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3. 콘트라스트



  《사진의 맛》이라는 책을 읽었다. 영화 ‘녹차의 맛’처럼 일본 말투로 지은 이름이다. ‘동사의 맛’이라는 이름을 쓴 한국말 이야기책도 있다. 이는 모두 “무엇の味”와 같은 일본 말투를 무늬만 한글로 고친 꼴이다. 일본 말투로 글을 쓰든 영어로 글을 쓰든 대수로울 일은 없다만, 한국말이 아닌 얼거리로 글을 쓴다면, 이러한 글에 어떤 넋을 담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돌아보아야지 싶다.


  《사진의 맛》이라는 책을 읽으면, 온갖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지 않았다. 이를테면, ‘하이키 톤’나 ‘미들 톤’이나 ‘로우키 톤’ 같은 말을 왜 굳이 영어 그대로 써야 할까? 이만 한 말조차 한국말로 한국사람한테 이야기해 줄 수 없을까? 이런 말을 할 줄 알아야 사진을 아는 셈인가? 이런 말을 못 알아들으면 아마추어인가? 사진강의에서는 이런 말을 배워야 하나?


  우리는 서로 사진을 가르치고 배울 뿐, 영어나 외국말이나 전문용어를 가르치거나 배울 까닭이 없다.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한테는 이 말도 저 말도 똑같이 낯설 테니, 한국말로 하든 영어로 하든 똑같을는지 모르나, 프로 작가이든 아마추어 작가이든 ‘기계를 잘 못 다뤄서 사진을 못 찍는다’는 얘기나 ‘말을 못 알아들어서 사진을 못 찍는다’는 얘기가 나와서는 안 된다.


  ‘콘트라스트’란 뭔가? 아직도 이런 낡은(영어가 낡았다는 뜻이 아니다) 말을 써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초등학생한테 이런 말을 쓰면서 사진을 가르칠 생각인가? 청소년한테 이런 말을 써서 사진을 가르칠 생각인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써서 사진을 가르칠 수 있는가?


  이런저런 굴레와 같은 말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작가이든 비평가이든 교수이든 강사이든 전문가이든, 스스로 굴레에 갇힌 채 사진을 마주할 뿐이다.


  빛을 밝게 다룰 수 있고, 어둠을 밝게 다룰 수 있다. 빛을 어둡게 다룰 수 있고, 어둠을 어둡게 다룰 수 있다. 사진은, 사진기라는 기계를 빌어 “빛에 깃든 숨결(빛결)”을 새롭게 바라본다. “빛에 서리는 무늬(빛무늬)”를 보아야 한다. 4348.9.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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