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80 네, 아니오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왜 여기에 있느냐 하면, 내가 여기에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여기에 있고 싶을까요. 내가 여기에 있을 적에 내 마음이 가장 너그럽고 포근하면서 기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여기 말고 다른 데에 있을 적에는 어떠할까요. 다른 데에서는 안 너그럽고 안 포근하며 안 기쁠까요? 다른 데에서도 너그럽거나 포근하거나 기쁠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내가 가장 너그럽거나 포근하거나 기쁜 곳에 깃듭니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내 보금자리는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곳에 짓습니다.


  이것을 하느냐 저것을 하느냐 하고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고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과 저것’은 어느 것이 되든 ‘고르기’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어느 하나를 고르는 길이 아닙니다. 삶은 ‘네·아니오’ 가운데 하나로 가는 길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로 가느냐 하고 스스로 묻고는 ‘네’라면 그 길로 가고, ‘아니오’라면 그 길로 안 갑니다. ‘네·아니오’는 ‘이것·저것’이 아닙니다. ‘이것·저것’은 양비론이거나 이원론이거나 이분법입니다. 삶은 둘로 가르지 않습니다. 삶은 언제나 오직 삶입니다.


  그런데 삶은 ‘한 가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삶은 ‘둘’로 가르지 않는 길이지만, ‘하나’로 뭉뚱그리는 길도 아닙니다. 삶은 늘 삶입니다. 삶은 늘 ‘삶’ 그대로 꽃피우는 길입니다.


  삶은 참말 늘 삶일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은 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거나 저런 사랑이 있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사랑을 다 다르게 느껴서 받아들이거나 나누지만, 다 다르게 느껴서 받아들이거나 나누는 사랑은 언제나 ‘사랑’으로 나아갈 때에 참다운 사랑이요, 사랑으로 가지 않고 ‘이런 사랑’이나 ‘저런 사랑’이 된다면, 이때에는 거짓 사랑입니다. 사랑이기에 사랑이고, 사랑은 사랑 아닌 다른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미운 사랑’이나 ‘고운 사랑’은 없습니다. ‘더 나은 사랑’이나 ‘작은 사랑’이나 ‘큰 사랑’이나 ‘모자란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그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것’이나 ‘저것’으로 나누거나 가르지 못해요. 책은 언제나 책일 뿐이에요. 좋은 책이 없고, 나쁜 책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일 뿐이지요. 좋은 사진이나 나쁜 사진이 따로 없습니다.


  꿈은 늘 꿈입니다. 꿈은 내가 이루려고 하는 꿈일 뿐입니다. 꿈도 삶과 사랑처럼 ‘그 결 그대로’라고 말할 뿐이면서도 다른 것이 되지 않습니다. 뭉뚱그릴 수 있는 꿈이 아니라, 꿈도 늘 그저 꿈입니다. 내가 이루려는 꿈은 큰 꿈도 작은 꿈도 아닙니다. 낡은 꿈도 새로운 꿈도 아닙니다. 어리석은 꿈도 놀라운 꿈도 아닙니다. 그저 꿈으로 나아가고, 그예 꿈으로 가꾸며, 그대로 꿈이 되도록 이룹니다.


  이리하여, 나는 늘 ‘네’나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내가 하려는 일인가 하고 묻습니다. 내가 이루려는 꿈인가 하고 묻습니다. 내가 스스로 길어올려서 나누려는 사랑인가 하고 묻습니다. 내가 날마다 아침에 새로 열어서 지으려는 삶인가 하고 묻습니다. 나는 ‘네’라고 스스로 말할 만한 길을 걷습니다. 나는 ‘아니오’라고 스스로 말할 만한 길은 안 갑니다. ‘아니오’만 자꾸 나온다면, 내가 갈 길을 새롭게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늘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사이에서 고르지 않습니다. ‘네’라고 말할 만하기에 씩씩하고 즐겁게 노래하면서 걸어갈 길을 생각합니다. ‘네’라고 당차게 외치면서 기쁘고 아름답게 춤추면서 걸어갈 길을 생각합니다.


  삶이 되고 사랑이 되며 꿈이 될 길을 생각합니다. 삶으로 이루고 사랑으로 이루며 꿈으로 이룰 길을 걷습니다. 삶으로 나누고 사랑으로 나누며 꿈으로 나눌 이야기를 짓습니다. 나는 바로 오늘 여기에 있으면서 내 삶을 짓고, 이야기를 지으며, 생각을 짓습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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