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71 꼴 보다, 꼴 사납다
나는 내 눈으로 내 꼴을 볼 수 없습니다. 내 눈은 오직 앞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기에, 내 얼굴을 못 보고, 내 몸짓을 못 봅니다. 나는 내 얼굴이나 몸짓이 아닌 네 얼굴이나 몸짓을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물을 들여다보면 내 꼴을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이나 유리를 바라보아도 내 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과 거울과 유리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나 스스로 내 꼴을 보지 않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제 꼴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숨결이라고 할 만합니다. 내 꼴을 바라보는 데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지을 삶을 바라보는 데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할 만합니다.
내 눈은 내 꼴을 못 보지만, 내 마음은 내 꼴을 늘 봅니다. 그래서, 나는 나한테 말할 수 있어요. ‘꼴 보기 싫다’라든지 ‘꼴 보기 좋다’ 같은 말을 합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면 나는 내 꼴을 보기 싫습니다. 내가 스스로 지은 삶을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면 나는 ‘내 꼴이 보기 좋다’는 말을 비아냥처럼 합니다. ‘꼴좋다’고도 하지요.
그러나, ‘꼴’이라는 낱말은 먼 옛날부터 좋음이나 나쁨을 가리는 자리에 안 썼습니다. 생김새를 가리키는 낱말일 뿐입니다. ‘세모꼴’이나 ‘네모꼴’이나 ‘부채꼴’처럼 말합니다. 집을 짓거나 일을 할 적에 ‘꼴’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자리에 ‘모습’이나 ‘새’나 ‘생김새’ 같은 낱말을 쓰지 않아요. 어떻게 보이는가를 나타내려고 하면서 ‘꼴’을 씁니다. ‘몰골’이나 ‘얼굴’ 같은 낱말도 이 같은 느낌과 결을 나타내면서 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 ‘내 꼴’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는 ‘내 꼴’을 따지지 않습니다. ‘내 꼴’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직 남(너, 그대)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 꼴을 바라보지 않고 ‘네 꼴(다른 사람 모습)’을 바라봅니다. 네가 나를 보면서 ‘꼴사납다’고 한다면, 나도 너를 보면서 ‘꼴사납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두 눈으로만 마주할 적에 겉모습만 훑습니다. 저마다 어떤 꼴로 어떤 일을 하는가를 들여다볼 노릇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를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자꾸 ‘눈으로 보는 꼴’에 얽매입니다.
남이 나를 보면서 ‘꼴좋다’고 비아냥을 하거나 ‘꼴사납다’고 나무란들, 나로서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눈으로 보이는 꼴’로 삶을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나 사랑이나 꿈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으로만 마음을 보고, 사랑으로만 사랑을 보며, 꿈으로만 꿈을 보아요. 그러니, 다른 사람(남, 너, 그대)이 하는 말에 휘둘릴 적에는 내 삶·사랑·꿈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좋고 나쁨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힌 채 제 길을 잃거나 잊습니다. 나도 이와 같아요. 나도 나와 마주한 그대(너, 남)한테 ‘네 꼴이 우습네’ 하고 말할 수 있어요. 나도 그대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그대도 내가 하는 말 때문에 막상 그대가 짓는 삶과 사랑과 꿈을 잊거나 잃으면서 어지럽게 떠돌거나 헤맬 수 있습니다.
‘꼴’이라는 낱말은 낮잡거나 깎아내리려는 뜻이 안 담깁니다. 그러나, 사회의식은 이 낱말을 낮잡거나 깎아내리려는 자리에 쓰도록 부추깁니다. ‘별(別)꼴’ 같은 말마디는 그야말로 우스꽝스럽습니다. 아무 뜻도 없는 말마디인 ‘別꼴’은, 한국말로 뜻을 풀면 “다른 꼴”입니다. “다른 모습”이라는 소리요, “다른 삶·사랑·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어머, 별꼴이야!” 하고 읊는 말은 네가 나와 다르다는 소리일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요. 서로 다르면서 새로운 삶과 사랑과 꿈을 지으니까요. 그렇지만 ‘별꼴’이라는 말마디로 마치 어느 한쪽은 나쁘거나 틀리거나 그릇되기라도 하는듯이 몰아세우는 사회의식입니다. 이 대목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다른 꼴’이어야 맞고, 우리는 저마다 새로운 삶을 지으려 하기에 ‘새로운 꼴’로 가야 즐겁습니다.
‘내 꼴’을 내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재거나 따지는 틀에 휘둘리지 말고, ‘내 꼴’은 늘 씩씩하고 튼튼하면서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내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네 꼴’을 기쁘게 맞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너를 재거나 따지는 틀에 휩쓸리지 말고, ‘네 꼴’은 언제나 상냥하고 착하면서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야 합니다. 다른 꼴이기에 웃고, 새로운 모습이기에 노래합니다. 다른 모습이기에 어깨동무하고, 새로운 꼴이기에 손을 맞잡습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