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빠르게 걸음동무 그림책 14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 임은숙 옮김 / 걸음동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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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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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도 ‘빠름’도 아닌 ‘아름다움’으로

― 느리게 빠르게

 이사벨 미노스 마르틴스 글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

 임은숙 옮김

 걸음동무 펴냄, 2013.2.28. 1만 원



  그림책 《느리게 빠르게》(걸음동무,2013)를 가만히 넘깁니다. 책이름 그대로 ‘느리게’하고 ‘빠르게’ 두 가지가 엇갈리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한 번은 “빨리빨리!”라 외치고, 다른 한 번은 “천천히!”라 외쳐요. 서둘러야 하기에 빨리빨리 하자 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다스리자면서 천천히 하자고 해요.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두 가지 말을 듣습니다. 한쪽에서는 “빨리빨리!”를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천천히!”를 속삭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빨리빨리!”는 언제나 외치면서 잡아당기는 말입니다. “천천히!”는 외치지 않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입니다. 빨리 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하는데, 빨리 하려고 서두르다가 엎어지거나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면 외려 더 늦어지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빨리빨리! 아침밥이 다 식겠네. 천천히! 하마터면 우유를 흘릴 뻔했어. (6∼7쪽)


천천히! 단추를 제대로 채워 입어야지. 빨리빨리! 아직 신발을 안 신었네. (8∼9쪽)




  밥상맡에서 밥을 안 먹고 딴짓을 하거나 논다면 밥이 식어요. 밥이 식으면 아무래도 맛이 덜할 수 있어요. 밥때에 밥을 안 먹으면 다른 일이나 놀이가 늦어지겠지요. 밥상도 못 치우고 다른 일놀이를 못할 수 있을 테고요.


  그렇지만 밥은 빨리 먹어서 빨리 삭히기 어려워요. 빨리 먹고 빨리 뱃속에 넣으려 하면 으레 얹히겠지요. 더군다나 빨리 먹고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참말 우리는 빨리 늙고 빨리 죽어야 할 뿐입니다. ‘빨리’가 나아가는 길은 그렇거든요.


  나들이를 나와서 빨리 돌아보고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갔는데 빨리빨리 움직여서 빨리빨리 다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말을 빨리 해야 하지 않습니다. 빨리 알아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빨리 배워서 빨리 학교를 마치고, 빨리 회사에 들어가서 빨리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모든 일을 빨리빨리 해치워야 하지 않아요.


  참말로 “빨리빨리!” 하고 외치다가는 눈알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러워요. 빠르기를 좀 늦출 노릇이고, 부디 천천히 가기도 해야 합니다. 아니, 때와 자리에 알맞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해요.


  꽃은 빨리 피지 않아요. 나무는 빨리 자라지 않아요. 봄은 빨리 오지 않아요. 겨울이 빨리 되어야 하지 않아요. 비가 빨리 내려야 하지 않아요. 해가 빨리 떠야 하지 않아요. 모두 제 결에 맞추어 제대로, 제자리에서, 제 기운이 나도록 흐를 때에 아름다워요.



천천히! 붓으로 색칠할 때는 살살 해야 해. 빨리빨리! 어서 마무리해. 물감이 말라야 하니까. (14쪽)


빨리빨리! 다른 애들이 차례를 기다리잖아. 천천히! 그러다 점심을 다 흘리겠어. (16∼17쪽)




  누군가는 글을 빨리 쓰거나 그림을 빨리 그립니다. 누군가는 글을 천천히 쓰거나 그림을 천천히 그립니다. 빨리 그리는 그림이기에 훌륭할까요? 천천히 그리는 그림이기에 한결 나을까요?


  아이더러 어른처럼 빨리 걸으라 할 수 없어요. 새내기더러 모든 일을 빨리빨리 해치우라고 다그칠 수 없어요. 부엌칼을 처음 쥐면서 살림을 배우려 하는 아이더러 칼질을 빨리 하라고 말할 수 없어요. 비질이나 걸레질을 처음 익히려 하는 아이한테는 참말 비질도 걸레질도 천천히 하라고, 느긋하게 하라고, 제대로 하라고, 손에 오롯이 익을 때까지 가만히 하라고 이야기할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삶은 ‘즐겁게’ 누리려는 나날이에요. 우리 살림은 ‘아름답게’ 가꾸려는 나날이지요. 그림책 《느리게 빠르게》는 바로 이 대목을 넌지시 일깨웁니다. 느리게도 빠르게도 아닌, 바로 우리 삶자락에 맞추어 아름답고 즐겁게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보자고 이야기해요.


  더 빨리 달리기에 훌륭하지 않아요. 하하하 웃음을 지으면서 달리기에 재미있어요. 더 빨리 자라야 어른스럽지 않아요.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참다운 숨결을 온몸으로 익히고 배우면서 사랑스러운 넋을 가꿀 줄 알아야 어른스럽지요.


  다그치지도 말고 늑장부리지도 말아야지 싶어요. 아침저녁으로 해가 뜨고 지듯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꽃이 피어나듯이, 차근차근 알맞는 삶결을 헤아리면서 즐겁게 짓는 살림살이를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느림’도 ‘빠름’도 아닌 ‘아름다움’으로 나아갈 적에 우리 삶이 환하면서 기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2016.2.2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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