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연기, 담배 - 담배의 문화사
에릭 번스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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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19



‘평화와 두레’였던 담배가 ‘전쟁과 산업’으로 바뀌어

― 신들의 연기, 담배

 에릭 번스 글

 박중서 옮김

 책세상 펴냄, 2015.11.5. 25000원



  나는 담배를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둘레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고 꺼리지 않습니다. 담뱃잎을 태우면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면 이 연기는 여러모로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쑥을 태우는 느낌이랄까요. 잘 말린 풀잎을 태우면서 나는 냄새와 연기가 사람들 마음을 차분히 달랜다고 할까요.


  오늘날 담배 회사는 온갖 화학약품을 섞은 담배를 팔지만, 아무리 화학약품을 섞어도 담배는 담뱃잎을 바탕으로 만듭니다. 담배라고 하는 풀을 키우지 않는다면 담배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담배를 태우든 밭에서 햇볕하고 바람하고 빗물을 머금으며 자라는 담배풀이 있기에 담배가 나옵니다.


  한국에는 1600년대 첫무렵에 일본을 거쳐서 담배가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담배가 들어오기 앞서도 ‘말린 풀’이나 ‘말린 나무’를 태우면서 불과 연기를 으레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말린 풀잎에서 나는 연기는 언제나 우리 둘레에 가득했다고 할 만해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풀내음을 맡고, 콩깍지를 태운다든지 논둑을 태우면서 풀내음을 맡습니다.



마야인인 여러분은 단순히 연기를 마시고 뱉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도이며, 연기는 기도의 전령이다. 이 향에는 임무가 있다. (15쪽)


담뱃대는 평화와 협동을 상징했고, 미시시피 강 유역과 오대호 지역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31쪽)


콜럼버스와 그의 함대는 더 서쪽으로 여행한 후에야 그들은 원주민들이 담뱃잎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41쪽)



  에릭 번스 님이 쓴 《신들의 연기, 담배》(책세상,2015)라는 책은 중남미에서 비롯한 담배가 어떻게 유럽으로 처음 퍼졌고, 유럽에서는 담배를 처음에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피우는 담배하고 씹는 담배하고 얽힌 ‘유럽과 미국에서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영국에서 담배를 둘러싸고 일어난 재미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바보스럽다고 할 만한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담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고, 담배로 어마어마한 돈을 챙긴 사람들이 있으며, 담배를 놓고 문화와 자유를 말하다가, 나중에는 담배와 얽혀 건강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담배가 ‘산업’이 되고, 나라에서는 ‘돈줄’로 삼는데, 이 담배가 비롯한 중남미에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징검다리’로 삼았습니다. 아무렇게나 피우던 담배가 아니었고, 돈줄로 삼아서 산업으로 다루는 담배가 아니었습니다. 《신들의 연기, 담배》가 이 대목을 조금 더 짚을 수 있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 텐데, 이 책은 유럽과 미국에서 담배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만 짚습니다. 아무래도 중남미에서 오랜 옛날부터 담배를 태운 이야기는 ‘글이나 책으로 남’지 않았을 테니, 이 대목까지 밝히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들(마야인)이라면 아마 이렇게 반문했을 것이다. 신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을 거부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신의 호의를 기대한단 말인가? 전달 도구인 연기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간의 기도가 하늘에 닿는단 말인가? (87쪽)


1615년과 1616년에 아메리카인들은 모두 합쳐 2300파운드의 담배를 잉글랜드에 수출했다. 이듬해에 롤프가 씨름하던 문제를 대부분 해결하자, 식민지인들은 2만 파운드의 담배를 해외로 수출하게 되었다. (129쪽)



  중남미에서도 북미에서도 그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던 사람들은 담배를 ‘평화’와 ‘두레(협동)’로 여기면서 태웠다고 합니다. 전쟁이나 산업 따위로 담배를 태우지 않았다지요. 그러면, 오늘날에는 담배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어디를 가든 금연구역입니다. 담배를 마음껏 태울 수 있는 자리는 차츰차츰 사라집니다. 그러나, 어느 가게를 가든 담배는 아주 손쉽게 장만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담배로 세금을 무척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이러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담배한테서 건강을 지키도록 하는 새로운 산업’이 불거집니다. 이쪽에서는 담배를 팔아서 돈을 벌고, 저쪽에서는 담배를 끊도록 하면서 돈을 법니다. 이쪽에서는 담배를 많이 팔거나 비싸게 팔려 하고, 저쪽에서는 담배를 끊도록 하는 길에서 돈을 치르도록 합니다.


  문득 모깃불을 떠올립니다. 모기를 쫓으려고 풀을 태우곤 하는데, 모깃불은 모기한테는 나쁠는지 모르나 사람한테는 좋습니다. 모기는 모깃불(쑥불) 냄새를 싫어해도, 사람은 쑥불(모깃불) 냄새를 좋아합니다. 하얗게 피우는 쑥불은 집안과 마당을 거쳐 마을에 골고루 퍼집니다. 말린 풀잎에서 나오는 냄새와 연기는 싱그러운 바람으로 거듭납니다.



버지니아에서는 독립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민병대원의 봉급을 담배로 지급했으며, 각자의 계급과 경험에 따라 적절한 개수의 담뱃잎을 잘 세어서 배급했다 … 독립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식민지인들은 담배로 값을 치르고 유럽에서 무기와 탄약, 그리고 각종 보급품을 사들였다. (150쪽)


아메리카인들은 승리자인 동시에 패배자이기도 했다. 수년 동안 그들이 생산한 담배를 해외에서 구할 수가 없게 되자 잉글랜드인들은 터키와 이집트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식민지의 생산품을 대체할 만한 제품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북아메리카산보다 오히려 그쪽 품종의 담뱃잎들을 더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189∼190쪽)



  모닥불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요즈음은 모닥불을 태울 만한 곳이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모닥불을 피우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나무로 불을 피우거나 때는 일이 사라지면서, 도시가스와 기름이 이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가스나 기름을 태우면 이 냄새가 매캐합니다. 가스나 기름 타는 냄새를 사람이 좋아할 만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연탄가스를 맡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모닥불 연기를 맡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모닥불을 피우거나 아궁이 군불을 땔 적에는 따스한 기운뿐 아니라 ‘나무 타는 냄새’가 우리 몸으로도 스며들면서 새 기운이 나도록 북돋운다고 할 만해요.


  풀잎하고 나뭇가지가 사람을 새삼스레 살리는 구실을 한다고 할까요. 날푸성귀는 사람한테 밥이 되고, 마른 풀잎은 사람한테 약이 된다고 할까요. 굵은 줄기는 집을 세우는 기둥이 되고, 자잘한 나뭇가지라든지 잘게 썬 나무토막은 따스하면서 넉넉한 불과 연기를 사람한테 베푼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풀하고 나무를 이웃으로 삼으며 누린 삶은 오래도록 평화로우면서 따사로웠다고 할 만합니다. 화약 냄새가 흐르거나 쇠붙이 냄새가 퍼질 적에는 평화가 깨지면서 전쟁 불길이 퍼졌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면서 삶을 북돋울 적에는 숲하고 한몸이 되고, 사람들이 서로 다투거나 경쟁으로 치달을 적에는 숲하고 멀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씹는담배 1천 달러어치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력이면 무려 2만 달러어치의 지궐련을 시장에 내보낼 수 있었으며, 손으로 만든 제품과 달리 기계가 만든 제품은 맛과 외양 모두 균일했다. (265쪽)


흑자의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막대한 광고비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힐은 1946년에 사망할 때까지 럭키 스트라이크 지궐련의 홍보에 무려 2억 5천만 달러 이상을 소비했다고 하는데. (351쪽)



  《신들의 연기, 담배》를 읽으면, 미국이 영국한테서 독립하려고 전쟁을 벌인 까닭은 담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을 식민지로 삼은 영국이 ‘식민지 미국’에서 돈을 더 많이 거두어들이려고 하면서 ‘식민지 미국’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식민지인 굴레를 떨치’려고 ‘담배를 팔면서 무기를 갖추’어서 영국하고 맞서 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이 미국이라고 일컫는 그곳을 식민지로 삼지 않았다면, 또는 미국이라고 일컫는 그곳을 식민지로 삼은 뒤에 담배 산업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또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담배를 처음 받아들일 적에 이 담배를‘하느님을 만나는 징검다리’로 여기는 삶으로 나아갔다면, 지구별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담배를 처음 태웠다고 하는 중남미 사람들은 평화와 두레를 헤아리면서 담배를 태웠는데, 이 담배를 받아들인 유럽 사람들은 왜 평화와 두레가 아닌 전쟁과 산업으로만 담배를 받아들이고 말았을까요?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에 담배를 곁에 놓을 수 있었으면 오늘날 사회에서도 담배를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눈길이나 손길은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요?



담배 업계가 46개 주와 맺은 합의문에 있는 또 다른 규정에 의해 모든 야외 광고가 사라졌다. 1999년 4월 22일 자정을 기해 미국 내에서 지궐련을 선전하는 모든 간판이 철거되었으며. (452쪽)


필립 모리스가 어느 날 갑자기 여론에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의학적 자료를 해석하는 능력이 어느 날 갑자기 월등해진 것도 아니었다. 이 회사는 어디까지나 사업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 즉 자사 제품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흡연의 위험성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소송을 피할 수 있기를 기대한 것뿐이었다. (459쪽)



  아름다운 냄새는 석유나 화학약품에서는 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냄새는 숲에서 납니다. 오늘날에는 석유나 화학약품을 써서 모든 물건을 만들고, 집도 시멘트와 쇠붙이와 화학약품을 써서 세웁니다. 오늘날 도시는 숲을 가까이에 두지 않을 뿐더러, 시골에서도 숲이 자꾸 사라집니다. 도시나 시골에서 아름다운 냄새가 퍼지기 쉽지 않습니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나 군부대를 더 늘리려고 할 뿐입니다.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줄이면서 숲을 북돋우려는 정책은 아직 없는데다가, 4대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냇물과 냇가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고속도로는 더 늘리려고 하지만, 숲을 더 가꾸려고 하는 손길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담배를 끊으면 우리 사회는 튼튼해질는지 궁금합니다. 담배 때문에 사람들 몸이 나빠진다기보다 오늘날 사회와 문명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가 사람들 몸을 나쁘게 한다고 느낍니다. 담배에 나쁜 성분이 있다기보다, 담배를 전쟁과 산업으로 끌어들인 권력자와 기득권자한테 나쁜 마음이 있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숲이 없고, 쑥불을 태울 수 없으며,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고운 냄새를 맡을 만한 삶이 못 되는 도시사람으로서는 담배라고 하는 ‘말린 풀잎’이라도 태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마음을 차분히 달랠 만하리라 느낍니다. ‘종이말음담배’에 아무런 화학약품 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오로지 풀잎 냄새와 성분이 흐르는 담배가 되도록 한다면, 참말 담배 한 개비로 ‘중남미 옛사람이 하느님을 만나’고 이웃하고 서로 평화와 두레를 나누던 삶을 느낄 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8.12.4.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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