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미소 난 책읽기가 좋아
크리스 도네르 글, 필립 뒤마 그림, 김경온 옮김 / 비룡소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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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0



시골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말의 미소

 크리스 도네르 글

 필립 뒤마 그림

 김경온 옮김

 비룡소 펴냄, 1997.7.11. 6500원



  어린이문학 《말의 미소》(비룡소,1997)는 프랑스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 이야기를 다룹니다. 프랑스도 한국하고 시골살림은 비슷한지, 시골은 자꾸 줄어들고, 사람도 떠나고, 아이들도 차츰 사라져서, 시골학교도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흐름을 마냥 지켜볼 수 없다고 여긴 시골학교 교사 한 사람은 생각을 짜내고 짜내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흐름을 돌이킬 수 있을까 하고. 어떻게 하면 이 스러져 가는 시골마을에 새롭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도록 북돋울 수 있을까 하고.


  이리하여 어느 날 ‘말’을 떠올립니다. 말 한 마디를 학교에 들이자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기는 했어도 말을 장만할 돈이 없습니다. 교사도 주머니를 탈탈 털고, 아이들도 저금통을 탈탈 텁니다. 그러나 말 한 마리를 장만할 돈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그런데, 교사와 아이들은 말 한 마리를 얻어요.



비르 아켕이 왜 그렇게 쇠약해졌는지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단지 말이 늙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원인을 찾아보지 않고 은퇴시키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 나이로는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을 거야. 도살 전문가가 고기값으로 돈을 준다면 모를까.” (22쪽)



  교사도 아이들도 말을 잘 모릅니다. 이러저러하게 생긴 짐승이 말인 줄 알 뿐입니다. 말 사육장을 거느린 사람은 말을 압니다. 어느 말을 경마장에 내보내면 돈을 잘 벌 만한가를 알고, 어느 말은 ‘은퇴’시켜서 도살장으로 보내어 고기로 바꾸면 돈이 될 만한가를 압니다.


  말 사육장을 거느린 백작은 시골학교 교사가 찾아왔을 적에 속으로 ‘잘되었네!’ 하고 생각합니다. 늙었는지 어디가 아픈지 아무튼 경마장에서 더는 달릴 수 없는 말을 시골학교 교사한테 팔기로 했지요. 도살장에 넘기려고 했는데, 도살장에 넘기는 값보다 돈을 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늙었는지 아픈지’ 알 길이 없는 말을 모르는 척 떠넘깁니다.


  그러면, 말 사육장을 거느린 백작은 말 한 마리가 ‘늙었는지 아픈지’ 왜 모를까요? 이녁은 말을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돌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돈벌이만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말은 웃지 않는다. 말이 윗입술을 콧구멍 위까지 들어올릴 때는, 기쁨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배가 아프기 때문에, 몹시 아프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수의학에서는 이를 ‘위통’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말을 만나기 전부터 줄곧 말을 사랑해 왔다. (33쪽)



  시골학교 교사와 아이들은 말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아 말이란 이렇게 크구나, 아아 말이란 이렇게 멋지구나, 하고. 그런데 말이 웃는 낯입니다. 아이들은 ‘말이라는 짐승을 아직 몰라’요. 그래서 말이 웃는 낯인 모습을 보면서 왜 이러한 모습인가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저 말이 ‘우리를 보고 반가워서 웃네!’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내가 하려는 일은 아주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말을 거절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보고 싶어했다. (41쪽)



  시골학교 교사하고 아이들 앞에서 웃는 낯이던 말은 얼마 못 걷고 길바닥에 픽 쓰러집니다. 입에 거품을 뭅니다. 교사도 아이들도 저희 돈을 몽땅 털어서 장만한 말인데, 나날이 초라해지고 쓸쓸해지는 시골마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서, 아이들한테 꿈을 심어 주려는 뜻에서, 그야말로 온 사랑을 쏟아서 말 한 마리를 시골학교에 두면서 돌보려고 했는데, 말을 데려온 날, 이 말은 힘없이 길바닥에 쓰러져서 몹시 끙끙 앓습니다.


  수의사가 달려옵니다. 수의사는 이 말이 이제 더 살 수 없다고 진단을 합니다. 그러나 교사도 아이들도 말한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수의사를 바라봅니다. 부디 이 말이 살아나도록 해 달라고 바랍니다. 수의사는 ‘웃는 말’을 보고는 이 말은 ‘죽음으로 가는 말’인 줄 알지만, 차마 아이들한테 그 이야기까지는 털어놓지 않습니다. 수의사로서 ‘말이 부디 덜 아픈 채 죽음으로 가도록 할 생각’이었으나,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합니다. 마취 주사를 놓고 배를 가르기로 합니다. 큰 수술을 하기로 합니다.



아이들은 말의 털을 만져 보았고, 말의 온기와 냄새를 느꼈다. 아이들은 말의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했는지 말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해 주려고 말의 몸을 정성껏 쓰다듬었다. (46쪽)



  늙고 아픈 말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늙고 아픈 말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이 말한테서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시골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수의사는 큰 수술을 마쳤습니다. 수의사는 ‘기적’도 ‘놀라움’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 눈망울을 보고는 말을 차마 죽음으로 보내지 못하고 큰 수술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길바닥에 쓰러진 채 끙끙 앓는 말을 어루만져 주고 기운을 내라는 얘기까지 들려줍니다.


  말이라고 하는 짐승이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알아듣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늙고 아픈 말은 마취에서 풀려난 뒤 무언가를 느낍니다. 제 곁에서 저를 지켜보면서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낍니다. 거의 죽음 문턱에 이르렀던 말은 마지막 힘을 쥐어짭니다. 아니, 마지막 힘이 아니라 새로운 힘을 스스로 일으킵니다. 앞으로 경마장에서 달릴 일은 없을 테지만, 이 말은 말로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알아차립니다. 앞으로 아이들한테서 사랑을 받고, 또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새롭게 살 수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 맞아! 어른들에게 기쁨을 되찾아 주는 것은 역시 아이들뿐이야!’ (53쪽)



  짤막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린이문학 《말의 미소》입니다. 이 작품은 수의사 눈길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끕니다. 말 한 마리를 둘러싸고 시골마을 작은 학교 교사하고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는가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른들에게 기쁨을 되찾아 주는 아이들”을 노래하면서 끝맺습니다.


  이 작은 이야기에서도 들려주는데, 시골아이가 할 수 있는 ‘큰 일’은 없습니다. 시골아이한테는 돈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한테는 사랑이 있습니다. 서로 아끼는 사랑이 있고, 다른 목숨을 아끼는 사랑이 있으며, 따사롭고 너른 마음에 가득한 사랑이 있어요.


  마을을 살리는 힘이라면, 마을을 살리는 길이라면, 그리고 마을뿐 아니라 나라와 지구별을 살리는 밑힘이라면 바로 아이들이겠지요. 웃는 아이들이 모두를 살리고, 웃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온누리를 따사로이 어루만질 테지요. 4348.1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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