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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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3



시와 달밤

― 밤 미시령

 고형렬 글

 창비 펴냄, 2006.3.17. 7000원



  달빛이 내리는 밤에는 달빛을 듬뿍 받습니다. 달빛은 깜깜한 한밤을 고루 밝혀서 고샅길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한가위나 설에는 더없이 밝은 달빛이 들판을 푸근하게 어루만집니다.


  불빛이 가득한 밤에는 불빛이 눈부셔서 잠들기 어렵습니다. 불빛이 밝은 도시에서는 깊은 밤에도 오가는 자동차가 많고, 자동차가 내는 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으며,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도 그치지 않습니다.



사다리 같은 긴 목을 펼쳤다. 하늘가지에 노는 아기잎을 따 먹으려고, 앞발은 풀을 피해 가슴 밑 흙바닥에 사뿐히 눌러놓았다. 나뭇잎만 한 얼굴을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의 입은, 내 주먹만 하다. (동물원 플라타너스)



  고형렬 님이 빚은 시집 《밤 미시령》(창비,2006)을 읽습니다. 밤에 미시령을 넘는 이야기일 수 있고, 밤이 깊은 미시령을 바라보는 이야기일 수 있으며, 밤과 미시령을 함께 생각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또는 밤이나 미시령하고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어요. 그러면, 시인한테 밤과 미시령은 무엇이 될까요. 시인은 어인 일로 밤에 미시령을 생각할까요.



사람만이 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 가족과 함께 도처를 떠돌아다닌 프라이드는 / 제 최종 폐차통지서를 보내고 / 내 마음속에서 한 시절처럼 사라졌다 / 거대한 폐차장에서 / 그는 북한산 흰 구름처럼 북으로 사라졌다 (폐차통지서를 받고, 서울45라4706)



  옛날이라면 미시령을 자동차로 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자가용이 매우 흔하기 때문에 시인도 자가용을 몰며 미시령을 밤에 넘습니다. 밤이 아니어도 언제나 넘을 수 있는 미시령이요, 언덕길이며, 고갯길입니다. 숲길이나 멧길이 아니어도 어디이든 자가용으로 달릴 만하고, 이 나라에서 자동차로 못 가는 곳은 없다시피 합니다.


  문득 돌아봅니다. 참말 한국에는 자동차가 많습니다. 자동차가 많아도 아주 많아서, 뭍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도 흔합니다. 뭍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건너려고 놓는 다리가 아니라, 자동차가 뭍과 섬 사이를 싱싱 빠르게 달리도록 하려는 다리입니다.


  이리하여, 시인은 자가용 이야기를 시로 쓸 수 있습니다. 시인은 폐차로 떠나 보내는 자가용 이야기를 시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맞아들이는 자가용 이야기를 시로 그릴 수 있어요.



남들 다 보고 온 백두산 보러 2000년 / 옌뻰 가, 모자같이 생긴 산을 지나 // 윤동주 집으로 가다가 새빨간 깨꽃밭을 보았다 (모자산 꽃을 지나며)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누구나 시외버스를 타고 이 고장 저 고장을 찾아다녔습니다. 더 예전에는 누구나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이 고을 저 고을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하루아침에 서울하고 부산을 오가는 오늘날에는 이 빠른 찻길을 내달리면서 태어날 만한 시가 드물 텐데, 스무 날이나 달포나 여러 달에 걸쳐서 천천히 두 다리로 이 땅을 밟으며 나들이를 다니던 꽤 아스라한 지난날에는 바로 이 마실길에서 수많은 시와 노래와 이야기가 태어났습니다.


  꼭 자가용 때문은 아닙니다만, 자가용이 늘고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 늘면서 시를 쓰거나 읽는 사람이 부쩍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을 몰거나 자가용에 함께 탄 사람은 깊은 밤에 달빛을 느끼지 못해요. 자가용에서는 오직 앞만 바라보아야 하며, 앞 자동차 불빛을 살펴야 하고, 때때로 뒷 자동차 불빛까지 헤아려야 합니다. 한낮이라 하더라도 햇빛을 느낄 만큼 느긋한 운전수는 없습니다. 신호등을 살피고 다른 자동차를 헤아려야 합니다.



산돌을 밟으며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화산이었다는 것을 / 이 돌들이 심장을 단숨에 연소시킨 불이었다는 것을 / 나무들은 그럼 어디서 왔는가 나는 모르지 / 그것이 설악의 화두다 알 길 없는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돌)



  《밤 미시령》을 쓴 고형렬 시인은 하늘에 뜬 돌을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산을 오르면서 산돌을 밟기에 하늘에 뜬 돌을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아서 산돌을 밟지 못했다면, 자동차에서 내릴 엄두나 생각이나 마음이 없이 산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두 다리로 이 땅을 밟는 삶을 누리지 않았다면, 아마 시는 흐르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두 손으로 가꾸는 삶이 있기에 시를 씁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스스로 두 발로 걸어가는 삶이 있기에 시를 노래합니다.



풀잠을 자고 싶은 게지. / 나 지금 하고 싶은데. / 지금 할까? / 참았다가 모레 합시다. / 싫은데……. (벌레)



  시를 읽는 사람은 시외버스에서도 읽고, 전철에서도 읽습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베개맡에 시집을 눕혀 놓고도 읽고, 밥을 먹다가도 읽으며, 마당에 가만히 서서 가을볕을 쬐면서도 읽습니다.


  셈틀을 끄기에 시를 읽습니다. 신문을 덮기에 시를 읽습니다. 텔레비전을 집안에서 치우기에 시를 읽습니다. 두 다리로 걸으면서 지구라는 별을 느끼기에 시를 읽습니다. 훅 불어서 나뭇가지를 살살 건드리는 바람을 쐬기에 시를 읽습니다.



나도 그래 / 내 등뒤에 서울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 없어. 뻬이징 밖에는 농민이 살고 풀들이 살아 / 토오꾜오 밖에는 토오꾜오 만이 있고 파도가 있고 / 서울 뒤에는 북한산이 있다는 것이지. (버티컬 블라인드가 열릴 때)



  때때로 자동차를 멈출 수 있으면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자동차를 멈추어 시동을 끄고 창문을 내려서 가을바람을 한껏 들이마신다면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귀여겨듣는다면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를 읽을 적에 새로운 시가 마음속에서 샘솟습니다. 시를 읽고 시를 쓸 수 있으면 삶을 노래로 지으면서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한테 따스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 꾸러미를 풀어놓을 만합니다.


  환한 달빛은 구름까지 속살을 훤히 보여줍니다. 눈부신 달빛은 별더러 오늘은 고이 잠들라고 속삭입니다. 맑은 달빛은 시골집 처마를 지나 대청마루에까지 스며듭니다. 깊어 가는 가을에 무르익는 나락이 달빛을 받으며 더욱 노란 빛이 됩니다. 4348.9.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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