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사람들
며칠 앞서 광주에 있는 어느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이곳에서 온 전화는 ‘내가 시골에서 살며 하는 여러 가지 일’을 놓고서 방송으로 찍겠다고
하면서, 그러니 고흥으로 찾아와서 이야기를 미리 더 나누어 보겠노라 하는 말을 들려준다. 나는 이 전화를 받으면서 마음이 그냥 부드러웠다.
좋지도 나쁘지도 기쁘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동안 서울에 있는 여러 방송국에서 전화가 올 적에는 ‘저희가 방송으로 찍으려면 미리 알아보아야 해서
묻는다’고 하면서 여러 날에 걸쳐 이것저것 묻느라 날마다 한두 시간씩 보내기 일쑤였는데, 막상 내가 ‘정 그러시면 찍기로 하지요’ 하고 말하면
뜻밖에도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로서는 무척 놀랄 일이었다. 처음에는 방송사 취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는데,
여러 날 자꾸 전화를 하니 ‘그러면 찍지요’ 하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찍겠다느니 안 찍겠다느니’ 말이 더 없었다.
광주에 있는 어느 방송국은 ‘그냥 찍겠다’고 말했고, ‘찍고 싶어서 미리 만나보려고 찾아오겠다’고 했다. 광주에서 고흥까지는 한 시간 반이면
오고, 서울에서 고흥까지는 다섯 시간이면 온다. 아무래도 ‘같은 한국’에서 다섯 시간을 편도로 달리자니 먼길이리라. 그런데 다섯 시간은 참말
먼길일까?
방송국 사람들이고 아니고를 떠나, 우리 도서관으로 온 손님이기에 기쁘게 맞이하기는 했지만, 내 몸이 그리 좋지 않다고 느꼈다. 지난 구월에 난
자전거 사고 뒤로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럴 수 있다. 한 시간 반을 달려서 광주에서 고흥으로 온 손님들한테 제대로 대접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설펐으리라. 이러면서도 내 몸은 그리 홀가분하지 않다. 꽤 힘드네. 아무튼, 이번에는 방송 취재를 하기로 했으니 잘 해
보아야지. 없는 기운을 내서 잘 해보고, 이 시골에서 누리는 삶을 여러 이웃들한테 보여주어야지. 4348.11.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