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교실 - 문현식 동시집
문현식 지음, 이주희 그림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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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2



형아는 날 좋아하고, 난 엄마를 좋아하지

― 팝콘 교실

 문현식 글

 이주희 그림

 창비 펴냄, 2015.5.15. 9000원



  교사 문현식 님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몫을 맡습니다. 이 같은 교사 노릇을 꾸준히 하면서 어느새 ‘어른 마음’에서 ‘아이 마음’으로 기울어지는구나 싶습니다. 교사 자리는 어른이 맡습니다만 어른 눈높이나 눈길만으로는 아이를 즐겁게 가르치거나 슬기롭게 이끌기 어려운 줄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어른은 으레 ‘어른 눈길’이 아닌 ‘아이 눈길’로 바뀌곤 합니다. 그저 어른으로 있는 채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로서는 너무 어렵거나 힘들기 마련이에요. 아이는 어른보다 키나 몸도 작고 힘도 여립니다. 더욱이 아이는 어른처럼 온갖 사회 지식을 몸에 익히지 않았어요. 그러니 수많은 지식이나 이론으로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로서는 못 알아듣겠지요.


  교사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도 언제나 아이 눈높이나 눈길이 되면서 아이를 따사로이 사랑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교사와 어버이 모두 아이하고 한마음이 되려는 몸짓이 되면서 서로 즐거운 하루를 새롭게 누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나한테만 죽어라 / 공 던지는 애 / 꼭 있다. // 이상하게 괜히 / 미운 짓 하는 애 / 꼭 있다. // 더 이상한 건 / 그런 애 좋아하는 애 / 꼭 있다. / 여기 있다. (이상하게 좋은 애)


커다란 팝콘 기계 안에 / 옥수수 알갱이 서른 개가 / 노릇노릇 익으면서 / 톡톡 튄다. // 알갱이들아 / 계속 튀어라. / 멈추면 선생님이 냠냠 / 다 먹어 버릴지도 몰라. (팝콘 교실)



  교사 문현식 님이 빚은 동시집 《팝콘 교실》(창비,2015)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팝콘처럼 뻥뻥 터지듯이 즐겁거나 놀랍거나 새롭다는, 때로는 개구지거나 밉살맞거나 짜증스럽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에는 즐거운 웃음이 뻥 터진다고 해요. 어느 날에는 하나도 안 즐거운 골부림이 뻥 터진다고 해요. 이 모두 가만히 마주하면서 차분히 다스리기에 교사 문현식 님은 동시를 꾸준히 쓰면서 아이들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옥상 철문이 열려 있어 / 몰래 올라갔다. // 몰랐다 / 교실 위에 / 이렇게 파란 하늘이 있었는지. (학교 옥상)


축구 잘하는 / 차돌이 일기는 / 축구 일기. / 오늘은 세 골 넣었다고 쓰는 일기. // 일기 쓰기 싫어하는 / 내 동생 일기는 / 어제 일기. / 오늘은 어제랑 같다고 쓰는 일기. (일기 쓰기)



  〈학교 옥상〉 같은 동시는 아이들이 겪은 일일까요? 아니면 초등학교 교사로서 겪거나 느낀 일일까요? 아니면 아이와 어른(교사)이 함께 겪거나 느낀 일일까요?


  요즈음은 초등학교 어린이도 온갖 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푸름이 못지않게 입시와 수업과 학습으로 어지럽게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초등학교 어린이예요. 이러다 보면 아이들은 막상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을 수 있어요.


  교사 문현식 님이 나고 자랐다고 하는 서울은 높은 건물이 많아서 하늘 한 조각을 올려다보기에도 만만치 않을 만하고, 길에 자동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섣불리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을 만해요. 학교에서도 수업이 바쁘니 옥상이라든지 운동장에 드러누워서 하늘바라기를 할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른도 아이도 너무 바쁘면 하늘을 모르는 채 하루가 흐르고, 어느덧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빠르게 지나가기 일쑤예요. 바쁜 걸음을 멈추고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하늘을 보거나 느끼거나 알 수 있어요. 바쁜 걸음을 멈추고 들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나비도 보면서 비로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숨결을 보거나 느끼거나 알 수 있어요. 바쁜 걸음을 멈추어야 비로소 손에 연필을 쥐고 동시를 쓸 수 있어요.



넌? / 나? 52점 // 집에 가면 쩔겠네? / 아니. // 안 혼나? 쩐다. / 우리 집 완전 쩔어. 52점 맞아도 막 웃어. (쩔어)


형아가 먹는 약은 알약 / 내가 먹는 약은 물약. // 형아가 잘하는 것은 공부 / 내가 잘 안 하는 것도 공부. // 형아가 젤 좋아하는 사람은 나 / 내가 젤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 (형아와 나)



  살짝 장난스럽거나 개구진 이야기를 동시로 담은 《팝콘 교실》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있으면 큰아이는 동생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동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어머니(엄마)가 좋다고 하기 마련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러나 동생도 제 형이나 언니나 누나를 더없이 좋아하겠지요. 서로 아끼면서 돌보는 사이일 테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일 테지요.


  교사와 학생 사이도 이와 같으리라 느낍니다. 교사 문현식 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좋다’고 말할 테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엄마)가 좋다’고 말할 테지요. 교사 문현식 님은 교실에서 아이들한테 ‘우리 공부하자’고 말할 테지만, 아이들은 ‘우리 공부 말고 놀이 해요’ 하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 그러니까 공부하는 곳입니다만, 이 학교가 공부뿐 아니라 즐겁게 놀이를 누리고, 동무를 아끼는 마음을 배우며, 씩씩하게 자라는 몸짓으로 살림도 익히는 멋진 배움터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고 살림과 사랑도 배운다면, 이 멋진 배움터에서 새로우면서 기쁜 노래(동시)가 앞으로도 신나게 흐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16.6.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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