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로 사는 즐거움 - 농부 폴 베델에게 행복한 삶을 묻다
폴 베델.카트린 에콜 브와벵 지음, 김영신 옮김 / 갈라파고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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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82



아이를 ‘숲사람’으로 키우는 기쁨

― 농부로 사는 즐거움

 폴 베델 이야기

 카트린 에콜 브와벵 정리

 김영신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4.9.11. 13500원



  구월이 깊으면서 시골 들녘은 한결 밝은 노란 빛깔로 물듭니다. 나락이 익기 때문입니다. 가을볕은 여름볕처럼 뜨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락은 구월 햇볕을 받으면서 알차게 익습니다. 새벽이슬을 마시고, 들바람을 들이켜며, 따사로운 햇볕을 듬뿍 받으면서 고개를 더욱 깊이 숙입니다.


  이즈음 시골에서는 농약을 치느라 부산합니다. ‘조금 젊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면 손수 줄을 이어 농약을 치고, ‘많이 늙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면 농협 헬리콥터를 빌려서 농약을 칩니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들판을 지나가면서 바라본다면 가을들이 더없이 예쁘면서 사랑스러워 보일 텐데, 마을에서 살며 들판을 바라보노라면 짙은 농약내음 때문에 창문조차 열 수 없습니다.



해시계를 보는 사람들은 계절의 리듬에 맞춰 살아갑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여야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쁜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환상입니다 … 옛날에 하루는 그냥 하루였습니다 … 바쁜 사람들 때문에 닭과 소들은 원하는 시간에 먹이를 먹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 동물들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일상을 살았습니다. (34쪽)


나는 밭에 일하러 갈 때 며칠간 바람의 방향을 살핀 후 갈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44쪽)




  프랑스 시골 농부 폴 베델 님이 입으로 들려준 이야기를 갈무리한 《농부로 사는 즐거움》(갈라파고스,2014)이라는 책은 참으로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사는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폴 베델 님은 글을 쓰지 않습니다. 다만 편지는 즐겁게 쓴다고 합니다. 그러나 책에 싣는 글은 쓰지 않습니다. 언제나 입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흙이랑 살아온 이야기를 이웃한테 들려주고, 흙을 사랑하면서 삶을 사랑한 이야기를 온누리 이웃한테 두루 들려주려고 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살다가 시골에서 ‘새로운 흙’으로 돌아갈 마음인 폴 베델 님은 이녁이 발을 디딘 땅에 농약을 한 방울조차 안 씁니다. 왜냐하면, 맨손으로 만지는 흙이요, 맨발로 밟는 흙이기 때문입니다. 읍내나 도시에 내다 팔아서 목돈을 쥐려고 하는 시골일이 아니라 이녁 삶을 가꾸려고 짓는 들일이기 때문에 흙을 망가뜨리거나 풀하고 나무하고 벌레하고 새를 모두 죽이는 농약을 칠 까닭이 없기도 합니다.



파도의 흐름은 바다뿐만 아니라 땅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젖소에서 갓 짜낸 우유 한 잔을 마시면 파도의 흐름이 땅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7쪽)


열 살이 될 때까지는 남자 어른들보다 여자 어른들과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거나 하루를 온전히 그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우유 짜는 법, 갈퀴질하는 법, 나무다발 묶는 법, 김매는 법 등을 모두 여자 어른들에게서 배웠죠. 청소년이 되면서 선생님의 자리는 고모에서 삼촌으로 옮겨갔습니다. (51쪽)



  프랑스 시골지기 폴 베델 님은 손목시계를 안 찹니다. 해를 보면 때를 안다고 합니다. 프랑스 시골지기 폴 베델 님은 텔레비전을 안 본다고 합니다. 바람을 읽으면 날씨를 안다고 합니다.


  《농부로 사는 즐거움》을 천천히 읽다가 천천히 덮습니다. 해를 읽거나 바람을 읽는 시골지기 삶은 ‘프랑스 시골지기’한테서만 엿볼 수 있지 않아요. ‘한겨레 시골지기’도 먼 옛날부터 누구나 하늘을 읽고 땅을 읽으며, 해와 별과 비와 바람을 모두 읽었어요. 흙을 만지며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흙을 손바닥에 얹고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보면서 흙기운이 어느 만큼 되는가를 헤아렸어요.


  폴 베델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여자 어른’한테서 여러 가지 살림살이와 손일을 배웁니다. 그리고 ‘남자 어른’한테서도 여러 가지 집일과 손일을 배워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울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칠까요? 학교에 보내는 일 말고, 우리 어른들이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는가요? 교과서와 학습지와 참고서를 아이한테 안기거나 사 주는 일 말고,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베푸는 가르침이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언덕의 이야기는 물건들 속에 담겨 있지요. (84쪽)


사람을 보호하듯, 나는 야채와 과일도 소중하게 보관합니다. 하지만 절대 과대포장을 해서 보관하지는 않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나쁜 바람과 습기를 피하며 생활해야 합니다. (95쪽)


나에게 농부라는 직업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내가 원할 때 잠을 자고 내가 원할 때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내가 원할 때 죽을 겁니다 … 자연은 새로운 생명에게 영양을 주고 보금자리를 제공합니다. 자연은 그렇게 순환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한결같지는 않습니다. 팔십 평생 지켜본 바, 자연은 반복되지만 그 모습은 똑같지 않습니다. (104, 290쪽)




  흙에 뿌리를 내려서 자란 풀과 나무를 베어서 마련하는 살림살이는 쓰레기가 안 됩니다. 풀과 나무로 빚은 살림살이는 오래되어 더 쓸 수 없을 적에는 땔감이 되어 활활 타오른 뒤 조용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공장에서 석유를 써서 뽑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은 쓰레기가 됩니다. 조금 망가지거나 깨지거나 부서지면 곧바로 쓰레기가 됩니다. 플라스틱으로 찍은 것은 오래되지 않아도 쓰레기가 되고, 오래되어도 쓰레기가 됩니다. 수많은 비닐봉지는 언제나 쓰레기이고, 공장 물건을 감싸는 포장재도 모두 쓰레기가 되어요. 이른바 도시 문화와 문명은 온통 쓰레기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땅을 아끼면서 돌본다면, 풀과 나무를 모두 아끼면서 돌보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흙을 가꾸면서 보듬는다면, 집과 마을이 아름다운 삶터가 되도록 가꾸면서 보듬기 마련입니다.


  시골 농사꾼도 밥을 먹고 도시 대통령도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시골 농사꾼만 흙을 일구고, 도시 대통령은 흙을 하나도 모릅니다. 의사와 기자와 국회의원과 시장과 대학교수도도 흙을 하나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교사와 유치원 교사도 흙을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공장 노동자와 버스 기사와 백화점 일꾼까지 흙을 하나도 몰라요. 그러나 우리는 모두 밥을 먹어요.



꽃들을 없애버리면 생물학적으로 땅이 죽어버립니다. 그 증거로 요즘 농지에는 야생화가 피질 않지요 … 지렁이나 두더지 같은 동물들은 땅을 갈아 숨을 쉬게 합니다. 3년 묵은 내 두엄처럼 야생화의 풀들은 나쁜 풀들을 덮어 말라죽게 합니다. 만약 야생화와 풀들을 없애버리면 땅은 죽을 겁니다. 더 이상 살아 있지 못하겠지요. 마구 다룬 땅은 단단해지고, 너무 많이 이어짓기를 하거나 땅을 너무 깊게 파면 땅이 오그라들어 더 이상 물이 스며들지 않습니다. (119쪽)


간혹 반듯반듯한 현대적인 농경지를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멀리서부터 살충제 냄새가 코끝을 찌릅니다. 흙을 집어 코끝에 갖다 대면 흙에서 악취가 나죠 … 우리는 우리 땅과 마을에서 쓰던 사투리를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 땅과 우리 삶이 단절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투리를 되찾는 것은 ‘금문교’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126, 308쪽)




  풀밭이 없으면 들꽃이 피지 않습니다. 들꽃이 피지 않으면 벌이나 벌레나 나비가 살지 못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셔요. 들꽃이 없는데 벌은 어디에서 꽃가루를 모아서 ‘꿀’을 빚을 수 있을까요? 설탕을 먹여서 빚는 꿀이면 될까요? 벌이 들꽃에서 모은 꽃가루가 아니라, 설탕으로 쟁여서 만드는 꿀이 되어도, 이러한 꿀을 꿀이라고 할 만할까요?


  감자와 고구마조차 비닐집에서 키워서 때도 철도 없이 아무 때나 먹어도 될는지요? 한겨울에 비닐집에서 석유로 난로를 때서 키우는 딸기를 아직 봄도 안 된 철에 먹어야 맛있을는지요?


  우리는 무슨 짓을 하는 셈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포도를 먹는가요, 아니면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를 먹는가요? 햇볕과 비와 바람과 흙이 베푸는 기운으로 자란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포도가 아니라, 비료랑 농약이랑 항생제로 자란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포도를 먹으면 우리 몸에 무슨 이바지를 할까요?


  빗물이 아닌 수돗물을 마시며 자라는 벼를 쌀로 깎아서 지어 먹는 밥이 우리 몸을 살찌울 수 있을까요? 빗물도 못 마시고 햇볕도 못 쬐며 바람 한 줄기조차 모르는 채 비닐집에서 아무 때나 척척 나오는 애호박이나 상추나 오이나 가지나 토마토를 먹는 몸은 얼마나 튼튼하거나 씩씩할 수 있을까요?



농촌 사람들은 밭에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 요즘 젊은 농부들은 여유도 없고 자유도 없습니다. 온갖 서류와 장려금에 얽매여 있습니다. (155, 303쪽)


장담하건대 땅은, 대지는 어린이들에 의해 꾸준히 보전될 것입니다. (165쪽)



  아이들은 맨발로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을 밟으며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풀밭에서 뒹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나무를 타며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쇠붙이와 플라스틱과 합성수지를 써서 만든 놀이터에 아이들을 내몰기만 합니다. 어른들은 골목을 아이들한테 빼앗고는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 놀이시설’에 아이들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빽빽 소리만 지리도록 시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연날리기는 할 줄 모르지만 학원을 다닐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팽이를 깎을 줄 모르지만 학교를 다닐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빗물을 혀로 받아서 마실 줄 모르지만 손전화를 다룰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풀벌레 노랫소리를 귀여겨들을 줄 모르지만 대중노래와 광고노래를 똑같이 따라할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구름을 올려다볼 줄 모르지만 찻길을 가득 메운 자동차를 가려낼 줄 압니다.



자동덧문을 산다고 해서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요? 편리함은 보장할 수 있겠지만 행복까지 보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182쪽)


풀도 꽃도 먹지 않는 가축이 싸는 똥과 오줌에서는 더 이상 자연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197쪽)


시골에 살면 알러지라는 것은 전혀 생기질 않아. 오히려 각종 면역력이 생기지. (206쪽)




  어른들은 무슨 일을 하느라 바쁠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들 스스로 삶이 즐거운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을 ‘학습지 인생’과 ‘학원 인생’으로 길들여서 ‘대입수험생 인생’으로 내모는 어른들은 아이를 낳아 돌보는 보람을 얼마나 누릴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내 집 장만’이 아니라 ‘마당하고 텃밭이 있는 우리 집 장만’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차 장만’이 아니라 ‘아이도 어른도 맨발로 마음껏 뛰고 달리면서 놀거나 일할 수 있는 숲 장만’부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파트가 없어도 죽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없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논밭이 없으면 죽기 마련이고, 숲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논밭이 있더라도 숲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숲이 있어야 나무를 얻고, 나무를 얻어야 집을 짓고 땔감을 얻으며, 숲에서 나무가 자라야 비로소 한 해 내내 싱그러운 바람을 마실 수 있습니다.



공장이 들어선 곳은 앞으로 사람이 먹는 음식을 경작할 수 없는 땅이 될 것입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 이 세상에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땅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방사능을 비롯한 각종 오염 없는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234, 236쪽)


가치가 있건 없건 상관이 없습니다. 장소가 그 가치를 높여 주는 것입니다 … 우리 조상들에게 하늘은 닿을 수 없이 높고 푸르렀으며, 우리 아름다운 자연은 전쟁의 아픔도, 상처도 잊게 할 만큼 아주 아름다웠던 게지요. (255, 270쪽)



  아이는 ‘숲사람’으로 자라야 아름답습니다. 어른은 ‘숲사람’으로 슬기롭게 살림을 가꾸어야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어른한테서 숲사람 슬기를 사랑으로 물려받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버이와 어른은 아이한테 숲사람다운 살림살이를 곱게 물려줄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숲을 이룬 집과 논밭’을 물려주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아이는 어버이가 물려준 ‘숲을 이룬 집과 논밭’을 물려받으면서 한결 기름지고 푸르게 돌보았습니다.


  어버이와 아이가 ‘숲을 이룬 집과 논밭’을 물려주고 물려받던 수십만 해에 이르는 사람 역사에서는 전쟁이나 싸움은 끼어들지 않았어요. 권력자가 나타나고 정치기가 불거지며 문화와 전문가와 사회와 경제 따위가 생기면서 ‘숲을 이룬 집과 논밭’을 망가뜨리거나 흔드는 무리가 커졌고 전쟁과 싸움도 터집니다.


  프랑스 시골지기 폴 베델 님은 《농부로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프랑스 어린이하고 젊은이한테 꿈과 사랑을 물려주고자 합니다. 이 나라 시골지기는 이 나라 어린이하고 젊은이한테 무엇을 물려줄 만할까요. 이 나라 지식인과 전문가는 이 나라 어린이하고 젊은이한테 무엇을 물려줄 생각일까요. 이 나라 모든 어른과 어버이는 이 나라 어린이하고 젊은이한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4348.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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