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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겟 미 낫 Forget Me Not 1 ㅣ 세미콜론 코믹스
츠루타 겐지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2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539
나는 너를 잊지 않아
― 포겟 미 낫 1
츠루타 겐지 글·그림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2.24. 11000원
지난 보름 동안 마을에서 개구리 노랫소리가 끊어졌습니다. 지난 보름 동안 마을에서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려댔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시골치고 농약을 안 뿌리는 마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완전 유기농’을 하는 곳이 아니라면 어느 시골이든 농약나라가 됩니다. 논에는 농약을 치지 않더라도 고추밭에까지 농약을 안 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능금밭이나 배밭이나 포도밭을 일구는데 농약을 한 방울도 안 쓰는 사람은 그야말로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농약 없는 능금밭’인 ‘기적의 사과’를 이룬 일본 할배는 있습니다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여느 시골에서 농약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도 농약바람은 아주 사그라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며칠 앞서를 헤아리면 아주 얌전합니다. 농약바람이 부는 동안 무논마다 개구리가 모조리 죽은 줄 알았는데,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 그리고 우리 집 앞자락 빈들에서 개구리 몇 마리가 노래를 합니다. 농약을 안 뿌리는 세 군데에서만 개구리 노랫소리하고 풀벌레 노랫소리가 울립니다.
“피에트로 베누치와 이마리 마리엘은 스타일이 다르다고. 그리고 1류 탐정이 어찌 간통 조사나 하고 있냔 말이야.” “알겠습니다. 일류 탐정이 수발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요. 그럼 오늘부터 식사는 스스로 준비하시길.” (13∼14쪽)
츠루타 겐지 님 만화책 《포겟 미 낫》(세미콜론,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둘째 권은 언제 나올는 지 알 길이 없는 만화책입니다. 츠루타 겐지 님 다른 만화책도 첫째 권은 이렁저렁 나오지만, 둘째 권은 좀처럼 나올 낌새가 없습니다. 츠루타 겐지 님 만화를 아끼는 분들은 ‘한 권이라도 만날 수 있어 반갑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여러 연재에 손을 대고는 도무지 다음 이야기를 안 잇는 몸짓’보다는 ‘한 가지 연재라도 꾸준히 손을 대어 다음 이야기를 잇는 몸짓’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고마우랴 싶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츠루타 겐지라는 분이 빚는 만화는 ‘연작’이면서 ‘연작이 아닌 작품’입니다. 여러 권이 나올듯이 ‘1’라는 숫자를 붙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대로 더 연작을 선보이지 않고 끝맺을 수 있습니다. 다섯 해나 열 해에 한 권씩 선보일 수도 있겠지요.
만화책은 으레 여러 권으로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 마련이니, 연작만화에서 낱권 하나만 놓고 깊이 살피거나 생각하는 일은 드물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마흔 권이나 쉰 권짜리로 나오는 만화책이라 하더라도 권마다 이야기가 다릅니다. 한 권씩 따로따로 줄거리를 살필 만합니다. 저마다 다른 권에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흐릅니다. 만화책 《포겟 미 낫》 둘째 권이 나올 수 있다면, 둘째 권 얼거리나 줄거리는 첫째 권하고 여러모로 다를 만해요. 셋째 권이 나올 수 있다면, 앞선 두 권하고 셋째 권은 짜임새나 매무새가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두 액자 장인 빈센초와 페루지아. 놀랍네요. 동일 인물이에요.” “확실해졌네. 찾았어. 그 아가씨의 한심한 아버지.” “마스터도 참 능청스럽네요.” “어쨌든 매듭지었네. 이제 겨우 잘 수 있겠다. 행복해.” (64쪽)
나는 너를 잊지 않습니다. 너도 나를 잊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고, 네가 나를 미워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좋아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으며, 네가 나를 싫어하기에 잊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를 잊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를 잊지 않습니다. 우리 어버이도 나를 잊지 않습니다.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든 아니든, 마음속으로 언제나 함께 있다고 느낍니다. 늘 보는 사이인 터라 더 가깝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따스하고 넉넉하게 헤아리는 사이일 때에 더없이 가까우면서 살갑게 지낼 수 있습니다.
수다를 많이 떨어야 가까운 동무가 아닙니다. 짧게 몇 마디를 섞더라도 웃음하고 노래가 흐를 때에 가까운 동무입니다. 편지를 자주 주고받아야 가까운 벗님이 아닙니다. 가볍게 몇 마디를 나누더라도 포근하면서 너른 마음이 되면 가까운 벗님입니다.
“거짓말쟁이가 커서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지요. 전 직업상 산더미같이 거짓말을 해대고 있는데, 그런 저도 도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항상 빼앗기만 하는 저지만, 무언가를 빼앗긴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194쪽)
만화책 《포겟 미 낫》을 살피면, 여자 주인공은 ‘탐정 집안’에서 탐정 일을 물려받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탐정하고 맞서는 도둑’ 일을 배워서 솜씨 좋게 도둑질을 선보입니다. 한 사람은 지키는 쪽이라 하고, 한 사람은 훔치는 쪽이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키는 쪽이 착하고 훔치는 쪽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두 사람은 그저 ‘수수한 삶’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훔치는 쪽은 가난한 이웃 것을 훔치는 일이 없습니다. 값비싸거나 값지다는 보배를 훔치기 일쑤입니다. 부자가 거머쥔 것을 훔친다고 해서 ‘착한 도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 여린 사람한테서 빼앗은 것을 훔치는 일’은 어떤 일이 될까요? 그리고, 1970년대부터 일어난 새마을운동은 풀집을 허물고 시멘트집에 슬레트지붕을 올리도록 했는데, 이제 시멘트집이나 슬레트지붕은 환경공해라고 일컫습니다. 새마을운동이 무시무시하던 지난날 슬레트지붕을 안 올리겠다고 하면서 군화발에 맞아야 한 시골사람은 어떤 삶이고, 오늘날로 접어들어 ‘슬레트지붕 무상철거’를 해 준다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공무원은 어떤 삶일까요?
“저택도 재산도 이대로 누구에게도 상속되지 않고, 할아버지가 남긴 숙제만 대물림될 거야, 분명.” (210쪽)
나는 기쁨을 잊지 않고 슬픔을 잊지 않습니다. 다만, 잊지 않되 굳이 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나간 기쁨은 지나간 기쁨일 뿐이고, 지나간 슬픔도 지나간 슬픔일 뿐입니다. 새로 맞이할 아침을 생각하면서 곱게 꿈을 꾸려 합니다. 새삼스레 찾아올 멋진 하루를 떠올리면서 푸른 꿈을 다시금 지으려 합니다.
만화책 《포겟 미 낫》은 ‘할아버지가 수수께끼와 함께 남긴 재산 상속’이 이야깃감이 된다고 할 만한데, 여자 주인공은 할아버지 재산에 그리 마음이 없으면서도 아예 마음이 없지도 않습니다. 잊지는 않되 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는다고 해서 갑작스레 기쁜 삶이 되지 않는 줄 알고, 빈털털이로 오늘을 살아도 오늘 하루를 기쁘게 누리면 웃음이 저절로 피어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4348.7.3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