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분의 일 2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65



우리는 서로서로 돕는 지구별 이웃님

― 십일분의일 (1/11) 2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2.25. 4800원



  저녁에 아이들을 재웁니다. 두 아이가 마음껏 뛰고 떠들고 웃고 노래하고 뒹굴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다 놀았구나 싶을 무렵 초 한 자루를 켭니다. 집안에 차분하게 흐를 만한 노래를 틉니다. 전깃불은 모두 끕니다. 모두 방석에 앉아서 촛불을 바라봅니다. 촛불에서 어두운 곳을 고요히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낯설거나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지만, 이제 무척 야무지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나도 아이들이랑 함께 씩씩하게 촛불보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촛불을 보다가 하품이 나오거나 졸리면 스스로 들어가서 이부자리에 눕습니다. 나는 촛불을 더 보고 나서 이부자리를 살피지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미어요. 얼마 앞서까지는 촛불보기를 하지 않고 그냥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한 시간 남짓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재웠고, 요즈막에는 저녁마다 촛불보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제 잠자리를 챙겨서 눕도록 합니다.



‘그래도 그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좋았다. 온몸을 사용해 골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좋았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12쪽)


‘그 녀석이 그렇게 날 믿고 있는데, 내가 날, 믿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야.’ (34쪽)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구나 싶은 때에 부엌으로 갑니다. 작은아이가 저녁에 먹고 남긴 밥그릇을 들여다봅니다. 이 밥은 내가 마저 먹습니다. 한창 먹다가 아차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밥은 우리 집에서 함께 눌러서 사는 마을고양이한테 주어도 될 텐데.


  다음에는 아이들이 남긴 밥을 고양이밥으로 살뜰히 챙기자고 생각하면서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만화책 이름인 ‘십일분의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쉽게 알아챌 만합니다. 바로 축구 이야기입니다. 운동장에서 뛰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레귤러 자리를 지키고 싶어 골키퍼가 되었던가? 아니잖아.’ (49쪽)


“당신은 몸을 던져 골을 지켰어. 거기서 주저하며 움츠러들었다면 내가 흠씬 두들겨팼을 거야! 그러니, 당신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 절대 사과할 필요 없어.” (54∼55쪽)



  아는 사람은 다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다 모를 텐데,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다른 운동 경기도 이와 같아요. 혼자서 하는 경기는 없습니다. 경기장에 나서는 사람이 혼자라 하더라도 경기장 둘레와 뒤에서 돕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경기장에 혼자 나서는 사람도 경기장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녁이 연습을 하거나 훈련을 하도록 돕지요.


  이리하여,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열한 사람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물결 가운데 한몫을 맡습니다.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빠지더라도 다른 열 사람 물결이 흔들려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경기장에서는 모두 한마음이요 한몸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잘 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하는 물결이고, 한 사람이 잘 못해도 열한 사람이 함께 잘 못 하는 물결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열 사람이 곁에서 받치거나 돕습니다. 두 사람이 잘 못 하면 아홉 사람이 받치거나 돕지요.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잘 못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기꺼이 나서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다만, 경기를 마친 뒤에는 ‘최우수 선수’나 ‘우수 선수’를 가리곤 합니다. 모두 훌륭했으나 이 가운데 가장 훌륭했다는 사람을 따로 가리기도 해요. 그러면, 이 한 사람은 왜 가장 으뜸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다른 열 사람이 튼튼하게 버팀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열 사람이 넉넉하고 아기자기한 밑물결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가장 으뜸인 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까닭은 열한 사람이 모두 으뜸이 되도록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잔소리 해대지 않아도 다 알거든! 내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여자아이가 우울해 하고 있으면 위로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힘든 사람을 더 몰아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77쪽)


“슬픈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덧씌우면 되잖아?” (80쪽)



  아이들이 잠든 밤에 부엌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아이들한테 집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더러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지만, 밥을 하라거나 설거지를 하라거나 빨래를 하라거나 청소를 하라거나 같은 일은 안 시킵니다. 아이들더러 읍내에 가서 장보기를 하라고 시키지 않고, 아이들더러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다녀오라고 시키지 않아요.


  두말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나어린 아이들한테 섣불리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나어린 아이들한테는 ‘자, 너희는 기쁘게 뛰놀렴.’ 하고 말할 뿐입니다.


  만화책 《십일분의일》에 나오는 ‘한 사람’은 어떤 몫을 할까요? 공격수이든 수비수이든 문지기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저마다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되, 다른 사람들이 제몫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버티는 나무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를 맡아서 지키는 동안, ‘한 사람’은 한 사람대로 마음껏 제 솜씨를 뽐내면서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은 한 사람을 받치고, 한 사람은 ‘열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른 한 사람이 마음껏 뛰고 달리며 땀을 흘릴 수 있도록 받쳐 주어요.



“대충 적당히 한 녀석은 긴장 따위 안 해. 나도 시합 전엔 늘 긴장되거든. 그전까지 연습을 필사적으로 했을 때는 더욱 그렇고. 그러니 걱정 마. 넌 틀림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97쪽)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헤딩이라면 할 수 있잖아?” “하지만, 난.” “‘나는, 나는’ 하며 뭐든 혼자 하려고 하지 마. 11명이나 있는걸. 네가 필살 슛을 넣지 않아도, 이길 수 있어.” (137∼138쪽)



  아이들은 밥을 지어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밥을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들은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밤에 새근새근 잠들면서 즐거운 꿈나라로 날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걸레질이나 비질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 노래하면서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면 됩니다.


  축구라는 운동 경기에서 열한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씩 즐겁게 제몫을 맡으면서 다른 동무나 이웃이 기쁘게 운동장을 누비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선 한 사람은 다른 열 사람이 뒤와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기에 마음껏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수십 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나는 다른 지구별 이웃을 돕는 버팀나무요, 다른 지구별 이웃은 나를 돕는 버팀나무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고, 함께 두레를 하기에 기쁩니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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