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향고래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170
정영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98



시와 풀내음

― 말향고래

 정영주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7.7.16. 7000원



  한여름으로 접어든 시골은 조용합니다. 여름철 무더위를 잊으려고 시골로 찾아온 손님이 북적이는 시골이라면 한동안 왁자지껄할 수 있고, 자동차 뜸하던 찻길에도 자동차가 제법 지나다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시골은 더없이 조용합니다.


  농약 뿌리려고 경운기를 몰고 나오는 할매와 할배가 있으면, 농약이 논밭으로 퍼지는 소리가 울립니다. 농협에서 띄우는 농약살포 헬리콥터가 돌아다니면 꽤 먼 데까지 웅웅거리는 소리가 퍼집니다.

  시골은 도시처럼 매미 우는 소리가 우렁차지 않습니다. 시골은 멧새 노랫소리하고 풀벌레 노랫소리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때때로 한낮에도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풀을 베다가 여러 소리를 듣습니다. 땀을 훔치면서 마루에 앉아서 쉬다가 온갖 소리를 듣습니다. 밥을 지어 아이들을 먹인 뒤 한 차례 멱을 감고 평상에 앉아서 이런저런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신화가 된 고래의 늑골 하나 빼내어 / 내 빈 곳 채울 수 있다면 / 스스로 말향고래가 되어 심해까지 / 내려가 심장과 내장 뼈 마디마디 / 썩지 않을 기름으로 채울 수 있다면 (말향고래)



  정영주 님 시집 《말향고래》(실천문학사,2007)를 읽습니다. 고래 이야기라면 이제 철지난 옛이야기로 여길 만합니다. 고래잡이배는 뜨기 어렵고, 고래를 함부로 잡을 수 없는 요즈음입니다. 그림책이나 사진책이나 다큐영화 같은 데에서는 고래를 볼 테지만, 어른도 아이도 맨눈으로 고래를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피노키오나 모비딕을 말할 적에 으레 고래를 떠올린다지만, 막상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는 고래를 얼마나 잘 이야기할 만할까요.



금목서가 왜 쓰러졌는지 모른다 / 쓰러지면서 진저리치며 터지는 / 꽃들의 아우성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 문득, 그제야 내가 오랫동안 / 뜨락에 나간 적이 없음을 알았다 (금목서)



  시골에서 풀내음을 맡습니다. 시골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풀내음을 맡을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에서 풀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풀노래를 부를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풀내음을 맡고 싶어서 시골에서 산다고 할 만합니다. 풀빛을 마주하면서 푸른 마음이 되고 싶기에 시골에서 사는구나 하고 곧잘 깨닫습니다. 풀숨을 마시고 풀열매를 먹으며, 풀잎을 훑어서 즐기려는 뜻에서 시골에서 사는구나 하고 으레 느낍니다.


  그러면 풀내음이란 무엇일까요? 풀이 베푸는 내음입니다. 도시사람은 나무밭(수목원) 같은 데에 가서 일부러 ‘나무내음’을 쐬려고 합니다. 나무내음을 맡으면 여느 때에 배기가스나 온갖 지저분한 바람을 마시느라 고단한 허파가 싱그러이 살아난다고 하거든요.


  사람들이 맡으려고 하는 나무내음은 어떤 내음일까요? 나뭇줄기나 나무뿌리 내음일까요? 아마 이런 내음도 있을 테지만, 사람들한테 짙고 깊게 스며드는 나무내음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나뭇잎이 베푸는 내음’입니다.



집에 오니 / 옷자락에 쐐기풀이 잔뜩 박혀 있다 / 숲 속 몇 마장 들다 나왔는데 (흔적)



  시집 《말향고래》는 예부터 사람들이 제 삶터에서 맡던 온갖 내음을 가만히 이야기합니다. 쐐기풀에 깃든 내음을, 숲에 서리는 내음을, 햇볕에 배는 내음을, 창문에 번지는 내음을 하나하나 이야기합니다.


  흙길을 걷는 사람과 아스팔트길을 걷는 사람은 서로 다른 냄새를 맡습니다. 풀밭길을 걷는 사람과 시멘트길을 걷는 사람은 서로 다른 냄새를 맞이합니다. 숲길을 걷는 사람과 골목길이나 시내 한복판을 걷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냄새를 들이켭니다.



잘 달궈진 햇볕이 / 벽돌담을 넘어와 / 창문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뉘 고르는 여자)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골에 젊은이도 어린이도 많았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늙은 사람만 많습니다. 시골에서 젊은이와 어린이가 자취를 감추면서 집짐승을 키우는 집이 사라지고, ‘풀을 먹고 사는 집짐승’을 키우는 집이 사라지면서, 밭둑이나 논둑에서 잘 자라던 풀을 성가셔 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납니다. 여기에다가 1970년대부터 밀어닥친 새마을운동은 ‘풀을 뜯어서 먹지 말’고 ‘풀에 농약을 뿌려서 죽이라’는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한의사와 제약회사는 정갈하고 고즈넉한 시골이나 숲에서 자라는 풀을 얻어서 약으로 삼습니다. 시골사람은 이제 고들빼기나 소리쟁이나 부들이나 모시나 까마중이나 쇠무릎이나 질경이를 약으로 삼을 줄 모릅니다. 약으로 쓰던 슬기를 모두 잊었습니다. 망감도 하늘타리도 귀찮을 뿐이고, 댓잎이나 갈잎으로 바구니를 엮던 손길은 아주 끊어집니다.



찢어진 돌을 보았다 / 그 속으로 보타진 강이 흐르다 / 멈춘 것을 보았다 / 미처 이사 가지 못한 고라니와 / 바람에 넘어지는 숲과 / 돌아서 뒤채는 물 속에 / 머리카락 죄다 풀어헤치는 / 줄풀들의 울음소리가 / 갈라진 돌 틈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돌 속에 누워)



  시를 한 줄 읽으면서 풀내음을 떠올립니다. 시를 두 줄 읽으면서 풀내음을 그립니다. 시를 석 줄 읽으면서 아련하게 스미는 풀내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집을 덮은 뒤 우리 집 둘레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풀이 베푸는 온갖 내음을 마십니다.


  다만, 풀내음을 맡더라도 틈틈이 낫질을 합니다. 걸어서 지나다닐 길은 있어야 하니까요. 모기가 너무 끓지 않도록 풀밭을 건사해야 하기도 하고요. 아이들 키보다 웃자란 쑥을 베거나 뽑아서 한쪽에 쌓으면, 쑥대가 땡볕에 잘 마르면서 고운 ‘짚내음’을 베풉니다.


  참말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소와 염소가 이 너른 풀을 신나게 먹었을 테고, 사람들은 소한테서는 소젖을 얻고 염소한테서는 염소젖을 얻었을 테지요. 풀을 먹는 짐승이 풀노래를 부르듯이, 풀을 아끼고 돌보던 시골사람은 풀바람을 쐬면서 풀밥을 먹고 풀잔치를 누렸을 테지요. 잠자리가 달맞이꽃에 가만히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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