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1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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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05



이 돌에 흐르는 숨결을 읽을 수 있을까

―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 1

 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6.2.15. 5000원



  낮에 읍내마실을 나가는 길인데, 두 아이가 마을 어귀 풀밭 한쪽에 있는 흙더미를 보았습니다. 이 흙더미는 아이들이 군내버스를 기다리면서 으레 밟거나 토닥이는 놀잇감이 되어 줍니다. 왜 그곳에 이런 흙더미가 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아이들은 재미나게 이 흙더미를 매만집니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두 손이 시린 줄 모르면서 맨손으로 흙집을 짓고 흙떡이나 흙만두까지 빚습니다.


  “아버지 봐요, 흙만두예요. 예쁘지요?” 하면서 손에 흙을 가득 쥐고서 내밉니다. 손도 낯도 다 씻고 나왔지만, 이렇게 흙만 보면 만지면서 놀고픈 아이들은 어느새 흙손이랑 흙투성이가 됩니다. 마침 군내버스가 저 앞에서 달려오기에 “자, 얼른 흙 털고 버스 타자.” 하고 말합니다.



“자, 이걸 보렴. 이게 네가 지켜야 할 돌이란다. 우리 일족을 번영하게 해 준 풍요의 돌이지. 날개를 펼치고 붉은 하늘을 나는 새.” (3쪽)


“그딴 거 관두고 더 비싼 코너를 봐! 다이아 같은 것도 잔뜩 있잖아. 기껏 ‘듀가리’에 왔건만!” “그치만 난 빨갛고 귀여운 반지를 갖고 싶었는걸.” (16쪽)



  만화책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대원씨아이,2016) 첫재 권을 읽습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빚은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새롭게 그리는 만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책 이름에 나오듯이 ‘보석’을 다루고 ‘전당포’ 이야기가 흐릅니다. 보석은 여러 가지 돌 가운데 더 아름답거나 사랑스레 마주하는 돌입니다. “보배로운 돌”을 가리키는 ‘보석’이니까요.


  그런데 보배로운 돌이든 수수한 돌이든, 아이들 손에 쥐어 주면 모두 똑같은 ‘돌’입니다. 붉게 빛나는 보석이라면 아이들로서는 ‘붉은 돌’이에요. 파랗게 빛나는 보석이라면 아이들한테는 ‘파란 돌’이지요.



“내가 뭘 방해했다고 그래. 장사 방해한 게 오히려 누군데! 보석한테 ‘좋은 기운이 있는 아이’ 같은 괴상한 소리나 하고. 여긴 점집이 아니라고. 가게 평판 떨어뜨리는 짓은 그만둬.” (33쪽)


“왜 ‘합성’이야? 그게 어디가.” “어? 왜긴. 이 아이한테는 뭐랄까, 지구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악, 악. 그딴 소리 그만둬.” (35쪽)



  우리 집 아이들은 돌 아닌 ‘시멘트 조각’까지 갖고 놉니다. 뭐, 늘 온 마을 흙을 다 들쑤시면서 노니까, 돌뿐 아니라 시멘트 조각까지 주워서 놀 만합니다. 시멘트 조각을 주워서 ‘돌’로 여길 적에는 넌지시 불러서 “걔는 돌이 아니란다. 걔는 시멘트라고 하는 아이야. 걔는 버리고 다른 돌을 주워서 놀자.” 하고 얘기해요.


  아이들은 돌하고 시멘트 조각이 어떻게 다른지 아직 잘 모르는 눈치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릴 적에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몰랐어요. 어른들이 자주 이야기를 해도 늘 못 알아들었어요. 다만 손과 몸으로 하나를 느꼈습니다. 돌은 아무리 오랫동안 손에 쥐면서 놀아도 손이 안 아파요. 이와 달리 시멘트 조각을 오랫동안 손에 쥐면서 놀면 손이 아픕니다.


  요새는 시골도 마을길을 온통 시멘트로 덮고, 마당까지 시멘트로 덮으며, 도랑이나 논둑까지 시멘트로 덮어요. 흙길이나 흙마당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골입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논둑에서 넘어지면 무릎이나 팔꿈치가 크게 까지지요. 아이들도 여름에 민소매나 반바지를 입고 놀다가 마을길에서 넘어지면 바로 피가 철철 흘러요.



‘부인의 반지. 부인은 행복하구나. 그러니까 그 돌도 기분 좋은 듯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거야.’ (80∼81쪽)


‘그렇게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 브로치였는데, 그 사람이 만진 순간 그게 사라졌어. 그 사람은 뭔가를 정화하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가?’ (161쪽)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돌마다 흐르는 숨결을 읽을 수 있을까요? 돌멩이 하나가 얼마나 오랜 나날을 이 마을에서 살아왔는가를 읽을 수 있을까요? 돌멩이 하나가 이 지구라는 별에서 얼마나 수많은 비와 바람과 해와 흙하고 동무가 되면서 살았는가를 읽을 수 있을까요?


  요즈음 사회나 문화로 본다면, 길바닥이 흙길일 적보다 시멘트나 아스팔트일 적에 자동차가 다니기 좋겠지요. 그런데, 길바닥이 시멘트나 아스팔트이면,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매우 나빠요. 어른들한테는 자동차가 다니기 좋은 길이 되지만, 아이들한테는 뛰어다니거나 달리기를 하기에 매우 나쁩니다.


  흙바닥이라면 아이들은 돌을 주워서 흙바닥에 금을 그으면서 온갖 놀이를 하지요. 시멘트나 아스팔트 바닥에서는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를 하기 어려워요. 더욱이 시멘트나 아스팔트 바닥은 어른들도 일을 하다가 쉬면서 주저앉기에 썩 안 좋습니다. 흙바닥이라면 냉큼 앉을 만하지만, 시멘트나 아스팔트 바닥은 뭔가를 안 깔면 앉기에 나빠요.


  무엇보다도 시멘트 조각은 앞으로 백 해나 이백 해가 흐르는 동안 ‘빛나는 돌’이 되지도 않아요. 시멘트 조각은 한 해 두 해 백 해 천 해 흐르는 동안 그예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값싼 건축재료라 하는 시멘트는 겉보기로는 ‘돌’처럼 딱딱한 듯하지만 이내 물러지고, 이내 바스라지며, 이내 쓰레기더미가 되고 말아요. 이와 달리 돌은 기나긴 해를 사람들하고 함께 살면서 이야기를 품지요. 보석도 여느 돌처럼 오랜 나날을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요.



“요즘은 보석도 거의 인공적으로 만드는 시대가 됐으니까. 천연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아름다우면 합성이라도 좋다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천연도 커팅으로 연마해야 하니까, 아무튼 노력이 필요하잖아.” (110∼111쪽)



  만화책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에는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어릴 적에 전당포에 ‘매물’처럼 맡겨지면서 ‘전당포 집 아이’로 자란 사내가 있습니다. 전당포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보석이라는 돌을 ‘돌에 흐르는 숨결’을 고스란히 읽으면서 ‘타고난 보석감정사’ 노릇을 하는 고등학생 가시내가 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기운이 흐르는 돌이라 해도 스스럼없이 두 손으로 만지면서 ‘깨끗하게 해 주는(정화해 주는)’ 보석세공사 사내가 있어요.


  보석은 값진 돌이기에 돈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이 되는 값비싼 돌이기에 목걸이로도 하고 손가락에도 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값지거나 값비싸기에 보석 구실을 하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마음을 푸근하게 북돋운다든지, 마음을 따사로이 어루만진다든지, 마음을 넉넉하게 쓰다듬어 준다고 느끼기에 저마다 ‘내 빛돌(빛나는 돌)’을 가슴에 품을 만하리라 느껴요.


  돈으로 치자면 ‘돈돌’일 테지만, 삶에 빛줄기가 된다고 여기면서 아끼면 ‘빛돌’이 됩니다. 내 꿈을 아로새기려 하면 ‘꿈돌’이 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뜻을 함께 나루려고 주고받으면 ‘사랑돌’이 되어요. 우리는 어떤 돌을 곁에 둘까요? 우리는 돌 하나에 어떤 마음을 담으면서 곁에 둘까요? 434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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