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84 보고, 하면, 돼



  “해 보면 돼.”라는 말은 아이나 어른이나 두루 씁니다. 그런데, 이 말을 쓰는 사람 스스로 이 말에 어떠한 힘이 깃들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쓰지요. 다만, 이 말을 그냥 쓰더라도 이 말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었기 때문에 이 말대로 됩니다. “해,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 말처럼 어마어마한 힘이 깃든 다른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해 봤자.”입니다. 흔히 “해 봤자 안 돼.”나 “해도 안 돼.”나 “해 보니 안 되던걸.”이나 “해도 해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해?”처럼 말합니다.


  자,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 보면 돼(해 봐 돼).” 하고 노래하면서 스스로 제 마음에 말씨(말로 된 생각씨앗)를 심는 사람과, “해 봤자(해도 해도 안 돼).” 하고 울면서 스스로 제 마음에 말씨(이때에도 말로 된 생각씨앗)를 심는 사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둘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꾸 ‘안 되는 길’만 생각해서 끝끝내 도무지 안 되고야 마는 자리에서 삶을 마치고 죽음으로 갑니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꾸준하게 ‘되는 길’을 생각해서 언제나 새롭게 되고 다시 되면서 스스로 거듭나는 자리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고요한 누리로 갑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서로 얘기합니다. “난 잘 안 돼.” “아니야, 자 봐 봐. 잘 보라구. 잘 보니?” “응.” “그래, 잘 보면, 너도 할 수 있어.”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럼, 나도 하는걸. 자, 다시 해 봐. 너도 돼.”


  하려면 보아야 하고, 보았으면 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 먼저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기’와 ‘보기’는 늘 같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하기’와 ‘보기’가 같이 움직이듯이 ‘되기’도 같이 움직입니다. 하면서 보고, 보면서 바로 됩니다. 보면서 하고, 하면서 곧장 됩니다.


  오늘날 사회 얼거리를 보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늘 다그치면서 시험공부를 시킵니다. 시험공부를 시키는 어른(교사와 어버이)은 아이들을 둘로 가릅니다. 한 갈래는 ‘시키면 잘 하는 아이’이고, 다른 한 갈래는 ‘시켜도 못 하는 아이’입니다.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제도권학교에서는 으레 ‘우열반’을 가릅니다. 우열반을 갈라서 한쪽은 ‘해 보면 되’도록 이끌고, 다른 한쪽은 ‘해도 해도 안 되’도록 이끕니다. 이러한 제도권학교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사람들은 길듭니다. 내가 나한테 말을 거는 길을 잊거나 잃습니다.


  정부에서는 왜 모든 아이를 학교에 집어넣는 의무교육을 시키려고 할까요?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나는 보겠어. 나는 보았으니 하겠어. 나는 했으니 되겠어.’와 같은 생각을 못 하게끔 막으려고 의무교육을 억지로 시킵니다. 아예 법으로 못박아서 모든 아이가 반드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도록 내몰 뿐 아니라, 한번 학교에 발을 들여놓으면 대학교까지 꼭 다녀야 하는듯이 몰아세웁니다. 대학교를 다니면 이제는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웃사람이 시키는 일만 죽어라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정년퇴직 뒤에는 연금을 받으면서, 정부가 마련한 놀이시설과 휴양시설에서 관광이나 하다가 죽는 길’로 가도록 집어넣어요.


  보험을 드는 사람은 보험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보험을 바라보고 지었으며, 보험에 맞추어 제 삶이 흐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안 아프면서 제 삶을 짓는 사람은 몸이 안 아프면서 제 삶을 지을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눈부시게 튼튼한 몸을 늘 생각하면서 노래하고 웃거든요.


  모든 말은 씨앗입니다. 그래서 ‘말씨’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사회에서 한국말 ‘말씨’는 거의 죽은 말이 됩니다. ‘글씨’는 글로 심는 씨앗입니다. 글 매무새가 글씨가 아니라, 글로 심는 씨앗이 글씨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컴퓨터와 온갖 기계로 글을 쓰도록 사회의식이 우리를 내모니 ‘손으로 짓는 글씨’를 거의 모든 사람이 잃거나 잊습니다. ‘내 그림(카드)’과 ‘내 글(말)’과 ‘내 삶(길)’은 늘 손수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삶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를 슬기롭게 바라보아야 하고, ‘말씨’랑 ‘글씨’라는 낱말을 사랑스레 되찾으면서, ‘내 말을 내가 스스로 내 마음에 심는 아름다운 하루’를 열 수 있어야 합니다. 복지정책과 보험제도에 내 몸을 길들이거나 맞추지 말고, 내 삶은 내 넋으로 즐겁게 지어서 기쁘게 누려야 합니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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