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결혼생활 : 결혼편 적나라한 결혼생활 4
케라 에이코 지음, 심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34



‘함께 짓는 삶’이 뭔데?

―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

 케라 에이코 글·그림

 심영은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015.3.6.



  ‘혼인’은 사회 제도입니다. 혼인을 하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하고, 혼인신고를 하면 두 집안 어버이가 서로 만나서 인사를 하면서, 앞으로 ‘한식구’가 된다고 합니다. 혼인이라고 하는 사회 제도를 따르지 않고 함께 산다면, 그저 ‘함께 산다’고 합니다. 함께 사는 사이는 친척도 친족도 아니며 한식구도 아닙니다. 다만, 매우 가까운 이웃이거나 동무입니다. 서로 피로 맺은 사이는 아니라 하지만, 마음으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지내는 사이가 됩니다.



“현재의 자신도 아직 잘 모르는데, 그 후의 문제를 들이대 봤자지! 장래 같은 거 생각할 수 없을 거 아냐? 분명.” (12쪽)

“결혼 같은 건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먼 일이란 언제? 몇 살쯤?” “서른 살이랄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지금은 일도 막 시작했고, 그럴 때가 아니야.” “왜? 결혼해도 일은 할 수 있잖아!” (17쪽)



  케라 에이코 님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21세기북스,2015)을 읽습니다. 책이름은 ‘적나라한’이라고 하는데, 감추지 않고 다 밝힌다고 하는데, 무엇을 안 감추고 다 밝힐까요? 결혼생활이란 무엇일까요? 두 집안이 만나서 함께 이루는 친족살이가 되는 모습이 결혼생활일까요?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사회 제도로 혼인신고를 하든 안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한국사람하고 일본사람이 한집 사람이 되어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나라를 따지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도 성별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으로 흐르는 기쁜 넋을 바라봅니다.



“나한텐 좋은 점이 없지 않아?” “무슨 말이야? 이런 귀여운 아이를 독점할 수 있잖아.” (20∼21쪽)

‘가까워진 계기가 ‘만화 동아리’? 뭔가 얼간이 같은 이 두 사람!’ (63쪽)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은 ‘사회 제도에 맞추어 혼인신고를 하고 예식을 올리려고 하는 동안’에 어떤 일을 겪고, 이러한 일을 겪는 동안 어떠한 마음이 되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철이 없거나 생각이 깊지 않던 나이에 혼인신고와 예식을 함께 치르면서 한집살이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나 몸짓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까놓고(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혼인하기 앞서나 혼인하고 나서나 그리 달라질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만화책을 그린 분은 ‘살섞기(섹스)’를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하는 부부 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한집살이를 생각할 뿐입니다. 아양을 떨거나 살내음을 바라는 한집살이가 아니라, 마음이 차분하게 맞는 두 사람이 새롭게 짓는 하루를 누리고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요즈막 젊은이들 눈높이나 삶하고는 많이 안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섞기도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할 뿐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다니는 일조차 드물면서 ‘혼인’을 하며 지내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이니까요.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전부 부를 수 없는 건 사실이네.” “친구에 우선순위라니. 적기 어렵다. 또,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내가 초대를 받아서 이쪽도 부르지 않으면 미안한 사람도 있네.” (110쪽)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일입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 살섞기가 아닙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추기에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살을 섞으면 살섞기이고, 입을 맞추면 입맞춤입니다. 서로 껴안으면 껴안기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도 안 아끼면서 살만 자주 섞는다고 해서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조금도 안 헤아리면서 손만 잘 잡는다고 해서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사랑도 혼인도, 살내음에 앞서 마음결을 느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삶도 생각도, 얼굴이나 몸매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씨를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저기 저기, 생선 별로지 않아? 역시 한 등급 위의 코스로 해둘 걸 그랬어.” “엣? 그렇구나.” ‘싫다. 그렇구나. 모두들 먹고 있잖아. 아아, 저 사람 지금 막 먹으려 한다. 아, 씹고 있어. 씹고 있어. 죄송하네.’ (161∼162쪽)



  함께 짓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함께 짓는 삶에서 우러나는 기쁨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너를 왜 좋아하고, 너는 나를 왜 좋아할까요? 한집에서 쉰 해나 일흔 해를 함께 살 수 있을 만한 사이라고 한다면, 둘은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할까요? 날마다 늘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사이라고 한다면, 둘은 어떤 눈길이 되어 서로서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은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참말로 철이 없거나 바보스럽기까지 한 가시내와 사내가 어떻게 혼인신고를 하고 예식을 치르면서 한집살림을 꾸리는 데까지 나아갔느냐 하는 대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겉모습이나 이름값이나 돈이 이끌려서 한집살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이면 ‘앞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숨을 거두는 날까지 늘 웃고 노래하면서 살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쁘게 한집살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입니다.


  사랑은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고 하듯이, 혼인도 한집살이도 국경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온갖 허울’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일류 대학교를 나왔기에 함께 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잘 벌거나 얼굴이 멋지게 생겨서 함께 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착하고 참다우면서 슬기로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낄 때에 비로소 함께 살 만한 사람이라고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4348.8.1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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