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 - 2단계 세바퀴 저학년 책읽기 7
하치카이 미미 글, 이영미 옮김, 미야하라 요코 그림 / 파란자전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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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0



목도리를 다 뜨고 기뻐서 춤추는 ‘빨랑빨랑 양’

―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

 하치카이 미미 글

 미야하라 요코 그림

 이영미 옮김

 파란자전거 펴냄, 2011.8.20. 8900원



  뒤꼍에서 쑥을 뜯고, 이 쑥을 살살 헹구어 물기를 뺀 다음, 반죽을 하고서, 반죽에 쑥을 섞으며, 이 쑥반죽을 부치거나 찝니다. 천천히 익는 반죽은 어느새 쑥부침개나 쑥버무리로 거듭납니다. 뜨끈뜨끈 김이 솟는 쑥부침개나 쑥버무리를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리면, 짜잔 즐겁고 맛난 주전부리나 샛밥이 됩니다.


  옛날에는 누구나 손수 실을 짰을 테고, 오늘날에는 가게에서 실을 고릅니다. 실을 고른 뒤에는 바늘을 고릅니다. 그런 뒤 손수 틀을 짜거나 다른 사람이 마련한 틀을 살펴서 옷을 뜨지요. 손수 틀을 짜든 다른 사람이 마련한 틀을 살피든 품이 들기 마련이고, 바늘을 놀려 뜨개질을 해서 옷 한 벌을 이루기까지 또 제법 오래 품을 들입니다.



느릿느릿 양은 빨랑빨랑 양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지 자꾸자꾸 뒤처지고 말았어요. (14쪽)


빨랑빨랑 양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은근히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자라도 괜찮을까?” (27∼28쪽)



  하치카이 미미 님이 글을 쓰고, 미야하라 요코 님이 그림을 넣은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파란자전거,2011)에는 두 마리 양이 나옵니다. 두 마리 양이 수컷하고 암컷인지, 또는 암컷하고 수컷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두 마리 양은 서로 다른 마음결이지만 늘 곁에 있는 동무요 이웃으로 지냅니다. 이 두 마리 양은 서로 다른 마음결이면서 늘 서로서로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한 발짝씩 살가이 다가서는 살림을 꾸려요.



비가 와서 밭일을 할 수 없는 날, 느릿느릿 양은 그림을 그립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멋진 그림을 그립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물감을 묻힌 붓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립니다. (35쪽)


느릿느릿 양이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는 동안, 빨랑빨랑 양은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뭇잎 석 장. 이게 과연 숲이 될 수 있을까?’ 그림을 보고 있으니 빨랑빨랑 양도 나뭇잎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41쪽)



  ‘느릿느릿 양’은 이 이름처럼 늘 느릿느릿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느리게 움직이지는 않아요. 느릿느릿 양답게 스스로 가장 즐거운 결을 살펴서 움직일 뿐입니다. ‘빨랑빨랑 양’은 이 이름대로 늘 빨랑빨랑 움직인다고 해요. 그렇지만 우악스레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아요. 어느새 빠르게 움직일 뿐입니다.


  느릿느릿 양은 느릿느릿 삶결을 헤아리면서 차분하고 꼼꼼한 살림을 짓습니다. 빨랑빨랑 양은 빨랑빨랑 움직이다가 어느 때에 이 빠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잃는구나 하고 깨닫고는 ‘빠르기’가 아닌 다른 자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두 양은 서로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고, 느림도 빠름도 대수롭지 않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느려 보이거나 빨라 보일 수 있는 삶결이 아닌, 서로 즐겁고 함께 기쁜 자리를 찾을 때에 하루가 그야말로 즐겁거나 기쁜 줄 알아차려요.



느릿느릿 양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빨랑빨랑 양도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걸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요. (49쪽)


빨랑빨랑 양은 느릿느릿 양 몰래 목도리를 뜨고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양은 얼마 전에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느릿느릿 양이 자기 털로 직접 뜬 먹진 파란 목도리였지요 … “다 됐어, 다 됐다!” 빨랑빨랑 양은 너무 기뻐서 빙그르르 돌며 춤까지 추었어요. 자기 물건을 만든 것보다 훨씬 기뻤지요. 빨랑빨랑 양은 예쁜 종이에 목도리를 싸고 리본을 달았습니다. (62, 69쪽)



  빠르기란 무엇일까요? 빠르기는 무엇으로 잴 만할까요? 빠른 사람은 무엇이 빠르다고 할 만할까요? 느림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느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느린 사람은 무엇이 느리다고 할 만할까요?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야 할 까닭이 없고, 어른들도 빠르게 살아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느리게 자란다거나 느리게 살아야 할 까닭도 없지 싶어요. 저마다 다른 몸과 넋에 따라서 알맞게 자라고 살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누군가는 어느 일이 익숙해서 다른 사람보다 빠르구나 싶도록 해낼 수 있어요. 누군가는 어느 일이 손에 익지 않거나 더 오래 누리려고 다른 사람보다 느리구나 싶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말이나 글을 빨리 익히는 아이가 있을 테고, 말도 글도 느리게 익히는 아이가 있어요. 책을 빨리 많이 읽는 어른이 있을 테며, 책은 덜 읽거나 안 읽지만 재미나게 살림을 짓거나 가꾸는 어른이 있습니다.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에도 나오는데, 뜨개질로 목도리를 뜨자면 여러 날이 걸릴 수 있고, 때로는 이레나 달포가 걸릴 수 있어요. 그런데 돈으로 목도리를 사자면 몇 분 만에 장만할 수 있겠지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여길 수 없어요. 돈으로 빠르게 장만하는 길을 갈 수 있고, 손수 실을 장만해서 차근차근 한 땀씩 떠서 목도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빨랑빨랑 양’은 목도리를 다 뜨고 나서 춤을 추었다고 해요. 제가 쓰려고 뜬 목도리가 아니라 선물을 하려고 뜬 목도리였는데, 더없이 기뻤다고 해요. 그래서 이 목도리를 곱게 싸고 고운 댕기까지 달아서 이웃 ‘느릿느릿 양’한테 선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빨랑빨량 양은 무리 속으로 섞여 드는 느릿느릿 양의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바라보았습니다. 느릿느릿 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뒤에도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84∼85쪽)



  책을 덮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쑥을 뜯어 쑥밥을 짓자면 품이나 겨를이 제법 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짓는 밥은 한결 맛나면서 즐겁습니다. 부침개나 버무리가 익기까지 기다리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동안에도 재미납니다. 아이들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살살 어루만지면서 언제 다 되는가를 웃으며 기다립니다.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손길도 이와 비슷해요. 씨앗 한 톨이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올리며 줄기가 자라고 잎이 퍼져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으레 석 달이 걸려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아요. 옥수수 한 자루를 먹으려면 석 달을 알뜰살뜰 돌본 끝에 기쁘게 톡 따서 다시금 ‘옥수수 삶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요.


  그러고 보면 사람살이에서도 모든 일에는 품하고 겨를이 들어요. 밥이나 옷이나 집을 지을 적에도,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열면서 사귈 적에도, 살림을 가꾸어 보금자리를 이룰 적에도, 참말 늘 품하고 겨를이 듭니다. 그래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하고, 삶도 살림도 꿈도 돈으로 살 수 없다 하겠지요.


  춤추는 기쁨을 누리려고 손수 살림을 만지고, 노래하는 즐거움을 나누려고 손수 살림을 건사합니다.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누리면서 마음을 열어 사귀고, 손을 맞잡고 한길을 걷는 사랑을 나누면서 언제나 서로 따사로이 바라봅니다. 2016.4.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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