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3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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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0



네 뒷그늘을 감출 수 있을까

― 목소리의 형태 3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6.30. 5500원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늘 내 뒤에 남습니다. 모래밭을 걷든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땅을 걷든, 내 발자국은 늘 내 뒤에 남아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잊으려고 한들 ‘잊으려 했다는 생각’이 나한테 남을 뿐, 내가 걸어온 발자국은 잊혀질 수 없습니다. 바닷물이 모래밭 발자국을 지우고, 눈에 보일 만한 ‘시멘트나 아스팔트 땅바닥 발자국’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온 발자국은 언제나 몸하고 마음에 새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걸어가면서 뒤에 남긴 발자국을 돌아보지 않아요. 앞으로 걸어갈 적에는 앞으로 걸어가는 길을 생각할 뿐입니다. 앞으로 걸어가려 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발자국이 잘 있나?’ 하고 살핀다든지 ‘발자국이 저기 있네!’ 하고 생각한다면, 그만 앞길이 자꾸 힘들 뿐 아니라 전봇대에도 부딪히고 나무뿌리에도 걸려 넘어질 테지요.



“드디어 핸드폰을 손에 넣었단 말이지?” “고맙게도 어머니가 사 줬어.” “그럼 당장 내 메일주소 등록할게. 어디 보자 빅프렌드 나가츠카, 연락처 셋. 너도 참, 친구 진짜 없다.” (5쪽)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당시의 니시미야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사하라가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그런 것도 몰랐던 주제에,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주제에, 나는 니시미야를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고 단정지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나 자신을 쥐어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 셋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한 번 읽고 다시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생채기가 있습니다. 이 생채기는 어버이나 교사(초등학교 교사)가 남겼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동무나 이웃이 남겼다고도 할 수 있고, 아이들 스스로 남겼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채기가 새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다들 잘 모릅니다. 서로서로 제 생채기를 감추려고 할 뿐이기에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서로 생채기를 안 건드리려 하고, 서로 생채기를 다시 들여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묻어 두려고 합니다.


  생채기는 묻힐 수 있을까요? 생채기는 감출 수 있을까요? 내가 못 본 척한다고 해서 없어질까요? 내가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생채기가 사라질까요?



“오늘은 고마워. 이시다가 사하라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 정말 기뻤어. 실은 오늘 동생한테 더 기쁜 이야기를 들었어. 동생이 가출했을 때 도와줬다는 것. 동생이랑 같이 나를 찾아 줬다는 것.” (23쪽)


‘만약 중학교에서도 니시미야가 있었다면 사하라는 매일 보건실이 아닌 교실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빼앗은 것은 나다. 나는 내가 니시미야에게서 빼앗은 수많은 것들을 돌려줘야 한다. 두 사람의 미소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44쪽)



  만화책은 만화책입니다만, 우리 삶에서도 비슷한 일은 으레 일어납니다. 뜻하지 않게 동무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고, 뜻하지 않게 내 마음에 생채기를 입습니다. 동무한테 생채기를 입힌 일이 언제까지고 마음에서 잊을 수 없어서 괴롭습니다. 동무한테서 입은 생채기가 언제까지고 마음에서 떨칠 수 없어서 괴롭습니다.


  이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잊히지 않아도 잊으려고 더 애쓰면 될까요. 잊히지 않으니까 내 지나온 발자국은 아예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면서 살면 될까요. 내 어린 날은 없다고, 내 지난 열 해나 스무 해는 아예 없다고, 내 어린 날 만나거나 알던 동무나 이웃은 아예 이 지구별에 없다고, 이렇게 없다는 생각만 심으려 하면 될까요.



“나? 난 없는데? 만나고 싶은 애. 난 딱히, 초등학교 때 애들. 나, 난 아무렴 어?때. 난 친구 같은 것 없었다니까.” (68∼69쪽)


‘과거를 끊어버리는 것. 그게 나한테는 해결이자 위안이야. 분명 앞으로도 그 자식들한테는 관심 갖지 않을 거야. 그래, 관심 없어. 그 자식들 얼굴까지 싹 다 잊어버리자. 관심 없어. 관심 없어.’ (77쪽)



  뒷그늘을 되새기는 일은 쉬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려울 수도 없습니다. 바로 내 두 발로 걸어온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해님이 들지 않아 그늘이 진 자리일 뿐, 내가 스스로 해님 같은 마음으로 거듭나서 내 걸음걸이를 되새길 수 있다면, 내가 빚은 뒷그늘은 더 뒷그늘로 남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비추어 줄 해님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스스로 비출 해님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비추어 줄 해님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마음속에서 끌어내어 스스로 비출 해님입니다.


  이제 앞으로 가야지요. 앞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딛어야지요.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해야지요. 오늘부터 내 삶을 새롭게 지으면서 날마다 기쁨을 노래해야지요.


  네 생채기도 내 생채기도 그저 ‘발자국’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걸어온 길입니다. 옛 발자국은 바꿀 수 없습니다만, 새로 걸어가는 발자국은 얼마든지 새롭게 가꿀 수 있어요. 이제껏 내 마음에 사랑도 꿈도 없어 아무렇게나 이 길을 걸어왔어도, 오늘부터 내 마음에 사랑과 꿈을 곱게 새겨서 씩씩하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뒷그늘만 생각하느라, 그러니까 ‘뒷그늘을 잊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느라, 내 앞길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맙니다. 앞으로 새 걸음을 내딛으면서 새 마음이 되고 새 삶이 되며 새 노래가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스스로 해님이 됩니다.



“난 너한테 사과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웬 니시미야? 네가 걔 보호자라도 돼? 난! 니시미야한테 용서받고 싶은 게 아냐! 너한테! 난 그냥 돌려놓고 싶었던 것뿐이야. 이시다랑 내 시간을, 니시미야 때문에 망가져버린 그 시간을!” (155쪽)


“우에노가 말이야, 우리보고 이런 얘기를 하더라. ‘억지로 어울려 주는 거야? 친구 흉내.’라고. 우리 관계, 친구 흉내 같은 게 아니지?” “나도 혹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나도 친구 흉내는 싫어. 그러니까 흉내란 얘기 안 듣도록 좀더 너에 대해 알고 싶어.” (165∼166쪽)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직 많이 어립니다. 너무 어린 탓에 저마다 제 뒷그늘을 똑똑히 마주하기가 힘듭니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굳이 뒷그늘을 다시 마주해야 하느냐 싶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옛 그늘에 사로잡힐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지나간 뒷그늘에 발목이 붙잡혀서 앞으로 한 걸음도 못 나아가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동무 괴롭히기’도 아니요, ‘동무 흉내’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동무가 되어 즐거운 삶’을 누려야 합니다.



‘나 역시 니시미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아니, 방금 전이 알 수 있는 기회였는데. 헤어스타일이라든지, 왜 수화가 아니라 말로 하려 했는지, 나한테 준 선물에 대해서라든지 이것저것 물어보면 좋았을걸. 겁이 나는 건가? 니시미야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176∼177쪽)



  때리는 사람은 맞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때리는 사람은 제 주먹이나 발길로 남을 때릴 뿐 아니라 제 몸까지 함께 때리는 줄 모릅니다. 동무나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은 동무나 이웃을 괴롭히는 겉몸짓뿐 아니라 바로 저 스스로 제 살을 깎아먹는 속몸짓까지 합니다. 언제나 바보짓이기 때문에 바보짓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스로 굴레를 지어서 굴레에서 허덕이기 때문에 이 바보짓 굴레를 알아보지 못하는데다가 빠져나오는 길을 모릅니다.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떠할까요? 가해자 노릇을 오랫동안 하다가 피해자 삶을 오랫동안 보내는 주인공 사내 아이(이시다)는 고등학생쯤 되고서야 그동안 스스로 어떤 바보짓을 했는가를 뒤늦게 깨닫습니다. 옛날을 돌이킬 수 없는 줄 아니까 옛날을 돌아보기 무서우면서 싫고, 그렇다고 새날로 씩씩하게 갈 만한 기운도 없습니다. 아주 어정쩡해요.


  그래도 이 아이는 손말(수화)을 스스로 배웠습니다. 바보짓 쳇바퀴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딱히 뭔가를 잘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어도,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수렁에 갇히기는 싫어서, 한 걸음을 겨우 내딛었어요. 그리고, 바로 이 한 걸음 때문에 스스로 기운을 차릴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바보짓이 아닌 사랑짓이 되도록, 이제야말로 얼간이 짓이 아닌 사랑둥이 짓이 되도록,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뒷그늘을 털려면 뒷그늘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뒷그늘에 따사로운 햇빛과 햇살과 햇볕을 스스로 드리울 수 있어야 합니다. 따스한 사랑을 어디에 드리워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해야 하고, 따스한 사랑을 드리우면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4348.10.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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