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안드레아 - 열여덟 살 사람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다
룽잉타이.안드레아 지음, 강영희 옮김 / 양철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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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열여덟 살 때 뭘 알았어요?

― 사랑하는 안드레아

 룽잉타이·안드레아 글

 강영희 옮김

 양철북 펴냄, 2015.11.23. 13000원



  아침에 밥을 하다가 그만 엄지손가락을 칼로 베었습니다. 물을 만지는 부엌일을 하자면 밴드를 안 붙일 수 없습니다. 밴드를 붙이고 아침을 마저 짓고 밥상을 차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왼손 엄지손가락에 밴드를 붙인 줄 알아차립니다. 아이들은 무릎이 크게 까지건 말건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않으나, 밴드 붙이기를 재미있는 놀이 가운데 하나로 여겨요. 좀 긁히거나 까지거나 핏방울이 맺더라도 그냥 두면 곧 낫는 줄 알지만 밴드를 붙이고 싶지요. 이러다 보니 아버지가 손가락에 감은 밴드를 아주 빨리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오늘 큰아이는 좀 남다르게 말합니다. “아버지 손가락에 밴드 붙였으니 내가 설거지를 할게.” 씩씩하고 의젓한 살림순이는 밥그릇을 다 비운 뒤 아버지 그릇이랑 동생 그릇까지 정갈하게 설거지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너는 물었어. “엄마, 엄마는 열여덟 살 때 뭘 알았어요?” (19쪽)


엄마가 만 열여덟 살이었을 때 아폴로가 달에 착륙했고, 미국과 베트남 군대가 캄보디아를 침입했어. 미국 전역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고. (23쪽)



  룽잉타이 님하고 안드레아 님이 주고받은 글을 엮은 《사랑하는 안드레아》(양철북,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어머니(룽잉타이)하고 아이(안드레아)가 나눈 글을 가장 많이 가장 많이 실었지만, 안드레아보다 어린 동생이 형한테 쓴 글도 더러 싣습니다. 두세 사람이 주고받은 글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보낸 글도 사이사이 함께 싣습니다.


  어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아이가 어머니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어머니하고 아이가 주고받는 글을 읽은(신문에 실린 글을 읽은) 사람들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인 느낌하고 생각을 보냈고, 이 글 가운데 몇 꼭지를 나란히 싣습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사랑하는 안드레아》는 아이가 스스로 이 땅에 우뚝 서서 생각을 곱게 가다듬고 튼튼하게 갈고닦는 길에 동무나 이웃이나 곁님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함께 빚은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엄마는 걱정이 지나치신 것 같아요. 여름에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말예요, 어느 날 아침, 동생은 아직 자고 있고 저는 막 잠에서 깬 참이었죠. 엄마는 그런 절 붙들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느니, 너무 많이 논다느니, 공부는 뒷전이라느니 불평을 늘어놓으셨어요. (56쪽)


안드레아, 너는 어렸을 때 네가 찬 공이 어느 집 정원에 떨어졌을 때조차도 선뜻 들어가서 가져오지 못했어. 지금의 너는 필립에게 뭐라고 말해 줄래? (68쪽)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글을 씁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이가 글을 씁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가 살림을 가꿉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아이가 살림을 거듭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가 아이랑 손을 맞잡고 즐겁게 놉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아이가 어버이랑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어머니는 아이한테 거룩하거나 대단하거나 놀라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면 되어요. 그리고, 어머니라고 하는 자리는 어머니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서 스스로 곱게 거듭나면서 이러한 숨결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머니한테 훌륭하거나 빼어나거나 멋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면 되지요. 그리고, 아이라고 하는 자리는 아이 스스로 생각을 가꾸고 북돋우고 살찌우고 돌보면서 스스로 새롭게 깨어나면서 이러한 숨결을 어버이한테 보여줍니다.



저는 이 사회구조 속의 가상적인 일면만 볼 수 있을 뿐이에요. 심지어 그것을 참아낼 수도 있고요. (71쪽)


“엄마는 성인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야. 도덕의 취사선택은 개인의 일이야. 논리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 (76쪽)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쓴 어머니는 아이한테 “엄마는 거룩한 사람(깨어난 사람/슬기로운 사람)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참말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어느 모로 본다면 어머니가 안 거룩하거나 안 깨어나거나 안 슬기로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새롭게 어른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지식이나 정보로 가르칠 수 없는 줄 깨닫는 어버이는 누구나 ‘슬기로운 숨결’로 거듭나요.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 가르치고 보살피며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즐거운 삶이 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어버이는 모두 ‘아름다운 넋’으로 거듭나요.


  우리 집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는 손길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이웃을 곱게 안고 포근히 아낄 수 있는 손길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한테 어버이인 나는 ‘거룩한 사람’일까요? 네, 나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거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구태여 거룩하고 훌륭하고 이러하고 저러하고 하는 이름을 떠나서, 어른으로 기쁘게 서고 어버이로 즐겁게 서며 사람으로 기쁘게 설 수 있는 숨결입니다. 아이가 배울 만한 몸짓을 스스로 지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노래하는 넋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삶을 물려받습니다.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삶을 물려받지요. 내가 오늘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삶이나 사랑이란 언제나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삶이요 사랑입니다.



형은 반년 동안 사귄 친구들이 유럽 학생들뿐이고 본토 학생은 거의 없다면서, 그 이유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초래한 장벽 때문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진짜 중요한 건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 홍콩에서 2년을 살면서도 나는 공공주택에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사귀지 못했어. (178쪽)


집을 나서기 전 미국과 유럽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에게 시위행진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어요. 다들 기말시험 준비 때문에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186쪽)



  나는 나로서 오롯이 서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서 오롯이 서는 사람입니다. 나는 나다우면서 아름답고 아이는 아이다우면서 아름답습니다. 내 곁에 있는 이웃은 이녁대로 아름다우며, 이웃이 낳아 돌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아름답습니다. 저마다 다르면서 아름답고, 저마다 다르게 슬기롭습니다. 저마다 다르면서 사랑스럽고, 저마다 다르게 기쁜 노래를 불러요.


  아침저녁으로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춤을 춥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짓는 춤놀이는 똑같습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놀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밤마다 흐드러지는 별빛을 잔치처럼 누립니다.


  이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줄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이 아이들이 맛나게 밥을 먹어 주니 고맙습니다. 이 아이들이 내 노래를 즐겁게 들어 주니 재미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저희 나름대로 새롭게 노래를 지어서 불러 주니 싱그럽습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네게 묻고 싶은 건 말이야, 안드레아. 네가 말하는 키치가 대체 어떤 거니? 네 아버지 세대의 독일인들이 벽에 걸어 놓은 마리아나 목각으로 만든 천사는 예술이니, 키치니? (231쪽)


빈랑(담배처럼 씹는 것)을 씹는 사람을 왜 정부에서 관리해야 하죠? 그런 논리라면 양치질하지 않는 사람, 변기를 사용한 뒤 물을 내리지 않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방귀를 뀌는 사람 등도 다 정부가 관리해야겠네요? (259쪽)



  아이한테 글을 써서 띄운 어머니(룽잉타이)는 어머니대로 새롭게 자랍니다. 어머니한테 글을 써서 보내는 아이(안드레아)도 아이대로 새롭게 피어납니다. 머릿속에 담은 지식을 글로 써서 띄우지 않아요. 이 지구별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썰미를 글로 담아서 띄웁니다. 교과서나 책에 적힌 이론을 글로 써서 보내지 않지요. 스스로 겪은 삶을 글로 빚어서 보냅니다. 몸소 치른 삶을 글로 엮어서 보냅니다.


  온누리 모든 어버이와 아이가 저마다 수수한 보금자리에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교사가 되거나 박사가 되어야 이야기를 잘 들려줄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요 아버지이면 됩니다. 그저 어버이요 어른이면 돼요. 그리고 아이들은 그저 아이인 넋으로 어버이와 어른을 마주하면서 꿈을 새롭게 지으면 됩니다. 글 한 줄이란 꿈이고, 글월 두 줄이란 사랑입니다. 4348.12.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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