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균덩어리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아이를 가리켜 ‘병원균덩어리’라고 말하는 어른이 퍽 많은 듯하다. 이런 말을 하는 어른이 있는 줄 며칠 앞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런 말은 방송 매체에서도 가끔 나오는 듯하다. 어느 모로 본다면 ‘문명’을 앞세워서 총칼을 잔뜩 짊어지고 다른 나라로 쳐들어가서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던 제국주의 정치권력이 으레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던 이웃나라 정치권력도 한겨레 시골사람을 두고 ‘병원균덩어리’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예방주사란, 아이 몸에 ‘병원균’을 미리 집어넣어서 ‘그 병원균이 일으키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면역력을 키우는 주사이다. 그러면,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고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은 아이한테 ‘병원균’이 있을까, 아니면 예방주사를 맞은 아이한테 병원균이 있을까? 너무 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얼거리조차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따지지 못하는구나 싶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셈일까?
예방주사를 안 맞아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튼튼하고 씩씩하다. 예방주사를 맞으면서 아이들을 튼튼하고 씩씩하게 돌볼 수 있다. 예방주사 때문에 병에 안 걸리거나 더 잘 걸리지 않는다. 어버이가 얼마나 슬기롭게 아이들을 돌보면서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마음 가득 고운 사랑이 되어 아이를 따사롭게 어루만지는 보금자리가 아닌 채 예방주사만 척척 맞힌다고 아이가 안 아플 수 있을까? 예방주사는 안 맞히지만 집안 흐름이 차갑거나 무섭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예방주사는 맞힐 수 있고 안 맞힐 수 있다. 어버이로서 우리가 생각할 대목은 언제나 하나이다. 아이를 참답게 사랑하려는가? 아이를 참답고 슬기롭게 사랑하려는가? 아이를 참답고 슬기롭게 사랑하려 하는 어버이로서 ‘삶·살림·사랑’을 얼마나 새롭게 배우거나 익히려 하는가? 아이들한테 밥 한 끼니를 지어서 먹일 적에도 밥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배워서 짓듯이, 아이들 몸속으로 들어갈 예방주사를 맞히든 안 맞히든 어버이 누구나 스스로 똑똑히 배우고 살펴야 할 노릇이다. 예방주사가 무엇인지 똑똑히 배우지 않거나 살피지 않기에 ‘병원균덩어리’ 같은 말을 함부로 읊고 만다고 느낀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