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가 나빠 동화는 내 친구 39
오이시 마코토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106



신나게 놀던 아이가 멋진 어른이 된다

― 장화가 나빠

 오이시 마코토 글

 오보 마코토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5.7.25.



  마실을 다닐 적마다 커다란 가방을 짊어집니다. 내가 짊어지는 가방에는 아이들 옷가지랑 아이들 그림책이랑 아이들이 쓰는 여러 가지 살림이 깃듭니다. 아이들도 저마다 제 가방을 하나씩 들고 마실을 다니면서 저희 장난감을 저희 스스로 챙깁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는 아이들 장난감까지 내 가방에 챙겨야 했으나, 다섯 살 작은아이도 제 가방에 제 장난감을 가득 넣고 의젓하게 걸어다닙니다.


  장난감을 스스로 챙길 줄 아는 아이들은 마실길에 화장실에 들를 적에도 혼자 쉬를 할 수 있습니다. “자, 쉬를 좀 해 볼까?” 하고 물으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저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쉬를 눈 다음 손이랑 낯까지 씻고 나옵니다.


  도시에서는 거님길이 좁고 자동차가 쉴새없이 지나갑니다. 이런 곳에서는 아이들더러 “자,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가자.” 하고 얘기합니다. 두 아이는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재미나고 신나는 걸음걸이가 됩니다.



사유리가 큰 소리로 울자, 오빠는 허둥지둥 사유리를 달랬어요. “이거 가짜야, 가짜. 껌으로 만든 가짜 송곳니라고. 그러니까 그만 울어, 응? 내가 껌 줄게.” 그래도 사유리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요. (11쪽)


비가 온 다음 날, 아키라는 노란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어요. 여기에도, 저기에도 물이 괸 웅덩이가 보여요. 웅덩이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비쳐요. (20쪽)



  오이시 마코토 님 글에 오보 마코토 님 그림이 어우러진 어린이문학 《장화가 나빠》(논장,2005)를 읽습니다. 이 책에는 예닐곱 살이나 여덟아홉 살 어린이라면 으레 겪는다 싶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린 동생을 장난으로 놀리다가 그만 울리고 말아서 어쩔 줄 모르는 오빠가 나오고, 새로 얻은 장화가 좋아 웅덩이를 신나게 첨벙거리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나옵니다. 인형하고 말을 섞을 줄 아는 아이가 나오고, 사람 아닌 여러 짐승이나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아이가 나와요.


  《장화가 나빠》를 읽으며 우리 집 아이들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더러 놀리기도 하지만, 살뜰히 아끼면서 함께 놉니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를 가끔 놀리기도 하지만, 알뜰히 아끼면서 같이 놀아요. 두 아이는 둘도 없이 살가운 동무이면서 누나 동생입니다. 두 아이는 곰살궂게 어우러지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는 시골순이요 시골돌이입니다.



“난 동물원에서 태어났어.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 몹시 슬퍼하면서 울었어. 내가 죽을 때까지 동물원의 우리에서 살아야 하는 게 너무 슬프기 때문이래. 우리 엄마는 엄마가 자란 아프리카의 넓은 풀밭에서 나를 기르고 싶어 했지.” (31∼33쪽)


아저씨의 세 살배기 딸에게 앵무새한테 고운 말을 가르쳐 주라고 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말이죠. 할머니,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다녀오세요. 다녀오셨어요? 같은 말. (48쪽)



  아이들은 재미나게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면서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하면서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언제나 놀이가 있어요.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면서 자라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도 처음에는 아이였습니다. 신나게 뛰놀고 개구지게 뛰놀며 다부지게 뛰놀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마음껏 뛰놀고 실컷 뛰놀며 거침없이 뛰놀던 아이가 사랑스레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오늘 이곳에서 두 아이 어버이로 사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돌아봅니다. 무더운 한여름 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부채질을 하는 내 모습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잠든 아이들이 시원하게 자기를 바라면서 밤새 부채질을 하는 동안 제대로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지만, 나는 밤잠을 잊더라도 아이들은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잘 수 있기를 바라요.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부채질을 해 주셨을 테고, 우리 어버이가 어렸을 적에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어버이한테 부채질을 해 주셨을 테지요.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되었어요. 달이 환하게 떠올랐어요. 목장의 풀이 젖은 듯 반짝거렸어요. 그때까지도 푸른 말과 닷짱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쉬지 않고 달렸어요. (58쪽)


나는 캐러멜 다섯 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지요. 내가 말했습니다. “엄마, 이거 다 줄게.” 엄마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더니 환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맙구나. 하지만 엄마는 하나만 있으면 된단다.” (79∼81쪽)



  어린이문학 《장화가 나빠》는 짧은 동화를 묶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한 꼭지씩 읽어 줄 만하기도 하고, 아이가 혼자서 한 꼭지씩 씩씩하게 읽을 만하기도 합니다. 짧은 동화는 짤막한 숨으로 서로 아끼는 삶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아이들끼리 서로 아끼는 삶을 보여주고,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아끼는 삶을 보여주며, 사람(아이)하고 사람 아닌 숱한 숨결(도깨비 같은 넋이나 자연하고 뭇짐승)이 함께 아끼는 삶을 보여줍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여름철에 아이들이 잠들 적마다 끝없이 부채질을 합니다. 겨울철에 아이들이 잠들 적에는 끝없이 이불깃을 여밉니다. 아이들은 여름철에 곧잘 “내가 아버지한테 부채질 해 줄게.” 하면서 땀방울을 구슬처럼 흘리면서 부채질을 하겠노라 하고 말합니다. 겨울날에 온갖 집안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살짝 허리를 펴려고 누우면 아이들이 어느새 다가와서 “이불 덮으세요.” 하고 말하면서 이불을 덮어 줍니다.



마사루가 토끼 가슴에 손을 갖다 대 보니까 사람처럼 콩닥콩닥 심장이 뛰어요. (62쪽)



  삶이란 무엇일까요? 너와 내가 함께 가꾸는 하루일 테지요. 어버이와 아이가 서로 북돋우는 하루일 테고요. 먼 마실길이든 읍내 마실길이든, 아버지가 짊어지는 가방이나 짐이 으레 무겁고 커다랗기에 두 아이는 으레 “내가 들어 줄게!” 하고 외치곤 합니다. 그러나 두 아이가 함께 붙잡고 용을 써도 아버지 가방이나 짐을 바닥에서 떼지도 못하기 일쑤입니다. 수박 한 통을 장만할 적에도 그래요. 아이들은 둘이 온힘을 쏟아도 수박 한 통조차 나르지 못합니다. 수박 반 통조차 아이들이 나르기 벅차요. 수박을 반에서 다시 반으로 가른 조각도 아이들한테는 대단히 무겁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수박을 아주 잘 먹어요. 스스로 나를 만한 무게는 아니어도, 수박이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이때에 어버이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씩씩하게 수박을 장만해서 나르든, 우리 집 밭자락에 수박을 심어서 거두든 해야 합니다. 내 몫은 따로 안 남기더라도 아이들이 맛나게 먹도록 알맞게 썰어서 접시에 담아야지요.



내 자리 맞은편 자리에서는 내 또래 여자 아이가 큼직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 초등학교 1학년처럼 떠듬떠듬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을 저렇게 못 읽냐? 바보같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릴 때 그 아이의 책을 슬쩍 넘겨다보았다. 어, 책이 새하얗잖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 나는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까, 그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였다.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점자책을 읽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씩 힘겹게. 나는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내 자신이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101∼102쪽)



  신나게 놀던 아이가 멋진 어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 신나게 놀 수 있어야,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마음이 아름다이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나게 놀지 못한 아이는 신나게 일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부터 신나게 못 놀던 아이는, 어른으로 자라면서 제 꿈을 신나게 가꾸는 길로는 좀처럼 못 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린이문학 《장화가 나빠》는 어린이한테 어떤 책이 될까요? 아무래도 ‘씩씩하게 놀고, 착하게 놀며, 곱게 놀자’는 꿈을 들려주는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학교 공부를 더 잘하는 길보다는, 스스로 즐겁게 뛰놀 수 있기를 바라는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잘나거나 멋지거나 놀라운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착하며 슬기로운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책이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은 “장화가 나빠!” 같은 말을 쉽게 뱉을 수 있어요. 이런 말을 들은 어른은 “음, 모두 예뻐!” 하고 대꾸할 수 있어요. 아이가 울먹이거나 핑계를 들면서 “나빠!” 하고 외치거나 말거나, 어른은 빙그레 웃으면서 “사랑해!” 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린이문학이란 바로 ‘늘 웃는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이라고 한다면 참말로 ‘언제나 웃으면서 노래하는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도, 중·고등학교 푸름이도, 학과 공부는 한동안 젖혀 놓고 마음껏 뛰놀 수 있기를 바라요. 맑고 밝은 넋으로 신나게 놀다가, 마음 가득 따사로운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라요. 동무랑 이웃을 아끼는 아이들이 곱게 자랄 수 있기를 빌어요. 4348.7.2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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