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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베 고지 사진.글, 박미정 옮김 / 안단테마더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0
아버지는 ‘사진가’와 ‘시인’이 된다
―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베 고지 사진·글
박미정 옮김
안단테마더 펴냄, 2016.1.11. 18000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과분한 일상. 이것이 바로 나의 보물이다(109쪽).” 같은 멋있는 말을 들려주는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안단테마더,2016)를 무척 고맙게 읽습니다. 왜 고맙게 읽느냐 하면, 이 사진책을 빚은 아베 고지 님은 이녁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면서 숲을 누비는 기쁨을 기꺼이 나누어 주거든요.
석 달 동안 배를 타고 한 달 동안 뭍에서 쉬는 일을 하는 아베 고지 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석 달 동안 아이들을 볼 수 없이 일하다가는, 비로소 한 달 동안 말미를 얻어서 아이들하고 만난다고 해요. 한 해 가운데 아홉 달은 아이들도 곁님도 볼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배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겠지요?
삼 개월 만에 만나면 아이들은 놀랄 만큼 자라 있다. (4쪽)
사슴벌레를 모자에 넣고 그대로 머리에 쓴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 세계의 ‘멋’. (8쪽)
석 달 만에 만나는 아이들은 늘 놀랄 만큼 자란다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석 달 만인걸요.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라니, 석 달이라는 나날은 얼마나 길까요. 한 달씩 말미를 얻어서 쉰다고 하더라도 다시 석 달을 헤어져야 하니까, 한 달이라는 나날은 무척 짧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이리하여 아베 고지 님은 한 달을 쉬는 동안 늘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겠노라는 다짐을 합니다. 아이들하고 만나서 놀려고 석 달을 일한다고 할까요. 석 달을 배를 타며 일하는 동안 ‘앞으로 다시 한 달 동안 신나게 놀아야지’ 하고 꿈을 키운다고 할까요.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 마음을 잘 알리라 느낍니다. 아버지가 드디어 배를 내리고 뭍으로 돌아올 적에 기쁘게 웃으면서 안길 테지요. 눈물 같은 기쁜 웃음을 짓지요. 이러다가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서로서로 아쉽고 서운한 손짓으로 헤어질 테고요.
사진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진기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진이 있고, 사진기라는 기계가 있기에, 우리는 그립고 애틋하며 사랑스러운 짝님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아마 사진이 없었으면 그림을 그리고 글월을 띄웠을 테지요. 마음속에 오롯이 이야기를 담으면서 떠올리려 할 테지요.
신나는 게 최고. (20쪽)
단순함이 좋다. 빛이 나니까! (26쪽)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는 오직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된 아베 고지 님은 처음에는 ‘사진’이라고는 조금도 몰랐다고 합니다. 아니, ‘아이’조차도 잘 몰랐다고 해요.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한집살림을 가꾸다가 큰아이가 태어난 뒤에 차츰 ‘아이’를 느꼈고, 이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아이를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딸이 돌이 되었을 무렵, 함께 산책하러 가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잡거나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것 같으면 내 다리를 붙들기도 했는데, 이것이 아이나 엄마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신선하면서도 낯선 감정이 싹텄습니다(120쪽).” 같은 말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제껏 겪은 적이 없는 새로운 마음이 싹텄다고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사랑 어린 손길로 사진기를 들고, 기쁨 어린 눈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꿈이 가득한 마음결로 사진기를 쥐며, 웃음 가득한 숨결로 사진을 찍어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사진에 찍혀 줍니다. 이 사진은 모두 ‘아버지가 다시 배를 타고 석 달 동안 일하러 가’면, 배에서 이 사진을 돌아보면서 저희를 그릴 줄 알아요.
여름에는 매미잡이로 하루를 시작한다. (32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웃음소리가 아닐까? (43쪽)
나도 아이들을 늘 사진으로 찍는 사람으로서 이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사진으로 찍힐 때에는 기쁘게 웃으며 노는 때입니다. 기쁘게 웃으며 놀 수 있기에 어버이가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스스럼없이 찍혀 줍니다. 모델이 되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저 즐겁게 노는 아이들입니다. 모델을 찍는 어버이가 아니라, 그저 기쁘게 웃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어버이입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사진을 찍는 동안 어느새 ‘사진가’가 됩니다. 사진을 잘 배우고 훌륭히 찍기에 ‘사진가’이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에 담는 숨결이란 언제나 사랑이라는 대목을 깨닫기에 사진가입니다. 사진 솜씨가 훌륭하기에 ‘사진가’이지 않아요. 너(아이)와 내(아버지)가 이곳에서 함께 짓는 하루가 아름다운 꿈으로 피어나는구나 하는 대목을 알아차리기에 사진가예요.
보물이란 무엇일까? (55쪽)
(큰아이) 아카리가 엄마의 치마를 입게 되었다. (72쪽)
사진가로 다시 태어나는 아버지는 시인으로도 다시 태어납니다.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모든 말이 마치 노래처럼 시처럼 흘러나옵니다.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짓는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그림책을 읽어 주든 동화책을 함께 읽든, 모든 말소리는 노랫소리로 거듭나면서 피어납니다.
“둘째, 셋째가 태어나고 셋째 아이가 걸어다닐 즈음, 나는 아이들에게 완전히 푹 빠져 있었습니다. 카메라도 DSLR로 바꾸고, 시간만 나면 아이들과 산속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고, 아이는 그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하지만 도리어 내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받고 변해 갔습니다(120쪽).” 같은 이야기를 천천히 읽습니다. 이 말마따나 아이는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요. 그런데 언제나 어버이도 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요. 아이도 자라고 어버이도 자라요. 아이도 사랑으로 자라고, 어버이도 사랑으로 자라요.
나이를 먹으며 늙는 어버이가 아니라, 아이하고 나누는 사랑을 아이한테서도 고스란히 나누어 받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웃음잔치랑 노래잔치랑 사진잔치를 즐기는 어버이입니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바람은 없다. (82쪽)
‘아, 고향이 참 좋아.’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91쪽)
온누리 모든 사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참말 온누리 모든 사내는 아버지로서 사진가와 시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두 손에 호미랑 연필을 쥐거나 괭이랑 사진기를 들면서 아이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면, 참말 온누리에는 사랑하고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는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한테 ‘사진 찍는 기쁨’을 가르칩니다. 어버이는 모든 말을 시처럼 노래하면서 아이한테 ‘시를 짓는 즐거움’을 물려줍니다. 아이는 천천히 뛰놀고 자라면서 아버지처럼, 또 어머니처럼 사진가도 되고 시인도 됩니다. 삶을 그리는 사진가로 자랍니다. 삶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자랍니다.
사진은 예술이기 앞서 사랑이어야지 싶습니다. 사진은 문화이기 앞서 꿈이어야지 싶습니다. 사랑을 담을 수 있기에 아름다운 사진이지 싶습니다. 꿈을 그릴 수 있기에 멋진 사진이지 싶어요.
사진책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를 읽을 온누리 아버지랑 어머니 모두 즐겁게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놀랍고 멋진 사진기이자 시인이거든요. 활짝 웃으면서 사진기를 쥐면 누구나 사진가예요. 하하 웃으면서 연필을 쥐면 누구나 시인이에요.
아버지 사진가랑 어머니 시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 시인이랑 어머니 사진가하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싶습니다. 2016.2.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넣은 사진은 안단테마더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습니다. 사진을 실을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