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호스
딕 킹 스미스 지음, 김서정 옮김, 데이비드 파킨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09



그대는 ‘괴물’인가, ‘바다이웃’인가?

― 워터 호스

 딕 킹 스미스 글

 데이비드 파킨스 그림

 김서정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3.11.30. 8000원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가 우리 집 마당에서 놉니다.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에서 볼볼볼 기면서 후박잎을 갉는 애벌레는 사각사각 소리를 제법 크게 내면서 통통하게 살이 찝니다. 애벌레가 바삐 잎사귀를 갉아먹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꽤 빠르게 잎사귀가 사라집니다. 살이 많이 찐 애벌레는 한 마리씩 번데기가 됩니다. 퍽 오랫동안 번데기가 되어 잠을 자는 애벌레는 저마다 알맞춤한 때를 맞이하면 눈부시게 깨어나는 멋진 나비로 거듭나겠지요.



바람이 잠깐 잦아든 틈에 저 아래 바닷가에서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바다가 뭘 실어 왔을까?’ 하고 커스티는 생각했다. 내일 바닷가로 나가 보면 뭘 보게 될까? 모두들 바다 빗질을 좋아했다. 투덜이 할아버지조차도 안 그런 척하면서 그랬다. (12쪽)



  영국에서 1990년에 《The Water Horse》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오고, 한국에서는 2003년에 《바다의 선물 크루소》라는 이름으로 처음 옮긴 뒤, 2008년에 《워터 호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다시 나온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문학 《워터 호스》가 있기에 영화 〈워터 호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문학하고 영화는 사뭇 달라요. 두 작품에 나오는 무대나 때는 비슷하지만, 어린이문학은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집안에서 두 아이(누나와 동생)와 할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네 사람이 ‘워터 호스’를 만납니다. 이와 달리 영화는 세계대전이 한창인 유럽에서 어린 아이(동생 혼자)가 ‘워터 호스’를 만나고, 누나는 딱히 눈길을 보내지 않으며, 어머니도 나중에서야 알아차립니다.


  어린이문학 《워터 호스》는 아이들이 ‘크루소’라는 이름을 붙인 ‘바다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보여줄 뿐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어른(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들이 모두 이 바다이웃을 알뜰히 아끼는 숨결을 보여줍니다. 이와 달리 영화 〈워터 호스〉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안 나오고, 어머니도 마지못해서 바다이웃을 바라볼 뿐이며, 누나는 아예 바다이웃한테 눈길조차 안 두는 얼거리로 나와요.



“우리가 먹은 거 아니에요. 엄마, 정말이에요. 그리고 진짜 바다 괴물이 있어요.” 커스티가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커스티. 너희 둘이서 새우인지 가재인지, 뭘 집에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비싼 정어리를 그것한테 낭비할 순 없어. 당장 갖다 버려라. 알아듣겠니?” (33쪽)



  딕 킹 스미스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워터 호스》도 틀림없이 ‘유럽에서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고단한 나날’이 바탕이지만, 이 어린이문학에서는 전쟁 이야기가 한 마디도 안 나옵니다.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어른하고 아이는 먼먼 옛날부터 내려온 이야기에 나오는 바다이웃을 비로소 만난 기쁨을 한껏 누리면서 ‘삶이란 무엇이고, 이웃이란 누구인가’ 같은 대목을 찬찬히 짚고 다룹니다.


  그러고 보면, 딕 킹 스미스 님은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라든지 《도도새는 살아 있다》라든지 《레이디 롤리팝,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든지 《생쥐 볼프강 아마데우스》 같은 작품에서 ‘여러 짐승을 알뜰히 아끼는 넋’을 슬기롭게 보여줍니다. ‘엄청난 괴물’이 아니라 ‘덩치가 크든 작든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이라는 대목을 따스한 눈길로 보여줍니다.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쟤들만 했을 때 이런 걸 발견하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을 했는지 아니? 그땐 이런 동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난 그걸 죄다 믿었지. 하지만 이렇게 직접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35∼36쪽)



  한국에서는 어떤 바다이웃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아마 ‘워터 호스’처럼 커다란 바다이웃을 만나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남녘도 북녘도 바닷가는 아직 ‘쇠가시그물(철조망)’이 가득하고, 군인이 총을 들고 막아서는 곳이 많습니다. 휴전선하고 좀 떨어진 바닷가에는 공장이 많을 뿐 아니라, 핵발전소까지 있어요. 공장이나 핵발전소가 없는 바닷가는 관광지로 꾸미는데,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요.


  호젓한 바닷가라든지, 사랑스럽고 조용한 바닷마을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한국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기도 어렵지요. 깊은 숲마다 송전탑을 박아대니, 범은 일찌감치 씨가 말랐고, 곰도 살 터가 없습니다. 이리나 늑대나 여우도 남녘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멧돼지하고 고라니가 조금 있다고 할 텐데, 이마저도 아이들이 만나기 어려워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도시에서 학교하고 학원만 오가느라, 밭일을 거들지도 못하고 밭일이 무엇인지조차 몰라요.



엄마는 그 동물을 당장 쫓아내라며 너무 딱딱거린 일에 대해서 은근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동물이 뭐가 됐든지 간에 아주 특이한 녀석이었고, 아이들은 몹시 들떠 있는데다가, 할아버지까지 그랬다. 세상에, 할아버지 얼굴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렇게 행복해 보인 적은 없었다! 지금 할아버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는 중이다. (44쪽)



  밭에서 호미를 갖고 노는 아이들이 지렁이를 만납니다. 에그머니 하고 놀라지도 않습니다. 지렁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며 흙을 뿌려서 몸이 뜨거워지지 않도록 하고는 얼른 땅속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흙을 쪼다 보면 공벌레도 나오고 온갖 풀벌레가 나올 뿐 아니라, 때로는 개미집이 무너지고, 어느 때에는 지네가 또아리를 틀고 쉬다가 깜짝 놀라서 부리나케 내뺍니다.


  한여름 풀밭이나 텃밭에서는 방아깨비와 메뚜기가 폴짝폴짝 뜁니다. 사마귀는 죽은듯이 가만히 있다가 먹이를 낚아챕니다. 잠자리가 내려앉고 나비가 납니다. 나무에는 곧 나비로 거듭나고 싶은 여러 애벌레가 잎사귀를 갉아먹느라 바쁩니다.


  자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은 자그마한 이웃을 만납니다. 자그마한 이웃은 자그마한 손길에도 그만 다치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자그마한 이웃은 자그마하면서 따스한 손길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이 크루소를 잠깐 보더라도 자기가 뭘 봤는지 잘 모를 거다. 어쩌면 그냥 통나무 조각이거나 물 위에 비친 무슨 그림자거나, 튀어오르는 연어거나, 아니면 뛰노는 수달이거나, 물살이 실려 떠다니는 나뭇조각이라고 생각하겠지. 뭔지 잘 모를 거야. 그 호수에 수마가 산다는 걸 아는 사람은 우리뿐인걸.” 아빠가 말했다. (135∼136쪽)



  바다에서 만난 ‘워터 호스’는 괴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마’라고 하기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어요. 바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노래하면서 이 지구별에서 삶을 짓는 어여쁜 이웃입니다.


  우리 바다가 깨끗하다면 북해에서 놀던 커다란 바다 이웃이 대서양을 지나고 태평양을 건너서 동해나 남해나 서해로도 나들이를 올 수 있을까요? 드넓은 바다에서 말 없이 말을 주고받는 고래가 우리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을 치면서 그윽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바다가 깨끗하고, 삶터가 깨끗하며, 어른들 마음이 깨끗할 적에,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키울 만합니다. 바다가 더러워지고, 마을이나 도시나 시골이나 숲마다 쓰레기와 핵발전소와 송전탑과 군부대가 늘면서 망가지면, 이러면서 어른들 마음도 무너지거나 더러워지면,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하고 어떤 곳에서 살아야 즐거울까요? 4348.8.1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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