐 아니라 그 뒤로도 좀처럼 새롭게 배우지 못하시더군요.
이때에 내 모습을 문득 돌아봅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내 시골살림을 얼마나 새롭게 배우느냐 하고 말이지요. 새롭게 배운 뒤에는 이렇게 얻은 배움을 살림에 얼마나 받아들이느냐 하고 말이지요. 한두 번쯤 잘 받아들이다가도 서너 차례쯤 될 즈음 어느새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않느냐 하고 말이지요.
우리는 말만 새롭게 써야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말은 생각을 나타내는 소릿결이니, 말을 새롭게 쓰려고 한다면, 생각을 새롭게 가꾸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몸짓을 새롭게 가다듬으려 한다면, 몸짓에서 비롯하는 살림살이를 새롭게 돌보려고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말뿐 아니라 모든 몸짓과 삶과 살림을 늘 새롭게 추스르면서 하루하루 누린다고 할 수 있어요. 말도 생각도 몸짓도 살림도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지 않는다면 즐거움이나 기쁨이 찾아들지 않는다고도 할 만하다고 봅니다.
어제 먹은 맛난 밥은 어제 먹은 밥이에요. 오늘은 오늘 새로운 밥을 먹어야 합니다. 어제 맛난 밥을 먹었으니 어제 맛본 밥만 떠올리면서 오늘 굶어도 되지 않아요. 하루쯤 맛난 밥을 먹었으니 열흘이나 보름쯤 굶어도 되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할 테지요? 날마다 맛난 밥을 먹어야 해요. 이처럼 날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말을 할 줄 알아야 해요. 날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몸짓으로 살림을 가꾸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살 줄 알아야 해요.
고쳐쓰기 어려운 말이 있을까요? 있다고 여긴다면 있고, 없다고 여긴다면 없어요. 고쳐쓸 수 없는 말이 있을까요? 있다고 여기니까 있고, 없다고 여기니까 없어요.
우리는 바로 이 대목을 잘 살펴서 알 수 있어야지 싶어요. 나 스스로 내 말투와 말버릇과 말결과 말놀림과 말넋과 말삶을 새롭게 가꾸려고 하는 마음이라면, 나는 어제까지 쓰던 모든 내 말투·말버릇·말결·말놀림·말넋·말삶을 내려놓거나 버릴 수 있어요. 이러면서 아주 새로운 말을 쓸 수 있어요.
그렇다고 외국말이나 외계말을 쓰자는 소리는 아니에요. 낡거나 어설픈 모든 말을 걷어치운 뒤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말로 내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는 소리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누구나 삶과 살림과 사랑을 오늘부터 새롭게 가꿀 수 있어요. 하려고 하니까 하지요.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못하고요. 도시를 떠나겠다는 생각은 으레 했지만 도시를 못 떠나는 사람들은 아직 스스로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탓이에요. 바쁘다는 핑계나 아직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도시살이가 ‘살 만하고 재미있으며 즐겁기’ 때문이지요. 도시살이가 ‘살 만하지 않고 재미없으며 안 즐겁다’면 바로 그만두겠지요.
아이들을 보셔요. 아이들은 할 만하지 않은 놀이는 조금도 안 합니다. 아이들은 재미없는 놀이는 아무리 시켜도 안 합니다. 아이들은 안 즐거운 놀이는 아예 안 쳐다보아요.
이 말을 써야 옳지 않습니다. 저 말을 안 쓰니까 그르지 않습니다. 이 말을 쓸 적에는 이 말과 얽힌 삶을 겪습니다. 저 말을 쓰는 동안에는 저 말하고 맞물린 살림을 누립니다.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나 쓴다고 할 적에는 생각도 아무렇게나 한다는 뜻입니다. 살림도 아무렇게나 한다는 뜻이고요. 말을 잘 가리고 살펴서 쓴다고 할 적에는 생각도 잘 가리고 살펴서 한다는 뜻입니다. 살림도 이와 같을 테고요.
그러나 우리가 쓸 말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잘 들어맞는 말’도 아닙니다.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말’도 아니에요. 우리가 쓸 말은 ‘내 생각을 슬기롭게 드러낼 수 있는 즐거운 살림을 지으면서 아름답게 사랑하는 하루를 마음껏 밝히는 기쁜 웃음이 묻어나는 말’이어야지 싶습니다.
저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바로 이 대목을 더 도드라지게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로 엮어 보았습니다. 비슷한말을 꾸러미로 묶어서 차근차근 살피면서 생각을 더 깊고 넓게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다 다르게 쓰는 까닭이 있는 말을 새롭게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저는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어요. 이 책은 이름처럼 ‘숲에서 말을 살린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우리가 늘 쓰면서 언제나 마음에 담을 말이란 ‘숲이 한결같이 숲’이듯이 ‘말이 한결같이 말’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적어 보려 했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잠든 뭔가 대단한 말을 캐내어서 쓰자는 뜻이 아니에요. 가장 수수한 말을 가장 즐겁게 쓰자는 뜻입니다. 가장 투박한 말을 가장 곱게 쓰자는 뜻이에요.
풀을 풀이라 하고 꽃을 꽃이라 하며 나무를 나무라 합니다. 하늘을 하늘이라 하고 바다를 바다라고 하며 집을 집이라고 합니다.
뭔가 좀 말이 안 된다고 느끼실 수 있을까요? 풀, 꽃, 나무, 하늘, 바다, 집 같은 수수한 낱말을 들었는데, 이 수수한 낱말을 놓고 한국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온갖 한자말하고 영어가 퍼져요. 수수한 말로 수수한 생각을 짓고, 이 수수한 생각에서 스스로 즐거우면서 새로운 살림을 꽃피울 수 있을 텐데, 온갖 한자말하고 영어로 뒤범벅을 이루니, 머리에 자질구레한 지식만 가득 채우는 꼴이 되기 일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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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자리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시골숲에서 아이랑 누리는 새로운 말입니다. 둘째는, 어른으로 깨어나는 말을 배우기입니다.
‘시골’은 사람이 가꾸어 지내는 보금자리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숲’은 사람 곁에 있으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숨결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시골숲’이라 할 적에는 사람이 스스로 가꾸고 보살필 뿐 아니라 사람을 가꾸어 보살펴 주는 따사로운 숨결이 늘 어우러진다고 하는 대목을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그냥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시골이 아니라, 숲이 함께 있고 숲을 늘 가꾸며 사랑할 수 있는 ‘시골숲’이어야지 싶고, 이 시골숲에서 우리는 저마다 ‘숲집(숲을 이루는 집)’을 지어야지 싶어요.
시골숲에서 아이랑 누리는 새로운 말이란,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어버이와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말을 새롭게 짓고 생각해서 물려줄 뿐 아니라 어버이와 어른 스스로 즐겁게 누리자는 이야기입니다. 물려줄 수 없는 말은 처음부터 쓰지 말자는 뜻이에요. 물려줄 만한 살림을 짓고, 물려줄 만한 살림을 집에 두면서 살자는 뜻이에요. 물려줄 만한 말을 즐겁게 아름답게 쓰면 아이들은 이 말을 저절로 배울 수 있어요.
어른으로 깨어나는 말을 배우기란 아직 어려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학교를 너무 오래 다녔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더 높은 학교를 보내려고 하는 시험공부를 시키고, 마지막 대학교에서는 회사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공부를 시켜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사람되는 공부나 사랑짓는 공부나 살림하는 공부는 가르치지 못해요. 지식만 가르치고 책만 외우도록 시켜요.
우리는 한국사람이지만 막상 학교를 다닐 적에는 ‘한국말을 배운 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국어 수업’은 있되 ‘말을 배우지’는 못해요. 이리하여 학교를 오래 다닌 분이나 지식인이나 학자나 작가는 ‘이녁 몸과 마음에 길든 말투’를 쉽게 떨치지 못합니다. 익숙한 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고 말아요. 어른답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고 ‘이녁 스스로 익숙한 대로’만 말을 하거나 글을 써요.
나이를 많이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아요. 나이만 많이 먹는 사람은 ‘철딱서니없는’ 사람입니다. 한자말 ‘부지’를 붙여 ‘철부지’라고도 하지요. 어른이란 ‘철이 제대로 든 슬기로운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시집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았기에 어른이나 어버이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철이 들어야 어른이고, 스스로 슬기롭게 살림을 지어야 어버이입니다. 말을 비롯해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어른이거나 어버이예요.
그러나 이 대목을 한국 사회는 거의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쳐요. ‘말’이란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말 하나는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모든 삶과 살림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밑돌입니다. 모든 사회와 마을과 집은 ‘말을 하면’서 이루니까요. 말을 슬기로우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쓰는 뜻은 ‘한국말 또는 토박이말을 아끼거나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을 슬기로우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쓰는 뜻은 ‘내 넋을 슬기롭게 깨우치고 내 몸을 즐겁게 다스리며 내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웃음꽃이 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은 말은 없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는 말이 있습니다. 더 나쁜 말이나 덜 떨어진 말은 없습니다. 언제나 한 걸음씩 새로 내딛으면서 말을 하나씩 배웁니다. 삶자리가 시골이든 도시이든, 마당이 있는 집이든 없는 집이든,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꿈을 품고서 이 꿈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슬기로운 숨결을 말 한 마디에 담아서 즐겁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7.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말넋/말노래 .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