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6. ‘사진을 만들’면 재미없는 까닭
어떤 사진을 배우든, 또 어떤 사진을 찍든, 스스로 즐겁게 찍는 사진이라면 이 사진은 언제나 작품도 되고 예술도 되고 멋있기도 하다. 이와 달리,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진은 작품이 될 테지만, 작품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즐거울까? 예술로 빚으려고 하는 사진은 예술이 될 테지만, 예술을 빚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멋있게 꾸미려고 하는 사진은 멋있게 보일 테지만, 멋있게 꾸미려고 하는 사진은 얼마나 기쁠까?
꾸미느냐 안 꾸미느냐는 대수롭지 않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느냐 아니냐도 대수롭지 않다. 사진은 언제나 ‘찍는’다. 사진은 ‘만들’지 않는다. 사진은 사진기에 있는 단추를 눌러서 찰칵 소리가 나도록 하면서 ‘찍는’다. 사진은 어떤 모습을 억지로 쥐어짜내거나 비틀어서 이루지 않는다. 아무리 남다르거나 그럴듯하거나 볼 만하도록 만들어 본들, 만드는 사진은 늘 ‘만들기’가 될 뿐이다. 찍지 못하는 사진은 사진이 되지 못한다.
더 맛있게 하고 싶어서 조미료를 써서 맛을 내면 조미료 맛이 난다. 조미료 맛은 더 나은 맛도 아니고, 더 나쁜 맛도 아니다. 그저 조미료 맛이다. 사진찍기를 하지 않고 ‘사진 만들기’를 하려고 하면, 사진은 얼마든지 만들 테지만, 만들어 놓은 사진에서는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한다. 이야기가 흐르는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사진으로 찍기에, 비로소 이야기가 새롭게 태어난다.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 어떤 틀로 세워 놓은 모습을 만들어서 찍는다면, 이러한 ‘만들기 작품이나 예술’에는 ‘작가 주의주장’만 잔뜩 깃든다. 이리하여 ‘작가 주의주장’만 잔뜩 깃드는 ‘만들기 작품이나 예술’을 놓고 여러 비평가가 서양 이론이나 철학을 끌어들여서 누구도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항 비평이나 해설을 붙인다.
사진은 바로 오늘 여기에 있는 이야기이지만, 만들기 작품이나 예술은 ‘먼 나라 작품이나 예술’이 되고 만다. 바로 오늘 여기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읽어서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