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글쓰기, 훔치는 글쓰기 (표절문학)



  ‘배우기’와 ‘훔치기’는 얼마나 다를까? 아마 둘은 종이 앞뒤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배우기’하고 ‘흉내내기’나 ‘시늉하기’는 얼마나 다를까? 아마 이 둘도 종이 앞뒤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배우기’랑 ‘따라하기’는 얼마나 다를까? 아마 이 또한 종이 앞뒤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표절(剽竊)’이라는 한자말이 있다. 한국말사전에서 말뜻을 살피니,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에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씀”을 가리킨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지은 글이나 노래를 다른 사람한테 알리거나 말하거나 밝히지 않고 몰래 따서 쓰는 일이 ‘표절’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일은 ‘훔치기’라고 할 만하다. “훔친 글”이나 “훔친 노래”나 “훔친 사진”이나 “훔친 그림”이라고 할 테지.


  배우는 사람은 훔칠 수 없다. 배우는 사람은 기쁘게 배우고, 고맙게 배우며, 아름답게 배운다. 배우는 사람은 흉내를 내거나 시늉을 하지 못한다. 배우는 사람은 늘 새롭게 짓고, 새롭게 나아가며, 새롭게 꿈꾼다. 배우는 사람은 따라할 까닭이 없다. 배우는 사람은 제 가락을 찾고, 제 결을 생각하며, 제 무늬를 사랑한다.


  그런데, ‘배움’이랑 ‘훔침’이랑 ‘흉내’랑 ‘시늉’이랑 ‘따름(따라하기)’을 똑똑히 가리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꿈속에서 하늘나라 소리를 듣고 노래를 지을 수 있다. 꿈나라를 누비다가 오백 해나 천 해쯤 지나서야 태어날 것을 미리 보고 오늘 이곳에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어쩌면 도라에몽한테서 책상서랍 타임머신을 빌려 타고 옛날과 앞날을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따올 수 있겠지.


  아이들이 어버이 말이나 몸짓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기쁘게 배우면서 재미있게 새 말이나 몸짓으로 피워낸다. 어른이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즐겁게 배우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낸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말과 삶을 배운다. 어른은 아이들한테서 사랑과 꿈을 배워서 동시나 동화나 동요를 쓰고 그림책을 그린다. 배우는 사람이 나아가는 길은 아름다우면서 기쁜 삶이 된다. 배우지 않고 훔치는 사람이 나아가는 길은 벼랑이나 낭떠러지에 부딪히는 삶이 된다.


  어른이 아이한테서 배운다고 부끄러울 일이 없다. 아이가 어른한테서 배울 적에 부끄러울 까닭이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직 글이 어수룩하거나 어설프기 때문에 ‘글을 잘 쓰는 다른 사람’한테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웠으면 즐겁게 ‘배웠다’고 말하면 된다.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대단하거나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 글’을 읽은 기쁨으로 ‘나도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씩씩하게 말하면 된다.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늘 새롭게 배운다.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말조차 하지 않는다면, 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을 친다.


  사람은 모름지기 서로 어울리면서 가르치고 배운다. 더 잘난 사람이 있지 않고, 더 못난 사람이 따로 없다. 웃으면서 배우고, 노래하면서 가르치면 즐겁다. 이 얼거리를 잊으면, 마냥 훔치기만 하면서 웃음도 노래도 모두 잊고 말리라. 4348.6.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밥 한 그릇 함께 맛나게 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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