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읽는 삶 146
아이들은 ‘한자말’을 얼마나 알야아 할까?
―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 (D-1 단계)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 글
박종호 그림
아울북 펴냄, 2015.10.21. 12000원
12000자는 무척 많은 어휘이지만 핵심 어휘는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초등교과서에는 한자가 42만 번도 넘게 나오는데 100번 이상 등장하는 한자는 500개를 넘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말)
아홉 살 큰아이가 어느 책을 읽다가 ‘특징’이라는 낱말이 나와서 잘 모르겠다면서 어머니한테 묻습니다. 아이가 어머니한테 묻는 말을 옆에서 듣다 보니, 참말 어른들은 ‘특징(特徵)’이라는 한자말을 꽤 흔히 쓰지 싶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특징’을 찾아보면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으로 풀이합니다. ‘특별(特別)’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으로 풀이해요. 그러니까 ‘특징 =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게 눈에 뜨이는 점’을 가리키는 셈인데, ‘보통(普通)’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을 뜻한다 하고, ‘구별(區別)’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남”을 뜻한다고 해요. 다시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를 뜻한다 하며, ‘차이(差異)’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을 뜻한다 하고, ‘색(色)다르다’는 “동일한 종류에 속하는 보통의 것과 다른 특색이 있다”를 뜻한다 해요. 이제 여기에서는 ‘특색(特色)’이 나오는데, 이 한자말은 “보통의 것과 다른”을 뜻한다고 해요.
자, 이제 ‘한자말 뜻풀이’ 찾기를 마칩니다. ‘특징’ 하나를 알려고 참으로 여러 한자말을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다시금 간추리자면, ‘특징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하여 (차이가 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보통과 다른 특색이 있어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특별’하지 않고 다른 ‘보통과 다른’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인 셈입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낱말 가운데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한국말사전을 찾아본 어버이라면 ‘특징’을 놓고 빙글빙글 수없이 겹말풀이로 흐르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다 진저리를 치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 더 간추리자면, ‘특징’을 풀이하려고 하는 동안 ‘특별·보통·구별·평범·차이·색다르다·특색’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특징’을 풀이하며 처음 나오는 ‘특별’은 ‘보통’을 거쳐서 다시 ‘특징’으로 돌아가요. 게다가 여러 한자말을 가만히 살피면 어디에나 ‘다르다’라는 한국말이 나오지요. 다시 말해서 “달라서 눈에 뜨이는 모습”을 ‘특징’이라 할 만하고 ‘특별·특색’도 이와 같다고 여길 만해요.
종자(種子)는 씨앗을 뜻해요. 종(種)이 ‘씨앗’이라는 뜻이거든요. 우리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건 모두 작은 씨앗 덕분이랍니다. 쌀을 만드는 건 볍씨, 옷을 만드는 건 목화씨니까요. (32쪽)
무인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라는 뜻이에요. 무죄는 죄가 없다는 뜻이고, 무료는 요금이 없다는 뜻이랍니다 … 다음 빈칸을 채워 낱말을 완성해 보세요. 이름 없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은 □□씨,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용사는 □□용사. (94쪽)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에서 펴낸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 (D-1 단계)》(아울북,2015)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나오는 한자말을 살펴서 이 한자말을 잘 익히도록 도와주는 참고서라 할 만합니다. 책이름에 나오는 ‘12000’은 우리 사회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쓰인 한자말이 자그마치 12000 낱말이 넘기 때문에 이 12000 가지 한자말을 샅샅이 익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숫자입니다. 모두 20권으로 엮은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이고, 네 등급으로 나누어서 등급마다 다섯 권씩 묶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책에서 밝히는 통계 자료를 보니, 12000 가지가 넘는 한자말이 우리 사회 어린이책에 나온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100번 넘게 나타나는 ‘흔히 쓰기에 잘 알아야 할 만한’ 한자말은 500가지도 안 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12000 가지나 되는 한자말을 어린이책에 쓰는 우리 사회요 어른이라 하지만, 막상 어린이 눈높이에 걸맞지 않게 한자말을 좀 지나치게 쓴다고 할 수 있어요.
‘씨앗’이라는 한국말이 있는데 우리는 왜 ‘종자’ 같은 한자말을 쓰거나 가르쳐야 할까요? 이름을 알 수 없을 적에는 흔히 ‘아무개’라는 한국말을 쓰는데 왜 ‘무명’이라는 한자말까지 써야 할까요?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거나 한자말을 안 써야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우리 삶과 살림과 생각과 마음과 뜻을 알맞게 나타낼 만한 낱말을 슬기롭게 쓸 수 있도록 어린이를 이끌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걸어서’ 간다고 하면 될 일을 ‘도보’로 간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쉰다’고 하면 될 일을 ‘휴식’이라 하지 않아도 돼요. ‘하늘을 난다’를 ‘공중을 비행한다’라 하지 않아도 되고, ‘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을 ‘취침하고 기상한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을 살펴보니, 이 책은 어린이가 12000 가지나 되는 한자를 차근차근 익히도록 잘 도와주는 얼거리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굳이 안 가르쳐도 되는 한자말까지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나왔다’는 까닭 때문에 애써서 외우도록 이끄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쉽게 쓰고 주고받을 만한 한국말이 버젓이 있다면 구태여 ‘한자 지식 외우기’까지 이끌지 않아도 되리라 느껴요. “이 물건은 특징이 이렇습니다”라 써도 되고, “이 물건은 이렇게 다릅니다”라 써도 돼요.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쓰도록 이끌되, 생각을 환하게 열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곰곰이 짚고 생각할 대목이라면, ‘하늘’이나 ‘땅’이라고 하는 낱말은 이 낱말을 소리로뿐 아니라 뜻과 느낌으로 함께 살필 때에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천·지’나 ‘天·地’라고 적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천·지’이든 ‘天·地’이든 ‘하늘·땅’을 알아야 비로소 말을 알아요.
아이들한테 새로운 말을 가르쳐서 이 새로운 말로 아이들 나름대로 생각을 즐겁고 아름답게 가꾸도록 북돋우는 테두리에서 영어도 한자말도 한국말도 슬기롭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한테 더 많은 한자말을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한자 천재’나 ‘한자 달인’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말’을 알아야 하고, ‘말에 생각을 담는 길’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2016.4.24.해.ㅅㄴㄹ
하늘이나 땅이란 뜻이 ‘천(天)’이나 ‘지(地)’라는 음으로 낱말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익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낱말 속에서 이 관계를 살피는 습관만 들여놔도 초등 어휘 학습의 반은 끝납니다. (프로그램 특징 : 10살 어휘, 수능 시험까지 간다)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