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말하는 시 116
“아빠, ○○○당이 왜 나빠?”
―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신동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4.6.23. 8000원
신동호 님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실천문학사,2014)를 읽습니다. 대뜸 묻는 냉면집 아저씨 이야기가 긍금합니다. 냉면집 아저씨가 어디로 갔기에 시인은 이렇게 물음표를 콕 찍을까요? 아무래도 냉면집 아저씨가 더는 냉면집을 지키거나 버티지 못하기에 어디론가 가셨겠지요. 냉면집 살림이 나빠졌을 수 있고, 냉면집 말고 다른 꿈을 찾아서 길을 나섰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흔한 재개발에 밀려서 떠나야 했을 수 있고, 고향이 그리워서 냉면집을 고이 접었을 수 있습니다.
종착역. 끝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없기에 슬프고, 없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혁명은 억지로 봄을 부르지만 겨울아, 왜 사랑은 눈꽃처럼 네 안에서만 피어나는 것이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겨울 경춘선 2)
광합성은 1차 산업이다. 지식인들은 이미 자신들이 비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산나무 증후군)
사월을 앞둔 시골은 부산하려는 움직임이 살랑거립니다. 아직 부산하지는 않습니다. 바야흐로 새벽이나 밤까지 따스한 바람이 불면 그야말로 부산할 테지요. 마늘밭에서 마늘을 뽑고, 마늘밭을 갈아엎은 뒤에, 이 자리에 새로운 남새를 심거나 모내기를 해야 하는 사오월이 그야말로 부산하지요.
그래도 삼월 끝자락 새벽에 마을이 온통 연기투성이입니다. 집집마다 뭔가를 태우는 연기가 몽글몽글 솟습니다. 동틀 무렵부터 일어나서 하루를 연다는 뜻입니다. 나도 동틀 즈음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아이들이 아침까지 깊이 자도록 불은 안 켭니다. 초만 한 자루 조용히 켭니다. 마당하고 뒤꼍을 돌면서 나무한테 인사하고, 곧 옥수수를 자리를 가만히 살핍니다. 날이 더 따스하면 아이들하고 신나게 옥수수를 심을 생각입니다. 어제는 텃밭에 붉은콩을 쪼르륵 심고, 뒤꼍에 나무도 한 그루 새로 심었습니다.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장벽이 없었음을 확인하던 금강산이 두려웠던 게다. 우리 모두. 장벽이 있어야 편안한 우리 모두. (미인송)
꽃삽하고 호미를 쥐고 흙놀이를 신나게 하는 아이들입니다. 꽃삽하고 호미만 있으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동안 꽃삽하고 호미로도 배고픈 줄 잊고 놀아요. 밥을 먹으라고 부르면 더 놀아야 한다면서 안 오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시 사회이기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렇지만 딱 서른 해만 돌아보고 쉰 해를 거스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어요. 백 해를 되새기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온누리 거의 모든 아이들한테 꽃삽하고 호미를 맡기면 무척 신나게 흙놀이를 하리라 생각해요. 도시 아이들도 바닷가에 놀러가면 모래밭에서 모래를 파며 신나게 모래투성이가 되지요.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를 읽으면 신동호 님네 막둥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얼핏설핏 흐릅니다. 그러면 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며칠쯤 아버지 일하는 곳에 함께 데리고 다녀도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개근’해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하루나 며칠쯤 학교를 쉬도록 하고서는,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바깥나들이를 넉넉히 다녀 보아도 즐거워요.
과태료 고지서를 깜빡하고 평양까지 가지고 갔다 / 납기 후 금액에 안달하던 자본주의 버릇까지 가지고 갔다 (평양, 가방)
늦은 밤, / 온종일 수학 문제를 푼 열다섯 아들이 / 집으로 가는 길에서 물었다. / “아빠 새누리당이 왜 나빠?” (사막촌 주막)
시인 신동호 님이 과태료 고지서 말고 이녁 아들을 데리고 평양을 다녀오면 어떠한 살림을 지을 만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학교를 며칠 쉬도록 하고는, 이 아이들이 평양을 아버지하고 함께 밟으면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살짝이나마 겪어 보도록 하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시 시집을 덮고 부엌일을 합니다. 아침으로 지을 밥거리를 손질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는 아버지를 보는 우리 아이들은 저희도 칼질이나 도마질을 하고 싶습니다. 칼등으로 마늘을 빻으면 왜 칼등으로 마늘을 빻느냐고 물으면서 저희도 그처럼 하고 싶습니다. 절구로 마늘을 찧으면 저희가 절구질을 하겠다면서 손을 번쩍번쩍 듭니다.
커다란 무도 썰어 보고 싶고, 길다란 당근도 썰어 보고 싶습니다. 매운 내가 퍼지는 양파도 썰어 보고 싶고, 말랑말랑 잘 삶은 달걀도 가만히 썰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배우고, 어버이는 어깨너머로 지켜보도록 틈을 내어 주면서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살림을 바라보면서 배우고, 어버이는 아이들 둘레에서 살림을 새로 지으면서 가르칩니다.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는데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 바다가 물러난 사리 갯벌 어디에서 개불을 잡고 있을까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이제야 철조망이 보인다 / 나는, 내가 자유인인 줄 알았다 / 망명의 꿈도 꾸지 못하는 포로였음을 (포로수용소)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고, 눈처럼 매화꽃이 날립니다. 매화꽃이 진 옆에서 모과꽃이 피고 앵두꽃이 핍니다. 모과꽃하고 앵두꽃이 지면 붓꽃하고 장미꽃이 펴요. 붓꽃하고 장미꽃이 질 즈음에는 초피꽃하고 후박꽃이 핍니다. 이 사이에서 찔레꽃이 가만히 피어나서 어느새 온통 하얀 꽃밭이 됩니다.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를 가만히 덮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시인 신동호 님 아들은 아버지더러 “아빠 새누리당이 왜 나빠?” 하고 묻습니다. 아버지는 아들한테 ‘왜 나쁜’지 낱낱이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요? 아니면, 싯말에만 이렇게 적었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이 아버지더러 “○○는 왜 나빠?” 하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온누리에 나쁜 것(사람)은 없어.”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온누리에 좋은 것(사람)도 없어.” 하고 덧붙여요. 나쁘다고 여긴 것(사람)이 어느새 좋다고 여길 만한 것(사람)으로 바뀌기도 하고, 좋다고 여긴 것(사람)이 어느새 나쁘다고 여길 만한 것(사람)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좋고 나쁨에 앞서 그것(그 사람) 바탕에 어떤 숨결이 흐르는가를 읽고 싶어요. 좋은 나무도 나쁜 나무도 없이 모두 ‘나무’이고, 좋은 풀도 나쁜 풀도 없이 모두 ‘풀’이며,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이 모두 ‘사람’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얘야, 네가 그릇을 떨어뜨려 깨뜨리면 네가 나쁜 아이일까?” “아니.” “아니지? 그냥 그릇을 떨어뜨려서 깨뜨렸을 뿐이야. 나쁜 사람은 따로 없어. 그저 그런 일을 했을 뿐이야. 나중에 그 사람이 그런 일을 왜 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참말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으면 돼.”
새 아침에 새 하루를 엽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나눕니다. 새로운 살림을 짓자고 새롭게 생각합니다. 냉면집 아저씨는 틀림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새로운 마음을 품으리라 봅니다. 시인 아저씨도, 나도, 온누리 아이들도, 모두 마음자리에 새로운 꿈을 담아서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