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얻어서 쓰는 고마움



  사진 한 장을 고맙게 얻는다. 얼마 앞서 나온 청소년 인문책을 누리신문에 소개하려고 느낌글을 썼고, 출판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 책에 실린 사진을 얻어서 쓸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책에 실리는 사진은 출판사에서 사진 저작권한테 사용료를 내고서 싣는다. 그러니 이 사진을 누리신문 기사에 쓰려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서 여쭈어야 한다. 출판사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전화를 걸어서 ‘허락 여부’를 살폈고, 한 시간 남짓 기다린 끝에 누리신문에 실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이리하여, 오늘 저녁에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10대와 통하는 민주화운동가 이야기》 소개글을 기사로 띄우면서 사진 넉 장을 붙인다. 기사는 이튿날에 올라가리라 본다.


  시민기자로서 글 한 꼭지를 써서 책 이야기를 널리 나눌 수 있어 고마운데, 책 한 권을 알리는 글을 쓰면서 눈물 어린 사진을 얻어서 함께 쓸 수 있으니 더없이 고마우면서 애틋하다.


  1987년에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1988년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무렵 사회 흐르는 물결을 학교나 집이나 마을에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하나도 몰랐고, 그저 최루탄 냄새 때문에 언제나 고달팠다는 생각만 있다. 국민학생으로서 집회 현장을 반드시 지나가야 할 적에는 아주 무서웠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 심부름을 가는 길에, 동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인천 싸리재를 넘을 적마다 대학생하고 전투경찰이 서로 100미터쯤 떨어진 채 으르렁거리는 한복판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했다. 그 길이 아니면 아무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버스는 하나도 못 지나가고 찻길 한복판에 짱돌이 잔뜩 구르는 곳을 침을 꿀꺽 삼키면서 지나가는데, 아무도 나를 붙잡거나 말리지 않았다. ‘국민학생 모자’를 쓴 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지나가니까 아마 시위 대학생도 전투경찰도 ‘저 아이가 여기를 지나가서 집에 가도록 지켜보고 나서 한판 붙자’ 같은 ‘말 없는 다짐’이라도 했을는지 모른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붙인 사진 넉 장 가운데 ‘이한열 님’하고 얽힌 사진을 바라보면서 서른 해 즈음 앞서 겪은 일이 환하게 떠오른다. 부디 한국 사회에 참다운 민주 바람이 불기를 꿈꾸면서. 4348.8.2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보내 준 사진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8-20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