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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Silver Spoon 13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596
어떤 마음으로 배우니?
― 은수저 13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0.25. 5500원
만화책 《은수저》 열셋째 권을 보면 ‘말’을 탈 적에 어떤 마음이 되는가 하는 대목을 놓고 두 아이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두 아이는 말타기를 놓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 이야기는 말타기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자리에서도 똑같이 흐를 만하다고 봅니다. 어버이하고 아이하고 놀 적에, 아이들이 동무들하고 놀 적에, 밭을 갈아 씨앗을 심을 적에, 쌀을 일어 밥을 지을 적에, 비질이나 걸레질을 할 적에, 물살을 가르며 헤엄을 칠 적에, 바람을 마시면서 이 땅에서 내가 살아가는구나 하고 느낄 적에, 늘 언제 어디에서나 느낄 만한 마음이지 싶어요.
“말의 기분에 맞춰야지 생각하며 온 신경을 동원해서 말의 목소리를 들으려 할 때 있잖아? 아, 물론 진짜로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그런 자세로 타면 가끔 이렇게, 엉덩이가 플러그가 돼서 콘센트에 척 들어맞는 감각이 들 때가 있어. 그럴 땐 ‘내 움직임이 말의 움직임, 말의 움직임이 내 움직임’처럼 느껴져서, 무척 즐거운데, 그 ‘신난다’는 게 말의 느낌인지 나 자신의 느낌인지 분간이 안 돼. 그럴 때가 있지 않니?” (21쪽)
어떤 마음이 되느냐에 따라 무엇을 배우는지 갈립니다. 골을 내거나 짜증을 내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못 배워요. 웃으면서 노래하는 마음이 될 적에 새롭게 배워요. 가만히 지켜볼 줄 알 때에 넓고 깊게 배워요. 오래도록 살펴볼 줄 알 때에 차근차근 또렷이 배워요.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일 때에 사랑스레 배워요. 기쁨으로 삶을 지으려는 마음일 때에 그야말로 넉넉하게 배워요.
상냥한 마음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기도 하고, 나 스스로 가꾸기도 합니다. 착한 숨결은 어버이가 물려주기도 하고, 나 스스로 일구기도 합니다. 고운 넋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기도 하고, 나 스스로 북돋우기도 합니다. 맑은 생각은 어버이가 물려주기도 하고, 나 스스로 살찌우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마음씨를 꼭 타고나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어떤 마음씨가 되기를 바라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지으면 돼요. 돈이든 무엇이든 어버이가 잔뜩 벌어서 선물처럼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고 씩씩하게 돈을 벌어도 되고,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됩니다.
‘이 녀석도 참 깔끔하구나. 누가 정성들여 돌봐 주고 있나 봐. 눈에 안 띄는 일이지만 이 녀석을 돌봐 주는 사람은 믿을 만하겠다.’ (38쪽)
“그렇게 일해서 뭐하려고?” “저금하죠.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시골은 일자리가 별로 없어서 도쿄에 나온 겁니다.” “그 나이에 도시로 돈벌이를. 동갑내기 친구들은 학교에서 청춘을 만끽할 텐데.” “글쎄요? 저희 학교는 학생은 곧 노동력이란 생각이라서. 아, 그래도 코시엔을 목표로 야구할 땐 재밌었어요!” (64쪽)
만화책 《은수저》를 보면 학교 한쪽에 화덕을 신나게 짓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에 넓은 땅을 둔 농업고등학교이기에 화덕쯤이야 가볍게 여럿을 새로 마련합니다. 그런데 화덕을 마련하는 까닭은 ‘배움’이라는 핑계를 들어 ‘맛난 것을 더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바보스러운 짓일 수 있지만, 맛난 것을 손수 심고 가꾸어 거둔 뒤에 다시 손수 지어서 먹으면 아주 기뻐요. 이러한 삶짓기랑 밥짓기를 어른과 아이(교사와 학생)가 함께 한다면 저절로 교육이 되기도 해요. 교과서에 나와야 교육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살펴서 한 걸음씩 나아갈 적에 그야말로 즐겁게 가르치고 배웁니다.
“면학을 위해서라면 하는 수 없죠!” “예! 더 많은 사람에게 맛보여서 정확한 데이터를 얻으려 합니다!” “하는 수 없죠! 그럼 화덕을 더욱 늘려야겠군요!” “예! 샘플이 많을수록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90쪽)
만화책 《은수저》에 나오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공부만 하지 않습니다. 농업고등학교이니 ‘실습’을 많이 한다고도 할 테지만,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생이기 앞서 저마다 저희 집안에서 일꾼입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앞서 집에서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할 줄 알고, 밥도 스스로 지을 줄 압니다. 스스로 제 앞가림쯤 얼마든지 하지요.
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까닭은 더 깊이 배워서 삶을 한결 기쁘게 가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직 모르는 대목을 새롭게 배우려 하고, 앞으로 스스로 ‘새로 지을 살림’을 꿈꾸면서 차근차근 배우려 해요.
손으로 움직이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꿈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일 적에 배울 수 있느냐 하면, 손하고 마음하고 꿈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몸짓일 적에 배울 수 있습니다. 4348.1.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