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 - 개구쟁이 에밀 이야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7
개구쟁이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노네
―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2.1.25. 8000원
‘개구쟁이 에밀 이야기’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1960년대에 세 꼭지를 쓰고, 1980년대에 새롭게 세 꼭지를 썼다고 합니다.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1980년대에 쓴 세 꼭지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삐삐 이야기를 빚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은 2002년 1월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비롯해서 《장난을 배우고 싶은 꼬마 이다》랑 《에밀의 325번째 말썽》이라는 이야기책은 모두 ‘어린이를 사랑하는 숨결로 이야기를 빚은 할머니’를 기리면서 나옵니다.
선생님은 에밀네 집 파티에 초대받은 것이 너무너무 기뻤어요. 눈 내리는 겨울의 기나긴 일요일을 학교에서 혼자 보내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테니까요. 그래요. 파티 날에는 눈이 펑펑 내렸어요. 그날 카트풀트 농장의 일꾼 알프레드 아저씨는 눈 치우는 도구를 말에 연결해서 몰고 다니며 아침 내내 눈을 치웠어요. (6∼7쪽)
책이름으로 떡하니 붙은 ‘개구쟁이’가 노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세 가지 이야기책에서 모두 장난꾸러기요 말썽쟁이요 개구쟁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오빠 ‘에밀’이요 동생 ‘이다’인데,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 바라보자니 그저 ‘여느 수수한 아이들’ 같습니다. 더욱이 내 어릴 적을 돌아보면 이 아이들이 노는 몸짓은 마냥 ‘수수하면서 귀엽’습니다.
아이들이라면 참말 이렇게 놀고 싶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개구지다느니 짓궂다느니 장난스럽다느니 하고 말하지만, 아이라면 참말 이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데 ‘어린이 아닌 어른’인 내 모습과 삶으로 바라보자면,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들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다른 모든 아이들이 그저 개구지거나 짓궂거나 장난스럽다고 보이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얘가 또 말썽을 일으키네’ 같은 생각을 하거나 ‘또 어지르네. 누가 치우라고?’ 같은 생각을 품으면, 아이들 놀이나 몸짓이 못마땅하다고 느낄 만해요.
에밀은 쌩하니 눈 쌓인 마당으로 튀어나갔어요. 히야, 재미있겠다! 파티에 온 다른 아이들도 에밀을 따라 우르르 뛰어나갔고요. 다들 기운이 펄펄 넘쳤죠. 학교 선생님은 장화를 신고 외투를 껴입고는 사령관처럼 으스대며 현관 앞에 서 있었어요. 선생님이 말했어요. “어머님 아버님도 함께 하시지 않겠어요?” 에밀의 아빠가 무뚝뚝하게 대꾸했어요. “나 참, 우리가 철딱서니없는 애들입니까?” (12∼13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놀지 못하면 자라지 못합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도 몸뚱이에 살집이 붙을 수 있습니다만, 놀이가 없는 채 살집만 붙는다면 ‘마음이 자라지’ 못한다고 느껴요. 놀이가 없어서 놀이동무가 없는 채 나이만 먹고 만다면, 어른이 되어도 삶을 재미있거나 즐겁게 누리는 길을 모르리라 느껴요.
놀면서 ‘사는 기쁨’을 누릴 줄 알 때에, 어른이 되어서 일을 하는 동안 ‘일하며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일할 적에도 ‘일하다가 틈틈이 쉬면서 놀이로 기운을 북돋우는 기쁨’을 누릴 테지요.
놀이는 아이한테뿐 어른한테도 몹시 대수롭습니다. 일만 있고 놀이가 없으면 어른은 짜증(스트레스)을 풀 길이 없어요. 왜냐하면, 일만 해야 하면 몸이나 마음이 지치거나 고단하기 마련인데, 지치거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쉬지 못하면, 사랑스러운 어른이 아니라 짜증스러운 어른, 이른바 짜증만 내는 어른이 되거든요.
에밀의 인형들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바로 목사님이에요. 빔메르비에 살고 있는 부자 아주머니도 인형을 죄다 사고 싶다고 했고요. 하지만 에밀은 인형을 팔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알프레드 아저씨가 에밀더러 어른이 될 때까지 인형을 잘 간직하라고 했거든요. 알프레드 아저씨 말은 이랬어요. “네 아이들한테 물려주면 좋을 거야.” (29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에밀 아버지’는 놀이를 안 합니다. 어른이 놀이를 하려 하면 ‘철딱서니없는 짓’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에밀 아버지’는 참말 아이하고 놀아 줄 줄 몰라요. 아이가 아버지한테 놀자고 다가서지 못하고, 아이는 아버지가 늘 골만 부린다고 여겨요. 에밀 아버지는 에밀이 못마땅하다고 여길 때마다 목공실에 가두어요.
뭔 아버지란 사람이 이러나 싶다가도,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얼마나 살가운 아버지 노릇을 하는가 하고 곰곰이 뉘우칩니다. 더군다나 아이(에밀)는 아버지가 골을 부려도 그리 성을 내지 않습니다. 에밀은 목공실에 갇혀도 이곳에서 새로운 놀이를 찾아요. 뭔 놀이를 찾느냐 하면, 목공실에 가득한 나무를 깎지요. 목공실에 워낙 자주 갇히다 보니, 나무칼도 나무도 솜씨 좋게 다룹니다. 게다가 나무 인형을 무척 많이 깎았어요. 수백 개에 이르는 나무 인형이 목공실 선반에 놓였대요.
사람들이 또 까르르 웃어댔어요. 재미있는 구경거리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목사님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물론 목사님도요. 목사님 부인이 나직이 말했어요. “가엾은 에밀. 뽀뽀 대신에 낼 돈 10외레가 없니?” 에밀이 가슴을 쭉 펴고 말했어요. “있어요. 하지만 나, 돈 같은 거 안 낼 거예요.” (51쪽)
개구쟁이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놉니다. 내가 어릴 적에 얼마나 북새통을 이루며 놀았는가 하고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오늘 어버이 자리에 서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합니다. 아무렴 이 아이들이 저희 아버지만큼 개구지게 놀았을까 하고.
나는 우리 집 큰아이 나이만 하던 어릴 적에 나무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치고, 높은 가시울타리에 올라가서 기우뚱기우뚱 걷다가 미끄러져서 한쪽 팔이 쇠가시에 파이고 깊이 긁혀서 너덜거린 적이 있고, 야구방망이에 귀가 맞아서 찢어진 적이 있고, 두 손 놓고 자전거를 신나게 밟다가 엄청나게 자빠져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적이 있고, 개골창에 빠져서 옷을 몽땅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아침에 말끔하게 갈아입은 옷이 저녁이 되면 흙투성이에 땀투성이가 되었어요.
아이들은 참말 개구지게 놀아서 사내도 가시내도 씩씩하고 싱그러운 개구쟁이요 말괄량이로 자라야지 싶습니다.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우리 모두 ‘놀이하는 아이’랑 ‘놀이하는 어른’으로 신나게 살림을 짓자고 다시금 생각합니다. 2016.2.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