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냄새



  아침에 시래기를 엮어서 넌다. 한참 시래기를 엮다 보니 후박나무 그늘에서 이 일을 한 탓인지 손이 시리다. 볕이 나는 쪽으로 옮겨서 시래기를 마저 엮는다. 오늘은 바람이 조금 분다. 이제 곧 겨울이니 조금 부는 바람에도 몸이 시리다. 옛날에는 모든 일을 언제나 손으로 했으니 겨울을 앞두고 무척 부산했을 테고, 누구나 온몸에 온갖 곡식이랑 남새랑 열매랑 시래기 냄새가 짙게 배었으리라.


  이럭저럭 시래기를 엮어서 너는데, 아주 낯익고 구수하며 오래된 그림이 떠오른다. 서른 몇 해 앞서 어머니 시골집에서 지내던 그림이다. 그무렵 맡은 시래기 냄새가 떠오르고, 흙집 냄새가 떠오르며, 우물 냄새에다가 여물 냄새랑 짚 냄새가 하나씩 떠오른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비닐끈으로 시래기를 엮는데, 그무렵에는 실로 시래기를 엮었다. 그무렵 그 실은 어떤 실이었을까. 읍내 저잣거리에서 장만한 실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 시골집에서 시골 어른들이 손수 자은 실이었을까. 얼핏 실 냄새가 떠오를 듯 말 듯하다. 그무렵에는 어느 시골집에서든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없었고, 언제나 모든 살림을 알뜰히 건사했다. 이와 달리 오늘 내가 이곳에서 쓰는 비닐끈은 비나 바람이나 햇볕에 삭으면 쓰레기가 된다. 땅에 묻기도 불에 태우기도 거석한 쓰레기이고 만다.


  흙에서 얻은 실로 흙에서 거둔 시래기를 엮어서 흙으로 지은 집에서 퍼지던 냄새를 오늘 이곳에서 몇 사람이나 맡을 수 있을까. 오늘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냄새를 맡으면서 자라는가. 흙으로 빚은 사람 몸뚱이를 흙으로 돌보는 냄새는 이 땅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는가. 4348.1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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