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피에게 장화가 생겼어요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51
셜리 휴즈 글 그림, 조숙은 옮김 / 보림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7



봄비를 참방참방 ‘비놀이’로 맞이한다

― 앨피에게 장화가 생겼어요

 셜리 휴즈 글·그림

 조숙은 옮김

 보림 펴냄, 2002.9.16. 7500원



  아이들은 날마다 쑥쑥 큽니다. 참말 날마다 쑥쑥 커요. 늘 아이들하고 지내면서도 아이들이 자라는 결을 느낍니다. 어떻게 느끼냐고요? 아이들 옷을 입히고 벗기고 빨래하고 개고 하다 보면 저절로 알지요.


  어느새 큰아이 옷이 큰아이한테 작아서 작은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어느새 작은아이 옷이 작은아이한테 작아서, 아이들 이모네 동생한테 보내기도 하고,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서 광에 놓기도 해요.


  그런데 신은 좀처럼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발이 커서 신이 꽉 낄 적에도 “신이 작아요” 하는 말을 먼저 들려주지 않아요. 어버이가 잘 살피면서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우리 집 두 아이 장화가 어느새 아이들한테 작습니다. 좀 늦게 알아챕니다. 아이들이 장화에 빗물이 스민다고 말하고 나서야 장화를 살피다가 ‘아차, 장화가 아이들한테 작잖아. 미처 몰랐네!’ 하고 깨닫습니다. 이렇게 장화가 작으니 발에 눌려서 찢어지겠지요.



앨피는 애니 로즈라는 동생이 있어요. 앨피의 발은 꽤 커요. 애니 로즈의 발은 조금 작고요. 발바닥은 둘 다 말랑말랑, 분홍빛이에요. 앨피는 애니 로즈랑 발가락을 세면서 놀기도 해요. (3쪽)



  셜리 휴즈 님 그림책 《앨피에게 장화가 생겼어요》(보림,2002)를 새삼스레 꺼내어 펼쳐 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퍽 어립니다. 큰아이 ‘앨피’는 아직 혼자 신발 끈을 매지 못합니다. 얼추 대여섯 살 즈음이지 싶어요. 두 아이는 서로 사이좋게 어울립니다. 두 아이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무척 개구지게 놉니다. 두 아이는 서로 돌보고 가르치는 동무가 되면서 놀아요. 두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활짝 웃어요.



밖에 나갈 때면, 애니 로즈는 빨간 구두를 신고 앨피는 낡은 갈색 구두를 신어요. 엄마는 앨피가 신발 신는 걸 도와주곤 하지요. 앨피가 아직 신발 끈을 잘 못 매거든요. (6쪽)




  아이들 장화를 새로 장만합니다. 아이들 큰아버지한테 말을 여쭈어 선물로 사 달라고 조릅니다. 아이들 큰아버지는 기꺼이 새 장화를 장만해 줍니다. 두 아이는 빨강하고 분홍으로 새 장화를 얻습니다. 작은아이는 검정 장화를 얻고 싶었으나 검정 장화를 시골 읍내에서는 팔지 않습니다. 작은아이는 검정 다음으로 마음에 든다고 하는 분홍 장화를 고르기로 합니다.


  자, 새 장화를 얻었으니 이제 할 놀이는 바로 ‘첨벙첨벙 걷기’일 테지요? 비야 오렴, 눈아 오렴, 두 아이는 날마다 노래합니다. 장화를 신고 놀 수 있는 날씨가 되기를 빕니다.


  아이들 바람을 들었기 때문일까요? 설을 지나며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얼어붙으면서 전남 고흥에 새삼스레 눈발이 날립니다. 다만, 이 눈은 쌓이지 않습니다. 그저 바람 따라 휘휘 날리는 싸락눈입니다. 눈이 멎고는 비가 옵니다. 비는 이틀 남짓 시원하게 내립니다. 어느 날은 찬비가 내리고, 어느 날은 포근한 비가 내립니다. 새로 얻은 장화를 기쁘게 신고 개구지게 뛰어노는 날씨가 찾아옵니다.



엄마는 앨피에게 반들반들 윤이 나는 노란 새 장화를 사 주었어요. 앨피가 진흙탕을 질퍽질퍽, 웅덩이를 철벅철벅 지나다닐 때 신게요. 앨피는 정말 신이 났어요. 장화가 든 상자를 집까지 혼자 들고 왔다니까요. (15쪽)




  그림책 《앨피에게 장화가 생겼어요》를 읽으면, 먼저 큰아이가 새 장화를 얻습니다. 큰아이 앨피는 기쁘게 얻은 새 장화를 신고 온 집안을 쿵쿵 밟으면서 돌아다닙니다. 참말 온누리 모든 아이는 이와 같이 놀아요. 그림책 아이뿐 아니라 우리 집 아이들도 이렇습니다. 나도 어린 날에 이렇게 놀았고, 곁님도 이렇게 놀았을 테며,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녁 어릴 적에 새 신을 얻은 날에 이렇게 노셨을 테지요.


  큰아이한테 새 신(장화)이 생기면 작은아이는 어떤 마음일까요? 작은아이도 새 신을 얻고 싶겠지요. 작은아이도 언니처럼 새 신을 발에 꿰고 온 집안을 쿵쿵 울리면서 걷고 싶겠지요. 그리고 두 아이는 함께 웅덩이를 찾아다니면서 첨벙첨벙 물을 튀기고 싶을 테고요.


  《앨피에게 장화가 생겼어요》는 아이들이 장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매우 살갑게 그립니다. 이러면서 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버이 눈길을 더없이 부드러우면서 포근하게 그려요. 웅덩이놀이를 하고픈 앨피를 데리고 공원으로 즐거이 가는 아버지를 그리고, 왼신과 오른신을 아직 가누지 못하는 앨피가 제 짝을 잘 가눌 수 있도록 글씨를 곱게 적어 주는 어머니를 그려요.



엄마는 앨피의 장화 한 짝에 ‘오’, 다른 짝에 ‘왼’이라고 검정색으로 크게 썼어요. 앨피가 오른발, 왼발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요. ‘오’는 오른발, ‘왼’은 왼발이에요. 장화에 쓴 글자는 점점 지워졌고 장화는 낡아 반들거리지도 않아요. 하지만 앨피는 이제 오른발, 왼발을 제대로 찾아 신게 되었어요. (29쪽)




  문득 돌아보면, 어른들은 눈이 오면 눈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아우성입니다. 어른들은 비가 오면 비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북새통입니다. 어른들은 아침저녁으로 일터를 오가니까 이 길이 막히거나 어수선한 일을 반기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한번 달리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어른도 얼마든지 눈놀이랑 비놀이를 할 만합니다. 어른도 아이처럼 목이 긴 신을 척 꿰고는 웅덩이를 거침없이 참방참방 걸을 수 있습니다. 웅덩이 한복판을 살금살금 춤추듯이 걸을 수 있어요. 웅덩이를 영차 하고 뛰어넘을 수 있지요.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놀아요. 아이들이 놀 적에 다른 사람 눈치를 살피지 않듯이, 어른들도 비나 눈이 오는 날 일터를 오가는 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말고 노래와 웃음으로 기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어요.


  조던 매터라는 분이 선보인 사진책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을 보면, 비가 오는 날 빨간 옷에 빨간 우산에 빨간 신 차림새로 폴짝 날아오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차림새로 비놀이를 즐기는 분은 어른입니다. 다만, 이 사진책은 모델을 써서 꾸민 모습이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재미나게 새로운 비놀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삶을 기쁨으로 바라보면 모두 언제나 놀이가 되니까요. 2016.2.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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