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놀라운 힘
장 가브리엘 코스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259



하늘 닮은 파랑은 생각을 살찌우는 빛깔

― 색의 놀라운 힘

 장 가브리엘 코스 글

 김희경 옮김

 이숲 펴냄, 2016.5.30. 13000원



  “넌 어떤 빛깔이 좋으니?” 하고 묻는 말에 어린 사내는 섣불리 ‘빨강’이나 ‘분홍’을 댈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지 싶지만, 아직도 어린 사내한테는 빨강이나 분홍이나 귤빛이나 감빛보다는 파랑을 좋아하라고 넌지시 밀지 싶습니다. 옷 한 벌을 고를 적에도 사내는 부드럽거나 환하거나 울긋불긋한 빛깔하고는 동떨어져야 하는 듯이 여기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크게 나아졌지 싶지만, 아직 이 틀이 깨졌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공공시설에 있는 뒷간을 알리는 빛깔을 보면, 사내는 으레 파랑이요 가시내는 으레 빨강입니다. 이렇게 해야 눈에 잘 뜨일는지 모르나, 참말로 사내와 가시내는 이 두 가지 빛깔로 갈라도 될 만할까요?



인간의 눈이 감지하는 색은 파장이다. 눈은 380nm에서 780nm 사이의 일부 파장을 감지한다. (9쪽)


구름이 희게 보이는 것은 물방울 입자가 빛의 파장보다 커서 스펙트럼 전체가 반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양이 멀리서 붉게 보이는 것은 대기에 떠 있는 분자들이 수백만 개의 미세한 거울처럼 작용해서 사방으로 빛을 분산하기 때문이다. (20쪽)



  장 가브리엘 코스 님이 쓴 《색의 놀라운 힘》(이숲,2016)을 읽습니다. 이 책은 빛깔마다 어떻게 다르며, 이 빛깔을 어떻게 살리면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이를테면 파랑을 셈틀 바탕화면에 깔거나 교실 벽을 바르는 빛깔로 삼으면 ‘생각하는 힘(창의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빨강이라는 빛깔을 쓰면 ‘생각하는 힘’은 떨어지지만 ‘쏟아내는 힘(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온통 파랗게 물들인 곳에서는 마음이 차분하면서 온갖 즐거운 생각이 춤을 추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온통 빨갛게 물들인 곳에서는 머리가 어지러우면서도 몸은 어쩐지 어느 한쪽으로 힘을 쏟아내는구나 싶기도 해요.



물고기도 인간보다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물고기는 인간의 스펙트럼에 더해 자외선 스펙트럼 색도 인식할 수 있다. (34쪽)


오늘날 대부분 교실의 벽이나 가구는 교육에 가장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색으로 칠해져 있다. 창고나 구치소처럼 학교에도 무채색 환경이 지배적이다. 이 문제를 3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흰색·검은색·갈색이 학생들의 성적을 낮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55쪽)



  어릴 적을 돌아보고, 《색의 놀라운 힘》을 읽고, 또 오늘날 흐름을 헤아려 봅니다. 사회가 어떤 흐름을 타느냐에 따라 사회에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빛깔은 틀림없이 바뀝니다. 지난날 한겨레는 하얗게 눈부신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하얗더라도, 시골마을이나 시골집 빛깔은 하얗지 않았습니다. 시골사람이 늘 만지는 흙은 까무잡잡한 밤빛입니다. 시골사람이 늘 만지는 풀은 말 그대로 풀빛입니다. 나무마다 줄기 빛깔이 다릅니다. 풀잎이나 나뭇잎도 저마다 풀빛 결이 다릅니다. 더욱이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이 알록달록 예쁘게 피고 져요. 열매를 맺을 적에도 온갖 빛깔이 곱습니다. 가을에 물드는 나뭇잎도 새삼스럽지요.


  한겨레를 두고 ‘흰빛겨레’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면서도, 막상 옛날 한겨레를 이룬 수많은 시골사람 살림살이를 돌아본다면 ‘무지개빛겨레’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한겨레뿐 아니라 이웃 모든 겨레는 이와 같으리라 느낍니다. 빛깔마다 다 다르게 즐겁거나 반갑거나 고운 결을 저마다 나름대로 잘 살리던 살림이었을 테니까요.



파란색은 창조적인 색이다. 뇌는 파란색을 보면 속박에서 벗어난다. 이 색은 자유를 상징하고, 균형감과 충만감을 준다. 하늘이나 바다를 바라볼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효과를 보면 알 수 있다. (132쪽)



  집 안팎을 어떤 빛깔로 꾸미느냐에 따라 이 빛깔을 늘 바라보면서 받아들이는 생각이나 마음이 바뀐다고 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옳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아무 빛깔을 아무렇게나 입히지 말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살찌우거나 북돋울 만한 빛깔을 슬기롭게 고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저마다 좋아하는 빛깔을 스스럼없이 아끼면서 다룰 수 있어야지 싶어요. 《색의 놀라운 힘》이라는 책에서도 밝히는데요, 모든 빛깔이 어느 한 자리에서 100% 통계대로 맞아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빛깔은 빛깔대로 잘 다루어야 하지만, 어떤 빛깔을 마주하든 ‘이 빛깔을 다루려는 사람들 손길’에 따라서 사뭇 달라진다고 하는 대목을 늘 생각해야지 싶어요.


  하양만 깨끗하지 않습니다. 노랑도 보라도 깨끗합니다. 빛깔을 마주하면서 다루는 사람 스스로 마음을 활짝 열 적에 비로소 ‘생각하는 힘’이 샘솟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은 꽁꽁 가두어 놓은 채 파랑이라는 빛깔만 둘레에 깔아둔대서 ‘생각하는 힘’이 샘솟지는 않아요.



러시아어에서 빨간색과 아름다움은 동의어이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의 오역이다. 빨간색은 색을 대표하는 색이다. (135쪽)



  우리 집 작은아이는 작은아이입니다. ‘남자’나 ‘여자’라는 틀로 가를 아이가 아닌 그냥 작은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누나한테서 모든 옷을 물려입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입은 옷으로만 놓고 ‘남자’이냐 ‘여자’이냐를 가르려 한다면 부질없습니다. 어떤 옷을 몸에 걸쳤든 ‘아이 넋이나 숨결’을 읽고서 느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내도, 분홍 옷을 입은 사내도,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까만 옷을 입은 가시내도, 파란 옷을 입은 가시내도, 참말로 모두 사랑스러워요. 빛깔마다 얽힌 숨결을 읽으면서, 어느 빛깔이든 우리가 저마다 좋아하는 빛깔에 기쁜 숨결을 새롭게 담을 수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다운 ‘빛살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6.6.2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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