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13


 준비 땅


  요즈음은 ‘요이 땅(ようい どん)’ 같은 일본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준비(準備) 땅’으로 고쳐서 쓰니까요. 그렇지만, ‘준비 땅’이라는 말마디도 아직 한국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일본말 ‘요이’를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한자말 ‘준비’로 바꾸기만 했을 뿐이니까요.


  일본사람은 총소리를 ‘땅’으로 적습니다. 한국사람은 총소리를 ‘탕’으로 적지요. 일본 사회나 학교에서 운동회나 경기나 대회를 하면서 총을 쏘며 퍼진 말투인 “요이 땅(준비 땅)”인데요, 막상 육상 경기를 지켜보면, 몸짓을 세 번으로 나눕니다. “준비이이, 땅!”이라 하지 않고, “하나, 둘, 셋!”이라 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자리에서 숫자를 셋 세면서 함께 첫발을 뗀다면, 한국말로는 “하나 둘 셋”이라 하면 딱 어울립니다. 숫자를 셋 세지 않고 둘만 센다면, “자, 가자”라든지 “자, 달려”라 할 수 있어요.


  한국말에서 ‘자’라고 하는 느낌씨는 여러 사람 눈길이나 마음을 모으는 노릇을 합니다. “자, 이제 가 볼까”라든지 “자, 오늘은 이만 마치지요”라든지 “자, 기다려 보라고”라든지 “자, 요놈 보게나”처럼 써요.


  그런데 사람들이 입으로는 으레 ‘자’를 써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문학에서는 좀처럼 ‘자’라는 말을 못 쓰는 듯합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른이라면, 또 어린이가 읽을 글을 쓰는 어른이라면, 어린이가 말을 슬기롭게 배워서 아름답게 쓰도록 한국말을 좀 찬찬히 살피고 생각해서 알맞게 써야지 싶습니다. 4348.10.24.흙.ㅅㄴㄹ



내가 태어날 때도 “준비 땅” 하고 수억 마리 정자가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요

→ 내가 태어날 때도 “자 달려” 하고 수억 마리 정자가 달리기를 겨루었는데요

《박상우-불량 꽃게》(문학동네,2008) 44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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