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몬 연구실 1
다이스케 테라사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91



아이처럼 배우는 공룡뼈 고고학자 이야기

― 나오시몬 연구실 1

 테라사와 다이스케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9.25. 4500원



  아이들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아이마다 다 다르기에 어느 아이는 이것을 잘 하고 어느 아이는 저것을 잘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이한테 ‘넌 이것을 못 해’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 아이라도 무엇이든 다 잘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섣불리 ‘넌 이것을 못 하는구나’ 하고 말하기 때문에 아이는 그만 마음속에 ‘난 이것을 못 하네’ 하는 생각을 품기 마련이고, 이러한 생각이 스스로 굴레가 되어 앞으로도 어느 한 가지를 못 하는 몸짓이 되고 마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테라사와 다이스케 님이 빚은 만화책 《나오시몬 연구실》(학산문화사,2015) 첫째 권을 읽으면서 이 같은 대목을 새삼스레 되짚습니다. 이 만화책은 일본에서 공룡뼈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고고학자 이야기를 다루어요. 테라사와 다이스케 님은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대단한 만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나오시몬 연구실》은 요리 만화하고 아주 동떨어진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 만화는 어느 모로 보면 많이 닮아요. 어느 모습에서 닮는가 하면 ‘한길을 파면서 스스로 삶을 일구는 몸짓’이 닮은 사람이 만화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수선 전문 기술자를 교수님네 고향에서 뭐라고 부르는 말이 있다죠?” “제가 그랬던가요? 아무튼 다 됐슴다! 수지가 마를 때까지 건드리지 말라고 한 장 써 붙여 주세요.” (10쪽)


“그렇게 다 망가진 칠기를, 고치는 비용이 더 나오겠네! 차라리 버리고 새 걸 사는 게 싸게 먹힐걸요?”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돌아가신 제 어머니의 유품이거든요.” (13∼14쪽)



  아이들은 신나는 노래가 흐르면 저절로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신나는 노래가 없어도 스스로 신나게 놀면서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재미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터뜨리면서 노래를 불러요. 아이들은 스스로 호미질을 익혀서 흙놀이나 밭놀이를 해요. 아이들은 씨앗을 잘 심을 줄 알고, 삽질도 제법 잘 해냅니다. 아이들은 끈을 잘 묶을 줄 알며, 짐도 꽤 잘 나를 줄 압니다. 아이들은 문법이나 학문을 알려주지 않아도 ‘말’을 그야말로 무척 빠르게 익히거나 받아들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놀랍도록 빠르게 익히고, 미국에서는 미국말을 놀랍도록 빠르게 익히지요.


  나는 두 아이를 돌보면서 이 같은 대목을 늘 마주하고 느낍니다. 참말 아이들한테 어른이 섣불리 ‘넌 못 해’ 같은 말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보면, 아이는 누구나 스스로 차근차근 손놀림을 익혀서 무엇이든 척척 해냅니다.


  그러면, 이런 아이들 몸짓하고 《나오시몬 연구실》이라는 만화는 어떻게 얽힐까요? 네, 만화책 《나오시온 연구실》에 나오는 ‘대학교 고고학과 교수’는 무척 닮습니다. 고고학과 교수로 일하는 사람은 고고학 연구만 할 줄 알 뿐 아니라 ‘유물 되살리기’를 무척 훌륭히 해냅니다. 흩어진 뼛조각이나 조각난 도자기를 무척 손쉽다 할 만한 손놀림으로 짜맞추어요. 마치 아이들이 놀이를 하듯이 유물 되살리기를 합니다.



“상칠을 할 때는 먼지 한 톨 앉아서는 안 돼. 그럼 완전히 못 쓰게 되거든. 옛날 칠장인들은 사람 없는 광 2층 같은 데서 조용히 작업을 했지.” (27쪽)


“당신이 기억하는 그 사발의 그윽한 윤기와 색조는, 오래도록 써 오신 어머님의 손때가 배면서 만들어진 색이니까요. 칠기는 도자기와 달리 쓰면 쓸수록 표면에 윤기가 나며 색조는 부드럽고 깊어지죠. 그건 칠이 사람의 온기로 인해 더욱더 아름답게 가꾸어지는 과정입니다.” (33∼34쪽)



  만화책에 나오는 ‘대학교 고고학과 교수’는 책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바지런히 배우면서 책이라는 이론에도 밝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바지런히 땀흘려 몸을 쓰면서 삶이라는 대목에서도 밝아요. 어느 때에는 미장이가 되고, 어느 때에는 칠장이가 되며, 어느 때에는 벽돌공이 됩니다. 어느 때에는 그림을 솜씨 있게 그리고, 어느 때에는 칼을 솜씨 좋게 다루어요. 머리로도 몸으로도 ‘못 하는 일’이 없어요. 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해 내면서 스스로 해낼 줄 압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대학 교수’로 있는 분 가운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고학과 교수처럼 머리로나 몸으로나 모두 훌륭히 스스로 해낼 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이런 사람은 만화책에만 나오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둘레를 찬찬히 살피면, 먼 옛날부터 여느 수수한 보금자리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구나 집을 스스로 짓고 옷을 스스로 지으며 밥을 스스로 지었어요. 연장도 스스로 짓고, 새끼도 스스로 꼬며, 짚신이며 미투리이며 스스로 엮었습니다. 옛날에는 누구나 모든 삶을 스스로 지었어요. 일을 남한테 시키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 해냈지요.



“곡목가구는 부드러우면서 심지가 굳은 너무밤나무가 제격이야. 내가 소중히 아끼는 이 곡목 의자도 너도밤나무로 만들었거든? 마코토, 너는 마음씨 상냥한 아이란다. 집이나 다리처럼 단단하고 거창한 인물은 안 되어도 좋아. 이 의자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사람이 되면 할아버지는 좋겠구나.” (132∼133쪽)


“너는 자기가 꽤나 남을 배려하는 줄 아는데, 상대나 주위 대상물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아!” (179쪽)



  만화책 《나오시몬 연구실》을 읽으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고학과 교수는 ‘공룡 조사 연구비’를 얻으려고 무척 애씁니다. 그렇지만 대학교에서는 ‘돈 안 될 만한 연구 조사’에는 지원비를 주기 어렵다고 합니다. 굥룡뼈를 깊은 땅속에서 캐낸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하고 여기기 일쑤입니다.


  이런 대목에서는 한국 사회도 엇비슷하리라 느낍니다. 흔히 말하잖아요, 돈이 안 될 만하면 투자를 안 한다고 말이지요. 돈이 될 만해야 비로소 투자를 한다고, 그러니까 돈이 될 만한 자리에 돈을 쓴다고 말이지요.



“막연히 보기만 하지 말고, 보려고 노력해야 비로소 보이는 거야.” (181쪽)



  무엇이든 솜씨 있게 해낼 줄 아는 사람은 무엇이든 가볍게 지나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솜씨 좋게 해내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무엇이든 찬찬히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하고 돌아봅니다. 그런데,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해서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마냥 뚫어지게 쳐다볼 노릇이 아니라, 무엇을 보아야 할는지 생각하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실마리를 스스로 찾겠다는 생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삶과 살림과 사랑을 모두 처음으로 새롭게 마주하면서 배우는 몸짓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온마음을 기울이기에 아이들은 무엇이든 무척 빠르면서도 놀랍도록 알차게 배웁니다. 한길만 죽어라 하고 가기에 한삶을 아름답게 일군다기보다, 한길을 걷는 몸짓이 슬기롭고 차분하면서 야무질 때라야 비로소 한삶을 아름답게 일구지 싶어요. 그저 한길만 가서는 될 일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맺고 풀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꿀 때에 한삶을 이루지 싶습니다. 모두 두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나오시몬 연구실》 둘째 권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4349.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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