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지음, 송은주 옮김 / 살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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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나가는 그림’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아요

―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글

 송은주 옮김

 살림 펴냄, 2016.3.14. 15000원



  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늘 가방에 둡니다. 아이들하고 늘 시골집에서 하루 내내 붙어서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혼자서 멀리 바깥일을 보러 다녀와야 할 적에는, 미리 가방에 둔 ‘아이들 그림’을 만지작거리면서 새삼스레 들여다봐요. 아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그려서 아버지한테 선물한 조그마한 그림은 언제나 나한테 새롭게 기운을 북돋아 준다고 느낍니다.


  나도 아이들한테 때때로 그림 선물을 합니다. 큰아이 모습도 작은아이 모습도 조그맣게 종이인형으로 오려서 건네요. 소꿉놀이를 할 적에 쓰라고 선물로 줍니다. 여느 때에도 늘 싱그러이 웃고 노래하는 고운 숨결로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건넵니다.



그가 램프를 들어 올렸을 때 희미한 불빛 속에 빛나는 것은 결혼 초기에 에두아르가 그려준 내 초상화였다. 탐스러운 머리숱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화사하게 피어난 맑은 피부에 사랑받는 사람의 차분한 태도로 앞을 응시하는, 결혼 첫 해의 내가 있었다. (16쪽)


독일군에게 요리를 잘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부러 망치기도 겁이 났다. 오븐에서 구운 닭을 꺼내 육즙을 끼얹으면서 언젠가는 이 음식을 눈으로만 보면서도 즐길 수 있게 될지 모른다고 혼잣말을 했다. (48쪽)



  조조 모예스 님이 쓴 소설책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살림,2016)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오고, 여러 나라가 나옵니다. 줄거리를 놓고 보자면,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 한 점을 둘러싼 사람들이 나온다고 할 텐데, 소설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림을 둘러싼 사람들 이야기’ 하나하고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 이야기’ 둘이지 싶습니다.



처음 한 달이 지나면서 사령관을 다른 이들에 대해 생각하듯이 짐승, 독일놈으로 치부해 버리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독일인들은 전부 다 야만적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들에게도 아내와 어머니, 아기가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86쪽)


“그림과 남편의 자유를 맞바꿀 수 있을까요? 아니면 …… 저와 남편의 자유를 맞바꿔야 하나요?” (147쪽)



  먼저, 그림을 둘러싼 사람들로는 프랑스 시골마을에 있는 사람들하고, 이 프랑스 시골마을로 쳐들어온 독일 군인들입니다. 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문득 ‘독일 점령지’가 된 마을에서 숨을 죽여야 합니다. 젊은 사내는 프랑스 군대로 끌려가든 독일 부역병으로 끌려가든 해야 합니다. 마을에는 아이랑 가시내랑 늙은 할배가 남을 수 있을 뿐입니다.


  첫째 세계대전이라 하는, 유럽에서 터진 커다란 싸움판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중앙집권을 이룬 나라는 군대를 키워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느냐 하면, 돈을 더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하자원을 가로채고,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며, 땅(나라땅·국토)을 넓히겠다는 뜻이에요.


  소설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돌아봅니다. 점령지가 된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은 독일 군인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는 독일군한테 빌붙으면서 한결 나은 살림을 이루는 듯합니다. 누군가는 독일군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한숨을 짓습니다. 누군가는 독일군 앞에서 씩씩하게 삿대질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이 쿵쾅거립니다.


  군대를 키워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간 독일은 참말로 가난한 나라였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나라살림은 군대나 전쟁무기가 아닌 ‘사람들 살림살이 가꾸는 길’에 썼다면, 중앙집권 권력을 키우지 말고 수수하게 오순도순 짓는 고운 나라살림이 되도록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하자원을 더 얻어서 경제를 북돋우는 길 말고는 살림살이를 펴는 길이 없었을까요?



모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남자들은 참 이상해요. 당신이 전혀 문제없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아, 제기랄. 시간 좀 봐. 당신은 미친 달릭하러 나가야지요. 3시에 돌아와서 레스토랑에는 전화로 아파서 못 간다고 할게요. 우리 변덕이 죽 끓는 사내새끼들 욕이나 실컷 해 주고 그놈들한테 어룰릴 중세 형벌이라도 생각해 봐요.” (297쪽)



  다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로는 독일군 사령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책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에서 두 겹 얼거리를 이루는 2010년대 사람들이 있어요. 1910년대 프랑스 시골에서는 ‘아내와 아이를 고향에 두고’ 프랑스에서 군인으로 일해야 하는 독일군 사령관이 ‘그림에 깃든 멋과 꿈’을 사랑스레 알아차립니다. 2010년대 영국 런던에서는 ‘남편을 일찍 여읜 아주머니’가 이 그림을 더없이 사랑합니다. 남편이 선물한 뜻깊은 그림일 뿐 아니라, 돈값이 아닌 그림결로 마음을 사로잡아서 언제나 이 그림을 바라보지요. 2010년대 런던에서 사는 아주머니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림에 나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저 이 그림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그런데 백 해를 사이에 둔 두 나라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 하나가 불거집니다. 1910년대 프랑스 시골마을에서는 ‘교화소에 갇혔다는 남편’을 찾고 싶은 아주머니가 독일군 사령관한테 이 그림을 주고, 이 그림뿐 아니라 ‘다른 것’도 줄 테니 남편을 찾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빕니다. 2010년대 영국 런던에서는 ‘뒤늦게 그림값이 치솟은 어느 무명화가였던 사람이 남긴 작품’을 찾아내어 목돈을 손에 쥐려고 하는 ‘유족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 그림을 찾아내려고 해요.



“그 사람들은 그 전까지는 소피 고모에 대해 관심도 없었어요. 이제 와서 왜 그들이 고모를 팔아서 이득을 봐야 합니까? 에두아르의 가족은 자기들 말고는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어요. 오로지 돈, 돈, 돈뿐이지. 그들이 소송에서 졌으면 좋겠소.” (371쪽)



  500쪽 남짓 되는 소설책은 백 해라고 하는 틈을 어느 만큼 채울 수 있을까요. 이 소설책은 그림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마음과 삶과 사랑과 생채기와 꿈과 슬픔을 얼마만큼 달랠 수 있을까요.


  총칼하고 군홧발을 내세운 서슬퍼런 군인들 앞에서 시골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간다고 하는 마당에 누가 ‘부역자’라고 할 만한가 하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경매에서 사고팔리는 값’이라든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드날리는 이름값’은 하나도 따지지 않고 그저 그림을 사랑하는 숨결을 우리는 어느 만큼 받아들일 만한가 하는 대목을 생각합니다. 전시관이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걸려야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그림’일까요? 여느 살림집 한쪽 벽에 걸어서 늘 바라보는 그림은 ‘안 훌륭하거나 안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점령지 군인이 가로챈 유물이나 그림이라면, 이 유물이나 그림을 되찾으려고 하는 몸짓은 매우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점령지 군인이 휘젓거나 짓밟은 자국 때문에 생긴 생채기를 씻으려고 하는 몸짓도 매우 마땅해야 하겠지요.



그의 팔을 잡은 손아귀 힘이 놀랄 만큼 억세다. “맥캐퍼티 씨, 당신에게 그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요, 인생에는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잔뜩 있다는 거예요.” (482쪽)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라는 이름을 얻으려고 태어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사랑하는 고운 숨결로 살림을 지으려는 마음으로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군인이나 ‘돈에 마음을 빼앗긴 채’ 태어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아끼고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사랑을 곱게 품은 채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이 늘 그리는 아기자기한 그림을 다시 바라봅니다. 잘 보이려는 뜻도 없고, 돈을 받고 내다 팔려는 뜻도 아닌, 그저 즐거워서 그리는 그림을 바라봅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줄 적에도, 아이들하고 함께 텃밭을 일구어 씨앗을 심을 적에도, 우리는 늘 즐거운 살림과 삶을 생각합니다. 소설책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에 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마음에 심을 따스한 사랑’을 되새기려고 하는 몸짓이리라 하고 헤아려 봅니다. 비록 어느 한때에는 돈에 눈이 팔릴 수 있고, 어느 한때에는 그만 남이 시키는 대로 휘둘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아갈 길이란 서로 아끼면서 보살필 줄 아는 따스한 사랑이리라 생각합니다.


  군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이 소설책에서 2010년대 주인공으로 나오는 ‘리브’라는 아주머니는 아주 뜻있는 일을 한 가지 합니다. 1910년대를 살던 ‘소피’라는 아주머니가 남긴 자취 가운데 두 가지를 불로 태워서 없애 주어요. ‘소피’라고 하는 아주머니가 1910년대에 ‘그런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두 가지 자취를 불에 태우지요. ‘리브’는 이 일을 하고 나면 남편이 남겨준 집에다가 그림까지 몽땅 빼앗기고 마는 줄 알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2016.4.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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