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0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19



웃음소리를 노래에 담을 때에

― 순백의 소리 10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5.25.



  아이들하고 함께 살기에 아이들이 날마다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웃고, 웃으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노래하면서 놀고, 놀면서 노래합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밤에도 저녁에도, 낮에도, 그러니까 하루 내내 놀고 웃으며 노래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살기 앞서는 아이들한테서 이런 소리가 흐르는 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린 나날을 누렸는데, 내가 이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를 언제나 터뜨리면서 논 줄 잊고 살았다고 할까요.



- “예의범절하곤. 여긴 수준 높은 손님들만 오는 곳이야.” “한 곡만 켜게 해 주이소. 그래서 안 되면 가지예.” (7쪽)

- “진짜 실력자는, 그 정도로도 웬만큼의 실력을 보여줄 순 있겠지. 그래도 100%를 끌어내고 싶을 때는, ‘붓’을 가려야 해. 난, 사와무라에게서 느꼈어. 나를 끌어내 줘.” (16∼17쪽)



  라가와 마리모 님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5) 열째 권을 읽습니다. 《순백의 소리》 열째 권을 보면,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아이가 ‘일찌감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내 노랫소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까닭’을 스스로 다시 생각하고 헤아리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스스로 막다른 벼랑길에 서면서 노랫소리를 찾으려고 하는 아이는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돌아갈 길이나 물러설 길을 두지 않았으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야 합니다. 걷고 다시 걷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높은 울타리에 부딪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거친 가시밭길이 나오든 말든 따지지 않습니다. 깊은 수렁이 나오든 말든 가리지 않습니다. 오직 한길을 걸어갑니다.



- ‘아, 가락이 뒤죽박죽이다. 끌어내는 소리, 누르는 소리, 손님에게 맞추는 소리, 좋아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그럼 내 소리는?’ (26쪽)

- “세츠의 연주 들었지?” “네, 뭐.” “여러 가지 소리가 있다는 걸, 너무 갑자기 알아 버렸어.” (34쪽)

- “사와무라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굉장했습니까?” “그래, 굉장했지. 기술이 어쩌고 하는 차원이 아니야. 본인이 샤미센을 좋아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켜 왔고, 선택의 여지도 없는.” (36∼37쪽)



  웃음소리를 노래에 담을 때에, 내 노래는 웃음이 됩니다. 울음소리를 노래에 담을 적에, 내 노래는 울음이 됩니다. 놀이하는 소리를 노래에 담으면, 내 노래는 놀이가 돼요. 아프거나 지쳐서 뒹구는 소리를 노래에 담으면, 참말 나는 아프거나 뒹구는 삶이 됩니다.


  더 좋거나 나쁜 노래는 없습니다. 다 다른 노래가 있습니다. 더 낫거나 덜떨어지는 노래는 없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노래입니다.


  소리를 찾는 길은 삶을 찾는 길입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길은 사랑을 나누는 길입니다. 소리에 마음을 실어서 노래를 부르는 길은 너와 내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길입니다.



- ‘이건 장난이 아니다. 진심이다. 아오모리에서 뛰쳐나와 학교도 그만두고, 여기까지 왔다! 절대, 그만두고 싶지 않다!’ (65쪽)

- ‘아오모리의 겨울은 훨씬 더 추웠제. 그런데도 도쿄가 더욱, 뼛속이 시리다.’ (68쪽)



  여름 밤이 되어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개구리는 밤새 노래합니다. 잠자리에 드러누워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다 보면, 수많은 개구리가 한꺼번에 노래하는 소리는 어느덧 내 몸을 고요하게 다스리면서 차분히 잠재웁니다. 개구리가 노래하기에 시끄럽지 않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할 적에도 시끄럽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올 적에도 시끄럽지 않습니다. 이 모든 소리는 내 몸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살며시 북돋웁니다.


  《순백의 소리》에 나오는 아이가 켜는 샤미센은 어떤 소리일까요? 가만히 들으면서 온몸이 차분해질 수 있는 소리일까요? 가만히 듣다가 피가 끓으면서 기쁨이 샘솟는 소리일까요? 눈물이 흐르거나 웃음이 피어나도록 북돋우는 소리일까요?



- ‘다행이다. 아직, 손님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 연주할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아오모리에 있을 때, 할배가 살았을 때, 우째 나는, 소리를 바깥 세상으로 풀어주지 않고 살았을까.’ (84∼86쪽)

- “지가 어데 야마리 까졌다는 깁니꺼?” “내는 그냥 민요가 좋아서 부르는 기지, 명창 아이다. 니 반주는 말이다. 니 잘한다는 자랑만 한다 아이가. 몬하는 놈한테 맞춰 줄 생각은 아예 없제? 아무리 음치라도, 기분 좋게 부를 수 있게 신경을 써야지 말이다.” (129쪽)



  잘 켜는 노래가 없고, 못 켜는 노래가 없습니다. 모두 다른 노래입니다. 잘 부르는 노래가 없고, 못 부르는 노래가 없습니다. 저마다 다른 노래입니다. 다만, 함께 어우러질 수 있으면 즐거운 노래요, 함께 어우러지지 않으면서 홀로 뻗기만 한다면 즐겁기 어려운 노래입니다. 함께 춤출 수 있으면 기쁜 노래요, 혼자 춤추려고만 한다면 기쁘기 힘든 노래예요.


  아직 어리고 풋풋한 아이는 새롭게 온갖 사람을 겪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 소리만 생각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온갖 사람을 마주치면서 온갖 소리를 느낍니다. 그동안 오직 한 줄기 소리만 바라보면서 이 길로만 나아갔다면, 아직 어리고 풋풋한 아이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사랑을 오롯이 담아서 터뜨리는 소리를 골고루 느낍니다.


  새하얀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해맑은 노래는 어디에서 흐를까요? 손발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면서, 새하얀 소리와 해맑은 노래가 천천히 새삼스레 태어나려고 합니다. 4348.6.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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