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69 짓고 씻어서 날리다



  마음속에 짓는 생각이 있을 적에, 이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지은 생각이 아직 없다면, 아직 나한테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을 적에는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때에 누군가 나한테 어떤 말(생각)을 들려준다면, 나는 그 말(생각)을 쉽게 받아들여서 그 말(생각)대로 쉽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내가 나한테 아무런 말(생각)을 지어서 들려주지 않았으니 남(다른 사람)이 나한테 지어서 들려주는 말이 내 몸을 움직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온갖 말(생각)을 들려줍니다. 학교는 어떤 틀에 따라 세운 교과서를 아이한테 가르치면서 수많은 말(생각)을 들려줍니다. 학교에서는 다 다른 아이를 다 다르게 살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지어서 이러한 생각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면 ‘내 생각’을 키우지 않고 ‘남 생각’을 마치 ‘내 생각’이라도 되는 듯이 여기도록 길듭니다.


  내 생각을 스스로 짓지 않은 사람은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꿈을 짓지 못합니다. 꿈을 짓지 못하기에 삶을 짓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을 수 있고, 사회에서 여러 가지 문화를 누릴 수 있으며, 사회에서 여러 가지 계층이나 계급에 설 수 있습니다만, 손수 가꾸어 나누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내 생각이 없으니 ‘내 꿈’이 없고, 내 꿈이 없을 때에는 ‘내 삶’이 없으며, 내 삶이 없을 때에는 ‘내 이야기’가 없습니다.


  말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생각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꿈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삶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이야기를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내가 지은 삶이 내 이야기입니다. 내가 지은 삶이 내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즐겁고 넉넉하며 아름답습니다. 내 삶이 내 이야기인 터라, 나는 신문이나 방송이나 영화가 없어도 얼마든지 기쁘고 너그러우며 사랑스럽습니다. 먼 옛날부터, 삶을 손수 지어서 가꾼 사람은 모든 노래와 춤과 이야기를 손수 지어서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이와 달리, 삶을 손수 못 짓고 못 가꾸는 이들은, 아무런 노래도 춤도 이야기도 손수 못 짓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남(다른 사람)이 지은 노래와 춤과 이야기에 빠져들기만 합니다. 오늘날에는 몇몇 ‘노래 전문가’와 ‘춤 전문가’와 ‘이야기 전문가(시인·소설가)’한테 사로잡히는 ‘팬클럽’이 될 뿐, 스스로 제 이야기를 짓지 못합니다.


  삶이 있으려면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으려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있으려면, 이 생각을 이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내 말’을 터뜨려야 합니다. 맨 처음 지은 내 말이 마음을 거쳐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면서, ‘내 몸을 이루는 파란 거미줄 같은 숨결’을 건드리고, 내 온 숨결을 건드린 말은 내 몸에서 빠져나와서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집니다. 멀리 날아가지요. 이리하여, 우리는 저마다 말(생각)을 지어서, 이 말로 내 몸(숨결)을 새롭게 씻기고, 새롭게 씻긴 말을 내 바깥으로 내놓아서 바람에 실려 날릴 때에 이러한 말이 꿈으로 드러나고, 삶으로 피어나면서, 이야기로 자랍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짓지’ 않고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나아가려는 길을 스스로 지어서 내가 이루려는 꿈으로 스스로 노래할 수 있는 한편, 내 생각은 하나도 없이 ‘남이 시키는 굴레와 틀에 스스로 갇히는 몸뚱이’가 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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