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독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이야기 3
홍영우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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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2



땅하고 마음에 고운 씨앗을 심는다

― 신기한 독

 홍영우 글·그림

 보리 펴냄, 2010.10.14.



  홍영우 님이 빚은 그림책 《신기한 독》(보리,2010)을 읽으며 옛날 생각에 잠깁니다. 무엇이든 집어넣으면 똑같은 것이 놀랍게 나오는 독이 있으면, 나는 이 독에 무엇을 넣을까 하고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어릴 적에 동무들은 하나같이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되는 돈을 넣을까요? 50원이나 100원입니다. 500원 한 닢도 제법 큰돈이던 때였으니 기껏해야 100원인데, 100원을 넣어서 빼고 또 빼내어 큰돈을 이루자면 참으로 오래 걸릴 테지요. 종이돈을 넣는다면 ‘똑같은 돈’이 날 테니까 마치 위조지폐처럼 쓸 수 없는 돈이 될 테고요.


  그러고 보면, 놀라운 독에는 ‘밥’을 넣으면 딱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먹을 만한 뭔가를 넣으면 똑같은 것이 나올 테니 굶을 걱정이 없겠지요. 맛난 떡이나 빵을 마련했다면, 떡장수나 빵장수를 할 수 있을 테고요.




옛날 어느 마을에 농사꾼 하나가 살았어. 하루는 농사꾼이 밭을 일구느라고 괭이질을 하고 있었지. (2쪽)



  옛이야기를 더 헤아려 봅니다. 놀라운 독이 있어서 굶는 걱정이 없다면, 독에 무엇이든 집어넣어서 언제 어디에서나 넉넉히 누릴 수 있다면, 참으로 ‘걱정없는’ 나날이 되리라 느낍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잇고 이으니, ‘할 일도 없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누워서 독에 넣었다가 빼면 될 뿐이니, 이 땅에서 태어나서 ‘내가 나답게 할 일’은 참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워서 먹고 놀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이런 데까지 생각이 잇자, 놀라운 독은 놀라운 독이 되면서 어느 모로는 바보스러운 독일 수 있겠구나 싶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먹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니, 이런 모습은 도무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자 영감은 부리나케 농사꾼을 찾아가서 대뜸 물었지. “여보게, 자네 이 독 어디서 파냈나?” “왜요? 우리 밭에서 파냈지요.” “그러면 그렇지. 이 독은 내 것이 틀림없네.” (11쪽)



  씨앗을 심는 사람은 씨앗을 얻습니다. 볍씨를 심는 사람은 볍씨를 얻어요. 콩씨를 심는 사람은 콩씨를 얻습니다. 다만, 씨앗을 심는 사람은 씨앗 한 톨을 고스란히 얻지 않습니다. 수백 곱으로 불어난 씨앗을 얻습니다. 그러니, 해마다 꾸준하게 씨앗을 심는 사람은 해마다 꾸준하게 한결 넉넉하게 씨앗을 얻습니다.


  그러니까, 놀라운 독은 ‘독 하나’를 가리키는 옛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먼먼 옛날부터 지구별에서 살며 흙을 짓고 살던 수수한 사람들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땅뙈기를 잘 일구어서 씨앗을 심으면 석 달 뒤에 열매를 얻어요. 이 가운데 알찬 씨앗을 따로 갈무리한 뒤, 나머지는 밥으로 삼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누구한테나 ‘흙’이 바로 ‘놀라운 독’입니다. 그리고 ‘재미난 독’하고 같으며 ‘아름다운 독’이나 ‘사랑스러운 독’이라고 할 만합니다. 《신기한 독》이라는 옛이야기는 먼 옛날부터 시골 어버이가 시골 아이한테 삶을 일깨우려고 들려준 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사꾼과 부자 영감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벌리고 멍하니 원님만 바라보았어. 원님 말은 누구도 어길 수가 없으니 어떡해. 아무 말도 못하고 독을 빼앗긴 채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17쪽)



  옛이야기를 다시금 헤아려 봅니다. 씨앗은 흙에만 심지 않습니다. 씨앗은 마음에도 심습니다. 마음에는 사랑이나 꿈이라는 씨앗을 심어요. 마음에 심는 ‘사랑씨’는 새로운 사랑으로 자랍니다. 마음에 심는 ‘꿈씨’도 새로운 꿈으로 커요.


  사랑을 마음에 심기에 사랑이 새롭게 자랍니다. 꿈을 마음에 심으니 꿈이 새롭게 거듭나요. 그러니까, 우리 몸을 움직여 볍씨나 콩씨 같은 ‘밥이 될 씨앗’을 흙이라고 하는 ‘독’에 심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가다듬어 사랑이나 꿈 같은 ‘빛이 될 생각’을 마음밭이라고 하는 ‘독’에 심습니다.


  몸으로도 아름답게 자라고, 마음으로도 사랑스럽게 큽니다. 몸이랑 마음을 함께 가꾸면서 즐거운 삶을 이룹니다.




신기한 독은 깨져 그만 못 쓰게 되고 말았어. 대청에 아버지가 가득하니 이를 어째. (32쪽)



  흙이 망가지면 더는 흙을 못 일굽니다. 흙이 망가지면 밥을 못 얻습니다. 마음이 망가질 적에는 ‘살 뜻’이나 ‘살아갈 기운’이 사라집니다. 독이 깨지지 않도록 잘 건사하기도 해야 할 뿐 아니라, 흙이 더러워지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잘 돌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더러워지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잘 건사해야 합니다.


  몸을 아끼고 마음을 아낍니다. 몸을 가꾸고 마음을 가꿉니다. 그러니까, 삶을 아끼고 가꿀 때에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삶을 아끼지 못하거나 가꾸지 못한다면, 하루하루 괴롭거나 고단합니다. 4348.6.2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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