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W. E. 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 삼천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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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4



‘검은땅’에는 어떤 사람이 살았을까?

― 니그로,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W.E.B.듀보이스 글

 황혜성 옮김

 삼천리 펴냄, 2013.8.29.



  ‘-둥이’라는 말은 ‘귀염둥이’나 ‘막내둥이’처럼 씁니다. 때로는 ‘바람둥이’나 ‘쌍둥이’처럼 쓰고, ‘사랑둥이’라든지 ‘예쁜둥이’처럼 쓰기도 합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둥이’라 하고,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둥이’라 하며, 책을 좋아해서 ‘책둥이’라 합니다.


  살갗이 하얗기에 ‘하얀둥이’나 ‘흰둥이’가 되는데, 살갗이 검다면 ‘까만둥이’나 ‘검둥이’나 ‘깜둥이’가 되어요.


  여러 ‘둥이’를 헤아리면 알 수 있듯이, ‘둥이’라는 이름은 아무 곳에나 붙이지 않습니다. 꽃둥이·노래둥이·자전거둥이·잠둥이·밥둥이처럼 쓰기도 하는 둥이는 귀여운 모습이거나 사랑스러운 몸짓인 사람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쓴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을 구분하는 고정된 인종 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인종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변화하는 개념이며, 모름지기 인종이란 섞이거나 분화하면서 늘 변화하고 발달한다. (16쪽)


아득히 먼 옛날에 세 가지 유형의 니그로가 출현했다. 즉 피부색이 밝고 키가 작은 원시 니그로, 몸집이 크고 숲속에 사는 중앙과 서쪽 해안 지대의 니그로, 그리고 동부 수단의 키 크고 검은 닐로트 니그로가 등장했다. (25쪽)



  인문책 《니그로,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삼천리,2013)를 읽습니다. 이 책은 1915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모두 열두 가지 꼭지로 나누어서 ‘니그로’ 또는 ‘흑인’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아프리카 역사와 흑인 문화와 문명과 종교 전쟁과 인종 전쟁과 노예무역과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와 미국 남북전쟁 이야기까지 두루 다룹니다. 기나긴 역사와 문화와 얽혀서 삶과 죽임이 갈려야 했던 ‘살갗 검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어느덧 백 해가 묵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negro’는 영어입니다. ‘黑人’은 한자말입니다. ‘검둥이·깜둥이’는 한국말입니다. 그저 다른 말입니다. 나라가 달라서 달리 쓰는 말일 뿐입니다. ‘검둥이’도 ‘흰둥이’도 어떤 겨레를 깔보거나 낮잡거나 깎아내리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눈으로 바라본’ 그대로 가리키는 말일 뿐입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시골사람’이고 ‘시골내기’입니다. ‘시골사람·시골내기’가 어떤 사람들을 갂아내리거나 낮잡는 말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서울사람·서울내기’도 그렇지요. 다만, 오늘날 사회에서 아무래도 ‘검둥이’가 낮잡는 말처럼 퍼졌다면 ‘검은이’나 ‘검은사람’처럼 쓸 수 있어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 ‘검다’는 낮잡는 말이라고 멀리하면서 ‘黑’이라는 한자여야 높이거나 여느 말이라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노예무역은 인간을 사고팔 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조직화된 부정 거래를 부추기고, 이와 더불어 거의 모든 다른 상업 활동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를 모두 바꾸어 버린다. 이렇게 해서 파생되는 부산물들은 전쟁에 대한 가장 잔혹한 열정을 부추긴다. (66쪽)


라이베리아 독립이 선포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라이베리아의 영토와 주권을 제한하기 위해 이런저런 공격을 시작했다. 라이베리아는 조약으로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 남은 지역의 발전을 위해 자본을 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40만 달러의 빚을 졌다. (69쪽)



  어떤 이름을 쓰느냐가 안 대수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니그로’나 ‘흑인’이라는 이름을 써서 가리킨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 서로 아끼려고 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겉치레나 껍데기입니다. 어떤 이름을 쓰든, 마음으로 서로 아끼면서 보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따스함이 우러나오는 말을 쓸 줄 알아야 하며, 사랑이 피어나는 말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흰사람’은 ‘검은사람’을 사로잡거나 죽이면서 종(노예)으로 팔아넘기는 짓을 했을까요? 왜 ‘검은사람’은 같은 ‘검은사람’끼리 서로 사로잡거나 죽이면서 다른 검은사람이나 흰사람한테 종으로 내다팔려고 했을까요?


  안타깝게도 ‘검은땅’에는 평화나 사랑보다 전쟁과 미움이 흘렀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면서 아끼려는 꿈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 종교만이 참되다고 여기는 바보스러운 몸짓에 사로잡혔습니다. 권력자는 더 큰 권력을 바라면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갈 생각만 키웠습니다. 작은 마을을 이루는 작은 사람을 아끼는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행정이 자라지 않고, 그저 군대와 전쟁무기를 키워서 ‘사람을 물건이나 돈처럼 다루는 노예무역’이 불거지고 말았습니다.



이들 부시먼은 남아프리카에 자신들에 앞서 고대 인종이 살았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마술적 힘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 이주가 계속 이어지고 남아프리카가 정복되면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부족이 부시먼족이었다. 그들은 방어를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여자와 아이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남자들도 들짐승처럼 사냥당했다. 야만인과 문명인 모두가 그들의 땅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92쪽)



  우리는 흔히 ‘검은땅’ 사람들만 ‘검은사람’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도 예전에는 ‘살갗이 까무잡잡’했습니다. 한겨레나 아시아 여러 겨레를 ‘황인종(누런사람)’으로 가르지만, 고작 1900년대 언저리 한겨레도 ‘살갗이 검다’고 할 만큼 까무잡잡했어요. 검은땅 사람들처럼 새까맣지는 않았어도 무척 까맣게 그은 겨레였어요.


  왜 한겨레는 ‘까맣게 그은 살갗’이었을까요? 하루 내내 들에서 일하며 지냈으니 까맣게 그은 살갗입니다. 요새야 챙 넓은 모자에 긴 소매에 수건까지 두르지만, 옛사람은 이렇게 할 겨를이 없습니다. 요새는 들일을 어느 만큼 하더라도 집에서 하는 일도 많습니다. 지난날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떨어지고 나서까지도 마당이나 들이나 밭이나 숲을 다니면서 일하거나 지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바깥에서 하루 내내 햇볕을 쬐며 일하거나 놀았어요.


  한국이나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흰사람’ 가운데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들일을 하던 사람은 ‘흰 살갗’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내내 햇볕을 쬐면서 일하고 지내는 ‘유럽이나 북미 시골사람’도 까무잡잡하게 햇볕에 그은 살갗이에요.


  그러니까, 들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흰 살갗’입니다. 희다기보다는 파리한 살갗입니다. 아파 보이는 살갗이에요. 손수 흙을 일구지 않던 이들이기에 희거나 파리해 보이는 살갗입니다.



우리는 피부색에 대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원인을 신체나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을 현대 니그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에서 찾아야 한다. (141쪽)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는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뿐 아니라 개종하지 않은 니그로에 대한 이슬람의 앙심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결국 현대의 위대한 두 종교가 이교도 흑인을 노예화하는 정책에 적어도 동의한 것이 분명하다. (145쪽)


노예무역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시작했지만, 네덜란드인에 의해 확장되었고, 영국인에 의해 절정에 달했다 … 노예 한 명이 무사히 수입되었다고 한다면 그 이면에는 아프리카 또는 거친 바다에서 사망한 평균 5명의 노예가 있었을 것이다. (153, 155쪽)



  인문책 《니그로》를 곰곰이 읽습니다. 아름다운 평화나 사랑 이야기는 흐르지 못하고, 슬프고 끔찍하며 아픈 이야기만 내내 흐르는 책을 찬찬히 읽습니다. 아무래도 ‘책에 적힌 기록’은 슬픈 이야기만 가득하리라 봅니다. 권력자가 ‘검은땅 시골사람’을 전쟁무기를 앞세워서 죽이거나 괴롭히면서 종으로 부리려고 했던 발자국을 살필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종으로 붙들리지 않은 검은땅 시골사람을 만난다면, 검은땅 골골샅샅을 누비면서 ‘전쟁이 아닌 평화’로 삶을 지은 검은사람을 만난다면, ‘전쟁무기 아닌 흙 연장’으로 살림을 가꾼 검은사람을 만난다면, 아주 다른 이야기가 흐를 수 있겠지요. 권력자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마을사람이 아니라, 서로 아끼고 돕는 품앗이와 두레로 사랑을 키우는 마을사람 이야기를 헤아린다면, 《니그로》라고 하는 책은 사뭇 다른 길을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겨레가 걸어온 길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남녘과 북녘으로 갈려서 수백만 사람이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아프게 생채기를 입었습니다만, 이렇게 싸워야 하면서도 서로 돕고 보살핀 이웃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저 싸움박질만 하면서 제 밥그릇만 챙기려 했다면, 한겨레는 일찌감치 싸그리 사라졌겠지요. 그야말로 콩 한 톨을 나누고, 쪽잠이라도 함께 자면서, 따스한 마음으로 서로 아끼는 수수한 이웃으로 어깨동무한 사람이 훨씬 많기에 한겨레 역사와 문화는 고이 흐를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이 전쟁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전쟁이 아니었다. 노예와 경쟁하는 자유 백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노예제도를 남부에 한정시킴으로써 백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쪽)


187000명의 니그로가 북군에 입대했다. 그들 가운데 7만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202쪽)



  검은땅에는 검은사람이 살았습니다. 오늘도 검은땅에는 검은사람이 삽니다. 그러나, 검은땅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곳은 흰사람이 차지하면서 아주 오래도록 인종차별을 일삼았습니다.


  흰사람이 검은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일삼았는데, 권력을 쥔 검은사람은 권력이 없는 검은사람을 똑같이 따돌리거나 괴롭혔습니다. 살빛은 같더라도 마음이 달랐다고 할까요.


  우리가 눈을 감고 마주한다면 살빛을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만난다면 살빛뿐 아니라 나이도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사귄다면 살빛에다가 나이에다가 돈이나 몸매나 가방끈이나 그 어느 것으로도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함께 살려고 하면, 그야말로 오직 사랑으로 함께 삽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겉모습’입니다.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 사람이나 삶을 이루는 바탕이 아닙니다. 겉모습이 보기 좋대서 아무 버섯이나 먹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보기 예쁘대서 모든 밥이 맛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들볶거나 짓밟으려 한다면, 이 한 사람한테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함께 사는 길을 배우지 못한 탓에 다른 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들볶거나 짓밟지요.



백인 선교사 집단은 아프리카에서 1년에 500만 달러나 되는 돈을 소비하며 꽤 좋은 일을 성취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백인 상인들은 해마다 적어도 2천만 달러에 이르는 유럽 술을 아프리카로 보내고, 거의 제한이 없는 럼주 밀매로 인해 방탕과 유흥이 선교사들의 노력을 상쇄할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238∼239쪽)



  우리 지구별에는 오직 사랑이 흘러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도 오직 사랑이 흘러야 합니다. 백 해 즈음 묵은 《니그로》라는 인문책을 애써 한국말로 옮겨서 펴낸 뜻이라면,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뜻이라면, 아프고 다치며 슬픈 넋을 되새기면서 이 지구별과 한국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가를 돌아보도록 이끌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다 함께 햇볕을 쬐면서 까무잡잡하게 튼튼한 몸이 되는 길을 슬기롭게 찾을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어른과 아이 모두 햇볕을 기쁘게 쬐면서 싱그럽고 맑은 까무잡잡한 살갗이 되어서 신나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빕니다. 까만 흙이 좋은 흙이듯이, 햇볕에 그은 까만 살갗인 이웃은 아름다운 벗님입니다. 4348.8.3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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