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 아이, 자란 아이



  집 앞뒤로 밭을 일구면서 씨앗을 심는데, 우리가 안 심은 싹이 꽤 크게 튼다. 밭을 일구다가 ‘콩알 비슷한 씨앗’에서 싹이 튼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아니, 이곳에 콩씨를 묻어 두었기에 봄이 되어 싹이 텄을까요? 무슨 씨앗이고 어떤 싹인지 모르지만 지켜보기로 합니다. 앞밭에서도 뒷밭에서도 이 싹이 틉니다. 어느덧 떡잎이 넓게 퍼지면서 새로운 잎이 돋으려 하기에, 어렴풋하게 어떤 씨앗이었네 하고 어림합니다. 더 자라면 또렷하게 깨달을 테지요. 한나절 남짓 흙을 만지면서 호미질을 하노라니, 허리가 결려 끙끙거리면서 흙바닥에 폴싹 주저앉아서 돌을 캐노라니, 그야말로 수많은 개미가 이 밭자락을 기어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온갖 무당벌레가 기거나 날거나 쉬는 모습을 봅니다. 조그마한 개미가 제 몸보다 열 곱이나 큰 벌레를 잡아서 끌고 가는 모습을 봅니다. 밭일을 쉬며 가만히 해바라기를 하는 동안에는 작은 새가 발치까지 내려앉아서 콩콩 뛰다가 날아갑니다. 마을고양이 두어 마리가 내 옆을 아무렇지 않게 천천히 스치듯이 지나갑니다. 구름이 그림자를 지을 적에는 그늘이 생기고, 구름이 지나가면 다시 땡볕입니다. 밭에서 일어서면 마을이 휘 보이고, 밭에 주저앉아서 흙을 쪼면 우리 집 풀밭만 보입니다. 문득 이 조그마한 밭자락이 우리 집으로서는 숲이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텃밭을 거느린 모든 시골집은 저마다 조그맣게 집 둘레에 숲을 이루는 셈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는 우리 집에 어떤 숲이 깃들어 숲바람이 부는 살림을 짓는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며 기운을 내어 더 호미질을 합니다. 2016.5.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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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3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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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4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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