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찍는 사진
신나게 밥을 지어서 밥상을 차린 뒤 아이들을 부른다. 밥을 짓는 얼거리나 흐름이나 손길은 언제나 몸에 아로새겨지고 마음에 남는다. 옛날부터
밥짓기나 밥차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자는 생각은 안 했다. 동영상으로 찍어 놓아도 밥짓기나 밥차림을 알 수는 없다고 느꼈다. 손수 하지 않고서야
알 노릇이 없다고 느낀다.
어릴 적에 받은 놀랍거나 멋진 밥상은 사진 한 장으로도 안 남더라도 늘 마음에 남는다. 아마 내가 오늘 아이들한테 차려 주는 밥상도 굳이
사진으로 안 찍더라도 아이들 마음에 남으리라 느낀다. 그리고, 아이들 몸이 알 테지.
때때로 밥상을 사진으로 찍어 본다. 그리고, 밥을 먹는 아이들 모습을 살짝살짝 사진으로 담아 본다. 그렇지만, 밥상을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고,
밥을 먹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기도 만만하지 않다. 밥상맡에 사진기를 두고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잘 먹도록 이끄느라 바쁜데 언제
사진기를 손에 쥐는가.
사진 한 장 찍는 데에는 1초면 넉넉하니까 딱 1초만 말미를 내면 되는데, 어버이로서 1초라는 말미를 내기가 뜻밖에 무척 어렵다. 어버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이라면 누구나 느끼리라. 그래도, 어버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바로 이 1초를 내어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다면, 여러모로 재미나면서 애틋한 이야기가 새삼스레 남기도 한다. 밥을 찍기는 쉽지 않아도, 밥 먹는 아이들을 찍기는 쉽지 않아도, 일부러
틈을 내어 사진 한 장 남긴다. 4348.10.20.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살림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