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는 신났다 섬집문고 10
윤이현 지음, 안예리 그림 / 섬아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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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5



할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는 노래

― 야옹이는 신났다

 윤이현 글

 안예리 그림

 섬아이 펴냄, 2010.4.25. 8000원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섬돌에 앉아서 잡니다. 이 아이는 그리 잰 몸놀림이 아니라서, 마루문을 열고 슥 내려서다가 밟힐 적이 있습니다. 아마 깊이 잠든 탓일 테지요. 우리 집 섬돌이 그냥 돌바닥이면 여기에서 안 잘 테지만, 맨발로 돌바닥을 밟으면 차가울 테니 깔개가 있습니다. 마을고양이는 바로 이 깔개에 앉아서 잡니다. 이 깔개에 앉으면 차츰 몸이 따뜻해질 테니까요.


  아이들이 마루에서 놀 적에도 마을고양이가 슬금슬금 나타나서 섬돌에 앉습니다. 아이들은 고양이가 섬돌에 앉은 줄 쳐다보지 않고 놀다가, 어느 때에 문득 고양이를 알아봅니다. “어, 고양이다, 까맣고 하얀 고양이가 왔어!” 하고 외칩니다. 이제 고양이는 이 외침말에 놀라서 어기적거리며 일어납니다. 놀라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습니다. 아주 천천히 움직여서 옆으로 가는데, 마을고양이가 옆으로 가는 자리는 자전거 밑입니다.



예쁜 아가 / 선잠 깰깨 봐 / 조심조심하는 엄마 손길처럼 / 봄비는 / 파릇파릇 새싹 위에 / 소리도 없이 내립니다. (봄비는 지금)



  윤이현 님 동시집 《야옹이는 신났다》(섬아이,2010)를 읽습니다. 어머니가 아이한테 속삭이듯이 차분하고, 할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며 빙긋빙긋 웃듯이 조용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들뜨지 않는 동시이고, 놀래키지 않는 동시입니다. 요즈음 숱한 동시가 들뜨거나 놀래키려는 이야기를 억지로 짓는 모습인데, 요즈음 동시 흐름하고는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숱한 동시는 ‘아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면서 학원이나 학교를 살짝 비판하면서 치맛바람 어머니도 살그마니 비판하는 얼거리이기 일쑤입니다. 요즈음 떠도는 숱한 동시에서 ‘아이한테 삶을 차분하게 들려주려는 목소리’를 읽기는 어렵습니다. ‘생활동시’라고 하면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며 입시공부 때문에 고단한 모습을 그려야만 하는 줄 여기기 일쑤입니다. 아이하고 삶을 나누거나 물려주려는 이야기를 담는 생활동시는 드물고, ‘학교생활 동시’만 떠돈다고 할까요.



아기도 꽃밭에선 / 꽃이 됩니다. (아기와 꽃)



  어느 모로 본다면, 봄비를 노래하고 아기를 노래하며 꽃을 노래하는 동시는 요즈음 흐름하고 너무 달라서 ‘낡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아기는 봄비가 새롭습니다. 아기는 꽃밭이 즐겁습니다. 아기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언제나 처음인 듯 새롭게 맞이합니다. 아기한테는 꽃도 나무도 풀도 벌레도 모두 반가운 동무입니다.


  학교생활과 입시공부를 가볍게 나무라는 동시는 ‘언제까지 새로운’ 동시가 될까요? 지옥 같은 대학입시 얼거리를 그대로 둔 채 아이들이 모두 이 수렁에 빠지도록 내몰면서 학교생활과 입시공부를 가볍게 나무라기만 한대서 무엇이 바뀌거나 나아질 수 있을까요?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에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아이는 오롯이 아이이기 때문에 사랑스럽습니다. 아이가 책가방을 맨 모습이 대견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씩씩하게 놀다가 넘어져도 울지 않고 일어나서 새롭게 놀기에 대견합니다.



살짝꿍 뒤로 와서 / 누구게? // 으음, 이슬이. / 맞지? (내 짝이니까)



  어버이한테서 삶을 배우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는 어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어버이하고 함께 놀면서 웃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놀면서 기쁘게 일하는 어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어른인 우리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아이를 기쁘게 해 주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웃고 놀며 이야기를 나눌 적에 아이들이 기쁩니다.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랑 더 오래 살을 맞대면서 오순도순 지낼 적에 기쁩니다. 더 많은 학원에 다니거나 학교에 더 오래 붙들려야 기쁘지 않습니다.



오늘 / 방긋 웃고 있는 / 네 사진을 찾아 / 책상 앞에 붙였다. (네 사진)



  아이들한테 동무라면 ‘놀이동무’입니다. 아이들은 더 많은 학교동무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이 맞는 놀이동무가 있으면 됩니다. 놀이동무가 다문 하나라 하더라도, 두 아이는 서로 사이좋은 짝꿍이 되어 지냅니다.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똑같아요. 아이들은 더 많은 동무를 사귀기에 즐겁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이 맞는 동무가 한 아이라도 있을 때에 비로소 즐겁습니다.


  그러니 어른이라면 이 같은 삶자락을 가만히 읽어야 합니다. 아이가 마음껏 뛰놀면서 자랄 만한 터전을 헤아려야 합니다. 아이가 기쁘게 뛰놀며 씩씩하게 자랄 보금자리를 살펴야 합니다. 아이가 웃고 노래하면서 튼튼하게 지낼 마을살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누가 / 바람을 보았니? (바람)



  동시집 《야옹이는 신났다》에 흐르는 차분한 이야기를 하나씩 읽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을 보고, 들길을 걸으면서 바람을 봅니다. 바닷가에 서서 바람을 읽고, 숲길에 접어들어 바람을 읽습니다. 너와 내가 같은 바람을 쐽니다. 너도 나도 이 바람을 함께 마주합니다.


  나비가 춤추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나비춤을 따라합니다. 벌이 윙윙거리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벌처럼 날면서 와락 덮칩니다. 개미 한 마리가 기는 모습을 살펴보다가 다른 개미를 보고, 또 다른 개미를 보며, 이윽고 수많은 개미떼를 보면서 하루가 흐르는 줄 까맣게 잊습니다.



할아버진 / 당신 잡수시던 과일을 / 손자들 입에 먼저 넣어 주신다. (병실에서)



  〈병실에서〉라는 동시는 윤이현 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일까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모든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아이를 바라보면서 배고프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며 배부르고, 아이가 노래하는 몸짓을 보며 넉넉합니다.


  다만, 〈병실에서〉라는 동시에서 “할아버진 / 당신 잡수시던 과일을”보다는 “할아버진 / 할아버지가 잡수시던 과일을”처럼 열고 “손자들 입에 먼저 넣어 주신다”보다는 “우리 입에 먼저 넣어 주신다”처럼 닫는다면 한결 동시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하늘이 참 곱습니다. // 볼볼볼볼 개미 한 마리 / 풀씨 하나까지 톡톡 여물도록 (저녁노을)



  바람이 고요히 붑니다. 올여름에는 큰바람 없이 아주 조용합니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로 접어드는 새벽에 우리 집 작은아이는 조용히 일어나서 마루에 앉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아직 바깥이 깜깜하지만 잠이 달아났으니 일어납니다. 방에 초 한 자루를 켭니다. 네 누나는 새근새근 깊이 자니 불을 켤 수 없지. 이 촛불에 기대어 고즈넉한 새벽바람을 쐬렴.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놀면서 하늘숨을 마시자. 4348.9.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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