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놀이' 이야기를 손질해서 새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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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 두 접시
한 사람이 밥을 먹을 적에는 한 그릇을 먹어요. 한 사람이 때로는 두 그릇이나 세 그릇을 먹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기에 여러 그릇을 먹으며,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여느 때에 워낙 많이 먹는 사람은 한 그릇으로 모자랄 수 있어요. 두 사람이 밥을 먹을 적에는 저마다 한 그릇씩 놓으니 밥상에는 두 그릇을 놓습니다. 세 사람이 밥을 먹을 적에는 저마다 한 그릇씩 놓아서 밥상에 세 그릇을 놓지요. 그러니까 한 사람은 ‘한 그릇’이고, 이 한 그릇은 이를테면 ‘일인분’입니다. 한자말 ‘일인분’은 “한 사람 몫”을 뜻해요. 한 사람이 밥으로 먹는 몫이 그릇으로 하나이기에 ‘한 그릇’인 셈입니다.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면 어떻게 말할 만할까요? 이때에는 한 사람 몫으로 ‘한 접시’라 이를 만합니다. 세겹인 돼지고기를 먹으려 한다면 ‘세겹살 한 접시’가 한 사람 몫인 한 그릇인 셈이고, 세겹인 돼지고기를 두 접시 먹으려 한다면 ‘두 접시’가 되어요. ‘그릇’은 밥이나 물건을 담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접시’는 그릇 가운데 납작하게 생긴 것을 따로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고기집에서 세겹살은 납작하게 생긴 것에 담기에 ‘한 접시’라 해야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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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돌이와 노래순이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불러요. 마음으로 서로 헤아리면서 새롭게 이름을 붙여 주어요. 반가운 사람이기에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만날 적마다 즐거운 마음이 들기에 서로 이름을 곱게 부릅니다. 이름은 어버이가 아이를 처음 맞이할 적에 붙여 주기도 하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새삼스레 이런 이름이나 저런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해요. 이를테면 잘 웃으니 ‘웃보’라 하고, 잘 울어서 ‘울보’라 해요. 웃보한테는 웃음둥이라는 이름이 달라붙기도 하고, 울보한테는 울음둥이 같은 이름이 뒤따르기도 해요. 그리고 웃음순이나 울음돌이 같은 이름이 새록새록 피어나기도 합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면 노래순이나 노래돌이가 되어요. 빨래를 거드는 아이라면 빨래돌이나 빨래순이가 되지요. 자전거를 좋아하면 자전거순이나 자전거돌이가 되고, 그림을 그리며 즐겁게 놀면 그림돌이나 그림순이가 돼요. 사진을 좋아한다면 사진순이가 됩니다. 춤을 좋아한다면 춤돌이가 됩니다. 케이크를 좋아하면 케이크순이가 되고, 빵을 좋아하면 빵돌이가 될 테지요. 밥순이나 고기돌이나 고구마순이나 감자돌이가 될 수 있어요. 서울에서 살아 서울순이요, 부산에서 살아 부산돌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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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사람
우리 집 큰아이가 여섯 살 무렵이던 어느 날,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문득 ‘물고기사람’을 그려서 가위로 오리며 놉니다. “물고기사람! 물고기사람!” 하고 노래하며 노는데, ‘물고기사람’이 도무지 무엇인지 알쏭달쏭하다고 여기다가, “얘야, 그 (종이)인형 좀 줘 보렴.” 하고 말하며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아하, 우리 어른들이 으레 말하는 ‘인어’로군요. 아이가 어디에서 ‘인어’가 나오는 그림을 보았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물고기에서 사람이 된’ 줄거리를 보여주는 만화영화를 한동안 자주 보았습니다. 그 만화를 헤아리니 금붕어 머리가 꼭 사람을 닮고, 다른 곳은 모두 물고기 모습이었어요. 여섯 살 아이는 그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람이 된 물고기’를 이 아이 나름대로 ‘물고기사람’으로 새롭게 그린 뒤에 종이인형으로 만들어서 논 셈입니다. 표준말로는 ‘인어’요, 이 낱말은 앞으로도 오래 쓰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섯 살 아이가 불쑥 터뜨린 이름 ‘물고기사람’은 말느낌이 퍽 곱고 잘 어울린다고 느껴서, 나는 앞으로 이 낱말을 즐겁게 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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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ㄷ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적에 곧잘 ‘ㄱㄴㄷ’을 씁니다. 말을 할 때뿐 아니라 글을 쓸 적에도 으레 ‘ㄱㄴㄷ’을 붙여요. 숫자로 ‘1 2 3’을 쓸 수 있지만, 한글 닿소리로 ‘ㄱㄴㄷ’을 즐겁게 씁니다. 열다섯 가지가 넘는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자리라면 한글 닿소리로는 모자라서 숫자를 쓰지요. 그러나 몇 가지가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면 한글 닿소리를 기쁘게 씁니다. 때로는 ‘가나다’를 쓰기도 하고요. ‘첫째 둘째 셋째’를 ‘ㄱㄴㄷ’이나 ‘가나다’로 나타내는 셈이에요. 오늘날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a b c’를 으레 씁니다만, 나는 씩씩하게 ‘ㄱㄴㄷ’을 써요. 그저 재미나게 한글 닿소리를 쓰지요. 내 이름을 적어야 하는 자리라면 ‘최종규’ 석 자에서 한글 닿소리를 따서 ‘ㅊㅈㄱ’처럼 적어요. 나는 인터넷 모임에 글을 올릴 적에는 ‘숲노래’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때에는 ‘ㅅㄴㄹ’라는 닿소리를 따서 써요. 편지를 쓴다든지 일기를 쓸 적에도 글 끝에 이렇게 한글 닿소리를 따서 곱게 적어 볼 수 있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