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물 책읽기



  내가 왜 기계빨래를 그리 안 좋아했는가를 돌아봅니다. 딱히 기계빨래를 거스를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두 손으로 비벼서 빨래를 하면, 내 옷가지에 그동안 깃든 땀내음이나 먼지내음을 고스란히 헤아릴 뿐 아니라, 빨래를 하면서 빨랫물이 얼마나 나오는가를 모두 지켜볼 수 있어요. 기계가 빨래를 해 주는 일을 싫어한다기보다 ‘전기 없는 삶’이라면 옷을 어떻게 건사하려 하느냐는 마음으로 늘 ‘손으로 짓는 살림’을 헤아리려 했습니다. 이러다가 요 며칠 사이에 문득 새롭게 하나를 깨닫는데, 내가 손빨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빨랫물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구나 싶어요. 되살림비누를 쓰더라도 빨랫물에 거품이 생긴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거품이 생긴다면, 이 거품은 무엇이겠느냐 하고 돌아봅니다. 어제부터 설거지를 할 적에는 이엠발효액만으로 하는데, 꽤 잘 되고 깨끗합니다. 설거지물도 한결 깨끗하고요. 빨랫물을 쳐다볼 수 있다고 해서 빨래나 살림을 더 잘 헤아리지도 못했다는 대목을 깨달으면서,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고 해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제대로 헤아린다고는 할 수 없다는 대목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우리가 읽을 것이라면 ‘책’이 아니라 ‘살림’일 테지요. 애써 책을 읽는다면 ‘책에 깃든 살림’을 읽어야 할 테고요.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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