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삼대째 42 - 안녕, 삼대째
하시모토 미츠오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41



언제 어디에서나 ‘좋아하는 일’을 한다

― 어시장 삼대째 42

 하시모토 미츠오 그림

 쿠와 카즈토 글

 임지혜 옮김

 조은세상 펴냄, 2015.5.26. 4500원



  바다가 깨끗할 적에 바다에서 고기를 낚습니다. 바다가 깨끗한 곳에서 김이나 굴이나 조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다가 깨끗할 적에 바닷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칩니다. 바다가 깨끗한 곳에서 상큼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기쁘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죽는다면 바다에서 고기를 못 낚습니다. 바다가 깨끗하지 않으면 김도 굴도 조개도 아무것도 못 얻습니다. 바다가 깨끗하지 않으면 바닷물에 뛰어들 수 없고, 바닷바람을 쐴 수도 없겠지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바닷가에 공장하고 발전소를 세웁니다. 유리공장도 제철소도 화학공장도 화력발전소도 핵발전소도 모두 바닷가에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테지만, 공장이나 발전소가 바닷가에 있으면, 이곳에서는 바닷일을 못합니다. 공장하고 발전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랬구먼. 저 두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삼대째가 베도라치를 발견한 걸지도 모르겠군.” “네?” “저런 일에 질투를 하는 하루마사도 한심하지만, 노리 녀석도 아직 일에 대한 진지함이 없어.” (11쪽)

“고급 브랜드가 되어서 가격이 올라가면 쉽게 먹을 수 없게 되지 않슴까. 전갱이라고 하면 역시 대중적인 생선 아님까!” “대단하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원래부터 돈칫치 브랜드는 비싸게 팔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브랜드는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62∼63쪽)



  하시모토 미츠오 님이 그림을 그리고, 쿠와 카즈토 님이 글을 쓴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조은세상) 마흔둘째 권을 읽습니다. 2001년에 첫째 권이 나왔고, 2015년에 마흔둘째 권이 마지막으로 나옵니다. 마흔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는 일본 도쿄에 있는 츠키지 어시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본 곳곳에서 낚아올린 바닷고기를 하나씩 보여주고, 바닷고기 한 마리와 얽힌 사람들 이야기와 마음을 찬찬히 밝힙니다.



“훌륭한 손놀림입니다. 빠르면서 고른 완성도예요. 아오키가하라 씨, 저도 이렇게 생선을 손질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건어물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말이야.” (64쪽)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전갱이는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의 두꺼운 정도나 단단한 정도, 등이나 배 라인도 다르면 얼굴 생김새도 달라집니다. 기계로는 판별할 수 없는 전갱이의 개성입니다. 그 다른 점을 무시하고 모두 다 똑같이 손질하면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정답이다. 사람의 손으로 한 마리 한 마리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애정을 담아 손질하는 거지.” (91쪽)



  책이름에도 나오듯이, 《어시장 삼대째》는 ‘삼대째’를 잇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삼대’라고 해 본들 그리 길지 않은 나날입니다. 그런데, 어시장에서도, 바다에서도, 작은 가게에서도, 이 일을 즐겁게 이으면서 삶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줄어듭니다.


  가만히 따지면,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삼대도 삼십대도 아닙니다. 삼백대를 훌쩍 넘고, 어쩌면 삼천대도 훨씬 넘을 테지요. 지구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을 테지만, 요 백 해 사이에 아주 빠르게 도시 문화와 문명으로 바뀝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삼대째’ 집일을 잇는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지거나 잊혀집니다.


  그렇다고, 한집 사람들이 집일을 꼭 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집안 사람이어도 얼마든지 ‘집일(가업)’이라기보다 ‘즐거운 일’을 찾아서 아름답게 삶을 지을 수 있으면 됩니다.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에 나오는 ‘어진 삼대째’라고 하는 주인공은 ‘어시장 집안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어시장 일을 밑바닥부터 하나씩 배우며 뿌리를 내리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어부들의 후계자 부족에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마을에 있는 생선 가게도 똑같이 고령화, 후계자 부족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신궁의 삼대째가 말했던 ‘2, 3차 산업이 없어도 일차 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라는 말은 그런 의미였군요!” “어획량을 아무리 늘려도 그것을 파는 힘이 없으면 언젠가 모두 끝이 날 테니까요.” (145쪽)



  《어시장 삼대째》에 나오는 ‘어진 삼대째’는 물고기를 몹시 좋아합니다. 먹기도 좋아하고, 손질하기도 좋아하며, 도매상에서 물고기를 사고파는 일도 좋아합니다. 스스로 아주 좋아하는 일이기에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려 하고, 이 일을 하면서 늘 보람을 느껴요. 그래서 ‘어진 삼대째’는 늘 새로운 물고기를 배웁니다. 물고기를 더 잘 알고 싶어서, 물고기를 낚는 고장으로 으레 찾아갑니다. 물고기를 낚는 일꾼을 만나고, 바다를 마주하며, 고깃배에 올라탑니다.


  전문 요리사한테만 요리를 맡기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더 잘 알고 싶기에, 손질법과 요리법도 새롭게 배워서 온갖 물고기를 스스로 다루려고 합니다.


  스스로 전문가로 거듭나는 ‘어진 삼대째’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테지만, ‘어진 삼대째’는 전문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좋아하는 삶을 한결같이 좋아하는 나날’이 되려는 마음일 뿐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물고기를 손질해서 먹고, 스스로 맛있게 먹은 물고기를 사람들한테 팔며, 스스로 좋아하는 물고기를 다루는 가게를 보람으로 여기면서 살림을 꾸리려 합니다.



“어시장은 츠키지라는 장소가 아닙니다!” “뿌리를 부정하는군.” “프로인 도매상 여러분이 생선을 다루는 장소가 바로 어시장입니다! 도매상이 토요스로 가면 그곳이 어시장이 되는 겁니다!” (216쪽)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는 ‘츠키지 어시장’이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을 맺습니다. 츠키지라고 하는 곳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 해쯤 앞서 새로운 자리로 옮겨서 오늘날 같은 발자국을 남겼고, 이제 다시 새로운 자리로 옮겨야 하더라도 ‘어시장 일꾼’이 스스로 거듭나면서 땀을 흘리면 앞으로도 새로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즐겁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바라보고 가꿀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떤 밥상을 차리든 아이들하고 기쁘게 웃으면서 먹으면 맛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든 다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노래하면 곱습니다. 어떤 집살림을 꾸리든 한집 사람이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사랑이라면 재미납니다.


  땀내음하고 바다내음하고 삶내음이 찬찬히 흐르면서 열다섯 해를 이은 만화책을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둘레에서 늘 마주하는 이웃들 삶자락이 아기자기한 이야기꽃으로 피어나는 만화책을 조용히 덮습니다. 마흔두 권이라는 먼길을 참 씩씩하게 걸어왔습니다. 4348.7.2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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