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서로 생각을 북돋울 수 있는 말이란 무엇일까요. 생각을 슬기롭게 가꿀 수 있는 길을 헤아리면서 말 이야기 몇 가지를 새롭게 가다듬어서 올립니다.


..


배짱


  옛말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가 있어요. 철없이 함부로 덤비는 몸짓을 가리키는 말인데, 하룻강아지이기 때문에 범을 무서운 줄 모르지요. 왜 그러한가 하면,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강아지”를 가리켜요. 그래서 범도 몰라서 무서워하지 않고, 겨울에 내리는 눈도 아직 모를 만하며, 그야말로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모두 새롭게 받아들인다고 할 만해요. 철이 없어서 무서움도 모르지만, 티없이 맑거나 착한 넋이라서 무서움이 없어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좀 어리석거나 바보스러운 모습을 보일 적에 ‘하룻강아지’ 같은 말을 쓰고 ‘철부지’나 ‘철딱서니’나 ‘철모르쟁이’ 같은 말도 쓰는데요, 철이 아직 들지 않았어도 씩씩하거나 야무진 모습을 가리키는 ‘배짱’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나이가 어려도 배짱이 두둑할 수 있고, 몸이 작거나 힘이 여려도 배짱이 있을 수 있어요. 나이가 많거나 힘도 있거나 몸까지 큰 어린이지만 외려 배짱이 없을 수도 있답니다. 나이가 있어야 배짱이 있지 않아요. 마음이 튼튼하거나 씩씩할 때에 배짱이 있고, 다부지거나 당찬 몸짓일 때에 배짱도 좋아요.


+


통째로


  커다란 능금 한 알을 통째로 들고 먹은 적 있나요?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 같은 열매를 먹기 좋도록 칼로 작게 썰어서 접시에 담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를 껍질도 벗기지 않고 옷자락에 슥슥 문질러서 먼지만 닦은 뒤에 통째로 아삭 깨물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프다면 수박 한 통도 혼자 먹을 수 있을까요? 어린이 한 사람이 수박 한 통을 혼자서 다 먹기는 어려울 테지만, 수박을 아주 좋아한다면 그야말로 수박을 통째로 먹을 수 있겠지요. ‘통째’는 “나누거나 덜지 않은 덩어리 모두”를 가리켜요. 책을 읽으면서 한 줄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으면 통째로 다 읽은 셈이고, 어떤 글을 토씨 하나까지 빼지 않고 모조리 외우면 통째로 다 외운 셈이에요. 꽤 긴 노래이지만 어느 한 대목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면 통째로 들은 셈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작은 한 가지조차 잘 살피면서 배운다면 통째로 다 배운 셈이고요. 통째로 다 갖고 싶을 수 있고, 통째로 다 주고 싶을 수 있어요. 잘 건사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통째로 버려야 할 때가 있으며, 알뜰히 다루거나 돌본다면 통째로 곱게 간직할 수 있어요.


+


어른


  어린이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고, 어른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에요. 한국말사전에서 ‘어른’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다 자란 사람”이라고 뜻풀이를 하지만, 이 뜻풀이는 살짝 모자라요. 왜 그러한가 하면, 나이가 많은 어른도 “늘 새롭게 자라”기 때문이에요. 어린이가 무럭무럭 자란다고 할 적에는 몸만 자라지 않고 마음이 함께 자라요. 어른도 이와 같지요. 어른도 늘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태어난답니다. 몸을 갈고닦으면 어른도 몸이 한결 튼튼하게 자라고, 마음을 가다듬으면 어른도 마음이 한껏 맑고 밝게 자라거든요. 그래서 나이는 많이 들었어도 아직 철이 덜 든 사람한테는 ‘어른’이라는 이름보다는 “철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붙이지요. 나이가 적으면서 너무 늙은 티를 내는 아이가 있으면 이때에는 ‘애늙은이’라는 말을 붙여요. 아직 어린데 짐짓 나이가 든 척을 한다면 ‘애송이’라고 해요. 나이만 더 먹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지 않아요. 철이 들어야 비로소 어른이에요. 어린이는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 즐겁게 익히면서 어른으로 나아가려는 숨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이웃님


  한국말에는 ‘님’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이 ‘님’이라는 낱말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 가만히 헤아려 봐요. 하느님, 땅님, 바다님, 숲님, 들님, 꽃님, 풀님, 비님, 눈님, 밭님, 흙님, 나비님, 제비님, 곰님, 여우님, 이렇게 ‘님’을 붙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우님, 형님, 동무님, 이웃님, 선생님, 기사님, 손님, 이렇게 서로 ‘님’을 붙일 적에도 이야기와 마음이 사뭇 거듭나요.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님’이라는 낱말은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던 숨결을 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함께 사진을 찍는 벗이라면 ‘사진벗’이라 할 만한데, 사진벗을 기리거나 아끼려는 뜻을 담아 ‘사진벗님’처럼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주고받거나 나누는 벗이라면 ‘글벗’이라 할 텐데, 글벗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뜻을 실어 ‘글벗님’처럼 쓸 만합니다. 이리하여, ‘책벗님·마실벗님·말벗님·밥벗님’처럼 쓸 수 있어요. 때로는 그저 ‘님’이라고만 부를 수 있어요. “님아”나 “님이여”나 “님한테” 하고 불러 보셔요. 곁에 있는 사람을 ‘곁님’이라 부르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님’이라 불러 보셔요. 우리 이웃한테 ‘이웃님’이라 부르면서 다 함께 즐겁게 웃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